문재인 제19대 대통령은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자임했다. 그는 후보 시절 ‘성평등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며 여러 공약을 제시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 취임 이후 발생한 n번방 사건,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사건은 우리나라의 성평등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줬다. 오는 5월 9일(화) 퇴임을 앞둔 문 대통령의 ‘성평등한 대한민국’은 어디까지 왔을까. 문 대통령의 대선 정책 공약집 「나라를 나라답게」에 실린 20개 성평등 공약 중 20대 여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주요 공약 16개를 뽑았다. 이후 성평등 체제, 노동, 여성 대상 범죄, 여성 건강권의 4개 부문으로 분류해 이행률에 따라 ▶0~33% 빨간불 ▶34%~66% 노란불 ▶67%~99% 초록불로 나타냈다.


성평등 체제
성평등 체제 부문의 공약엔 빨간불 2개, 초록불 1개가 켜졌다. 학교와 정부 부처에 성평등 인식이 확대되고 있으나 지속적인 점검이 필요하다. 학교 교육을 통한 '성평등 의식 문화 확산’ 공약은 지체되고 있다. ‘대통령 직속 성평등위원회 설치’ 공약은 ‘성평등 정책 전문 전담인력 별도 배치’ 공약으로 대체됐다.

정부는 성평등 교육의 중요성을 깨닫고 해당 교육을 내실화해야 한다. 성평등 교육 자료를 발달단계별로 마련해 보급하겠단 교육부의 계획은 현재까지 이행되지 않았다. 지난해 양성평등 교육 강화 조항이 ‘교육기본법’에 추가됐으나 정규 교육과정 내 성폭력 예방교육은 논의되지 않았다. 성평등 교육은 사회 전반에 성평등 인식을 정착시키기 위한 필수요소다. 해당 교육을 통해 학생들의 성평등 인식을 증진하기 위해선 교육 방식과 내용에 구체적 논의가 필요하다. 익명을 요구한 A 학우는 “형식적 내용보단 실생활에 연관한 성평등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평등 정책 추진 체계를 공고히 하기 위해선 성평등 위원회 설치가 필요하다. 여성가족부(이하 여가부)는 지난 2017년 여성·노동·행정 전문가 12명으로 구성된 ‘성평등위원회 출범준비TF’를 구성했으나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황연수(전자공학 19) 학우는 “대통령 직속 성평등위원회가 설치돼 성평등 정책 총괄 기구로서 소임을 다하길 기대했으나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7개 정부 부처에 ‘양성평등정책담당관’을 신설해 해당 공약을 대신했다. 양성평등정책담당관은 독립 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정부 부처의 성평등 정책을 감시하는 데 한계가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지난 2019년 발표한 연구 보고서는 ‘양성평등정책담당관이 성폭력 사건 조사 및 처리 과정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여성 노동
노동 부문 성평등 공약엔 빨간불 2개, 노란불 1개, 초록불 1개가 켜졌다. 채용 성차별과 성별 임금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정책이 추진됐으나 미흡한 점이 많다. ‘성별 임금 격차 해소를 위한 5개년 계획 수립’ ‘청년여성 일자리 할당’ 공약은 파기됐다. ‘성평등 임금공시제’는 일부 지자체에서 부분적으로 실시되고 있다. 지난 2019년 ‘채용 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며 ‘블라인드 채용 강화’ 공약이 이행됐다.

성별 임금 격차 해소를 위해 국가 차원의 적극적인 움직임이 요구된다. 지난해 발표된 우리나라 성별 임금 격차는 32.5%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았다. 하지만 성별 임금 격차 해소를 위한 5개년 계획은 논의되지 않았다. 정부가 매년 발표한 ‘경제정책방향’에도 성별 임금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정책은 한 번도 포함되지 않았다. 정부가 정책을 공표하는 건 해당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해결하겠단 의지 표명이다. 정부는 하루빨리 해당 계획을 수립해 성별 임금 격차를 해소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청년여성 일자리 정책을 통해 사회에 진출하는 청년여성을 배려해야 한다. 해당 정책은 여성이 노동시장에서 겪는 차별을 제거하고 경력을 쌓을 발판을 마련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러나 지난해 ‘청년고용촉진특별법’ 개정 논의에선 청년여성 고용 할당에 관한 내용이 제외됐다.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는 “노동시장에서 여성을 약자로 만드는 구조가 무엇인지 면밀히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주도의 성평등 임금공시제 또한 이뤄지지 않았다. 성평등 임금공시제는 민간기업이 성별에 따른 임금 현황을 공개하도록 의무화해 임금체계의 투명성을 보장한다. 지난 2017년 성평등 임금공시제가 포함된 법률 개정안이 발의됐으나 제20대 국회 임기가 만료돼 자동폐기 됐다. 성평등 임금공시제는 성별에 따른 임금 격차 실태를 고발한단 점에서 그 자체로 유효하다. 정부는 해당 제도를 적극 도입해 성별 임금 격차를 제거하기 위한 첫 단추를 끼워야 한다. 

