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8일(금) 한 언론사는 초등학교 내 불법촬영 성범죄를 보도하며 ‘교장’과 ‘여교사’란 단어를 사용했다. 해당 언론은 교장의 성별을 남성으로 전제하며 직업간 성차별을 야기하는 ‘여교사’ 표현을 사용했다. ‘여교사’는 언론 보도에서 자주 등장한 오류지만 대중은 이를 쉽게 알아채지 못한다. 잘못된 젠더 표현은 사회의 성차별을 답습하고 재생산한다. 성차별 표현으로 점철된 언론 보도의 단면을 들여다보자.

 

‘OO녀’와 ‘여OO’
접두사 ‘여(女)’의 사용은 직업군에 대한 성차별을 강화한다. 해당 표현은 남성을 주류로 전제해 여성 종사자에 대한 고정관념을 강화한다. 김태연(영어영문 21) 학우는 “남성 교사를 남교사로 칭하지 않지만 여성 교사는 여교사로 불린다”며 “이는 직업적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성차별적 행위다”고 말했다. 이어 김 학우는 “언론 보도 속 성차별적 언어는 대중의 고정관념과 성인지감수성 형성에 큰 영향을 준다”며 “이런 차별적 행위를 하루빨리 개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여성이 피해자인 기사에서도 성차별적 표현이 사용된다. 지난 2015년 일어난 ‘김일곤 살인사건’은 여성을 살해한 후 트렁크에 시신을 넣어 유기한 사건이다. 언론은 해당 사건의 피해자를 ‘트렁크녀’로 지칭하며 사건을 보도했다. 윤여진 언론인권센터 미디어피해구조본부 상임이사는 “가해자남성이란 말은 없지만 피해자여성이란 말은 빈번히 사용한다”며 “보도에 관한 강제 규정이 없어 표현의 선택은 기사를 쓰는 개인의 몫이다”고 말했다.

여성 피해자의 이름이나 특징이 사건명에 이용되는 경우도 빈번하다. 지난 2008년부터 ‘나영이 사건’으로 통칭된 ‘조두순 사건’과 지난 2015년 용인에서 일어나 ‘캣맘사건’이 된 '용인 벽돌 살인 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조두순 사건’은 성인 남성이 여성 아동을 대상으로 벌인 성범죄임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피해자의 가명을 딴 ‘나영이 사건’으로 불렸다. ‘용인 벽돌 살인 사건’ 또한 피해자가 길고양이를 보살폈단 이유로 ‘캣맘 사건’이라 이름 붙었다. 언론은 두 사건명에 피해자의 특성과 정보를 반영하며 가해자의 가해사실을 축소했다.

가해자 위한 ‘성범죄 보도’
지난 2018년 한국기자협회와 여성가족부는 ‘성폭력·성희롱 사건보도 공감기준 및 실천요강’을 발표했다. 해당 문서엔 ▶잘못된 통념 벗어나기 ▶피해자 보호 우선하기 ▶선정적, 자극적 보도 지양하기 ▶신중하게 보도하기 ▶성폭력 예방과 구조적인 문제해결을 위해 노력하기 등의 공감기준이 수록됐다. 실천요강의 모든 항목은 피해자의 사생활과 신원 및 자유를 보호해야 한단 내용을 담고 있다.

규정 마련에도 기성 언론은 ‘N번방 사건’의 본질을 왜곡했다. 언론은 ‘N번방’ 가해자의 심리를 강조해 보도했으며 가해자의 발언 중 ‘악마의 삶’이란 표현을 직접 인용하기도 했다. 윤 상임이사는 “가해자 중심의 보도는 피해자에게 피해의 경험을 재현시킨다”고 말했다. ‘괴물’이나 ‘짐승’과 같이 범죄의 심각성을 무마한 표현도 다수 사용됐다. 김민주 언론인권센터 미디어피해구조본부 활동가는 “성범죄를 ‘몹쓸 짓’이라고 표현한 경우가 많다”며 “이는 범죄 행위의 심각성을 왜곡한 대표적인 예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미투 운동’을 보도한 기사의 상당 수는 피해자의 완전무결을 심문했다. 지난 2018년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권력형 성범죄 재판이 진행됐다. 언론은 가해 사실보다 “넹”이나 “아니욤” 등 피해자가 사용한 말투를 논란 삼았다. 지난 2020년 7월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권력형 성범죄 보도에도 언론은 같은 태도를 취했다. 언론은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친근하게 행동한 모습을 담은 영상에 문제를 제기했다. 이외에도 정계의 ‘피해호소인’ 발언을 그대로 보도하며 2차 가해를 유도했다.

언론사 보도 책임에 관한 법이 개정되면 무분별한 2차 피해를 저지할 수 있다. 피해자는 2차 피해를 입힌 언론을 대상으로 ‘형법 제307조 명예훼손죄’를 입증할 수 있지만 많은 제약이 있다. 이를 위해 지난해 8월부터 국회 본회의에서 계류 중인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통해 언론기관의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본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경우 ▶최대 5배의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 ▶언론의 고의·중과실 추정 조항 신설 ▶해당 언론 보도와 같은 시간과 분량 및 크기로 정정보도 등의 내용이 신설된다. 그러나 고의 또는 중과실을 판단하는 기준이 모호하기에 언론중재법이 언론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성평등 언론을 위한 진일보
지난달 7일(월) 법무부는 정부 부처 최초로 부처 내에 인권·젠더데스크를 설치했다. 법무부 내 보도자료와 홍보물의 인권·성인지감수성 향상을 위해