지난 2019년부터 ‘블라인드 채용’이 도입됐으나 고용 성차별은 사라지지 않았다. 블라인드 채용은 성별, 출신지, 가족관계 등 불합리한 차별을 야기할 수 있는 항목을 공개하지 않는 채용방식을 뜻한다. 지난 2020년 고용노동부 발표에 따르면 블라인드 채용 도입 후 여성 합격자의 비율은 지난 2016년 34%에서 2019년에 39%로 증가했다. 블라인드 채용이 시행됐지만 면접에선 여전히 성차별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지난 2020년 취업포털사이트 ‘사람인’이 구직자 173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여성 응답자의 30.4%가 면접에서 ‘성별을 의식한 질문을 받은 적 있다’고 답했다. 이들은 향후 결혼계획, 출산 자녀 계획 등과 같은 질문을 받았다. 익명을 요구한 B 학우는 “지난 2020년 동아제약 채용 면접과 같은 채용 성차별이 아직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여성 대상 범죄
여성 대상 범죄 부문 공약엔 빨간불 1개, 초록불 5개가 켜졌다. 여성 대상 범죄를 다루는 법체계는 마련됐지만 꾸준한 보완이 필요하다. ‘성폭력 문제 인식 변화를 위한 정책 방향 전환’ 공약은 ‘성폭력 무고 수사지침 절차 마련’을 제외하고 이행되지 않았다. 젠더 폭력, 디지털 성범죄, 스토킹·데이트 폭력, 가정 폭력에 대한 공약 또한 추진돼 가해자를 향한 처벌이 강화됐다. 폭력예방교육은 참가 대상이 확대됐다.

성폭력 문제 인식 변화를 위해선 피해자 위주의 법 제정이 마련돼야 한다. 피해자가 피의자에게 무고 혐의로 역고소당한 경우 검찰이 사건 수사에 착수하지 못하도록 ‘성폭력 무고 수사지침 절차’가 마련됐다. 피해자의 과거 성 이력을 증거로 사용하지 못하게 규정한 ‘성폭력 범죄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지난 2016년 발의됐으나 폐기됐다. 지난 2020년 5월 성폭력에 관한 형법 조항이 개정됐으나 해당 조항이 타 특별법과 통합되진 않았다. 익명을 요구한 C 학우는 “여성을 대상으로 한 흉악범죄가 끊이지 않는다”면서 “실질적으로 해당 범죄가 해결되고 있단 느낌은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이 시행됐으나 젠더 폭력에 대한 논의는 계속돼야 한다. 지난 2019년 정부는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을 제정해 ‘성별에 기반한 폭력’으로 정의됐던 ‘여성폭력’을 ‘성별에 기반한 여성에 대한 폭력’으로 재정의했다. 여가부는 여성폭력 대책에 대한 첫 중장기 계획인 ‘제1차 여성폭력방지정책 기본계획(2020~2024)’을 수립해 추진 중이다. 젠더 폭력 문제는 계속해서 대두되고 있기에 법 제정을 넘어 끊임없는 관심이 필요하다.

디지털 성범죄 및 스토킹·데이트 폭력 처벌이 강화됐지만 사후 처방에 그쳤단 지적을 피할 수 없다. 불법 촬영과 같은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한 ‘디지털 성범죄 근절대책’은 n번방 사건 발생 이후 지난 2020년 4월 뒤늦게 추진됐다. 지난 1999년 처음 발의된 ‘스토킹 처벌법’ 역시 마찬가지였다. 해당 법안은 ‘노원구 아파트 살해 사건’이 발생한 뒤에야 국회를 통과해 지난해 10월부터 시행됐다. 스토킹 처벌법으로 스토킹 처벌 강도가 기존 최대 10만원 벌금형에서 최대 5년의 징역형으로 높아졌다. 익명을 요구한 B 학우는 “문 대통령 취임 이후 여성 대상 범죄에 관한 정책적 논의가 활발해졌다”면서도 “정책과 현실의 괴리가 큰 것 같다”고 말했다.

가정폭력 피해자를 향한 보호조치가 강화됐다. 지난 2018년 ‘가정폭력 방지대책’이 발표되면서 가정폭력 가해자를 현행범으로 체포할 수 있게 됐다. 가해자가 접근금지 명령을 어길 시 징역형까지도 가능해졌으며 피해자가 경찰관에게 보호를 요청하면 즉시 가해자와 격리될 수 있다. 피해자에겐 보호시설 퇴소 후 자립 시점까지 주거 및 생활 유지를 위한 자립지원금이 지급된다. 그러나 해당 대책엔 가정폭력 행위자에게 상담을 받는 조건으로 기소를 유예해 주는 제도인 ‘상담 조건부 기소유예 제도’ 폐지는 포함되지 않았다.

폭력예방교육은 교육 대상자가 더욱 확대돼야 한다. 여가부와 법무부는 ‘제2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2018~2022)’에 ‘찾아가는 폭력예방교육’을 포함해 성폭력을 예방하기 위한 교육 환경을 조성했다. 교육 대상자는 지난 2019년 6500명에서 2020년 약 2만 4천명으로 늘었다. 폭력예방교육 전문 강사를 대상으로 정책사례 분석과 실습 교육 역시 확대됐다. 현재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이 해당 교육을 총괄하며 개선사항을 수렴하는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여성 건강권
여성 건강권 부문 공약엔 빨간불 1개, 초록불 2개가 켜졌다. ‘여성건강기본계획 마련’은 수립됐으나 ‘국민건강증진기본계획에 젠더 지표 적용 및 모니터링 이행’ 공약은 진행되지 않았다. ‘여성의 몸에 대한 권리 보장’ 공약은 성폭력 피해자 지원 재정비와 미디어 가이드라인 마련을 통해 이행됐다. 정부는 지난 2018년부터 2년간 시행된 ‘성매매방지 및 피해자 보호에 관한 법률’을 통해 피해자의 상담비 지원을 확대했다.

‘국민건강증진종합계획’의 건강 지표는 성별 구분 없이 설계돼 여성과 남성의 생물학적 특성을 반영할 수 없다. 따라서 해당 지표를 정책에 활용할 때 여성의 신체적 특성은 나타나지 않는다. 이에 여가부와 법무부는 ‘제2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2018~2022)’에서 성별 지표를 추가하겠다고 언급했지만 2022년 현재까지 적용되지 않았다.

지난 2018년 여가부가 외모 및 성형 관련 미디어 지침을 만들어 배포했으나 실효성이 다소 떨어진다. 「양성평등 방송 프로그램 제작 안내서」 개정판엔 외모 및 성형 보도 지침과 함께 성차별적 언어 사용에 관한 내용이 포함됐다. 그러나 이는 방송사의 자율적 규제에 맡겨졌다. 따라서 지침이 이행되도록 추가적인 법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정부는 정책을 통해 국민에게 지속적으로 성평등 가치를 환기해야 한다. 정책은 강제력을 가질 뿐만 아니라 사회 분위기를 만드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한편 지난 25일(금)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식화했다. 성평등 정책 집행을 주도하는 여성가족부의 빈자리는 클 수밖에 없다. 단순히 해당 부처를 폐지하는 일이 진정 우리사회 성평등을 위한 길인지 고민이 필요하다.


참고문헌
박선영 외 2인. (2020). 성평등정책 추진체계 실질화를 위한 젠더거버넌스 강화방안: 양성평등정책담당관을 중심으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박선영 외 4인. (2021). 여성· 가족 관련 법제의 실효성 제고를 위한 연구 (IX): 성평등 정책 추진체계 강화를 위한 법제 정비 방안.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진명구. (2020). 성별임금격차 완화를 위한 입법·정책과제: 임금분포공시제 도입 논의를 중심으로. 노동정책연구, 2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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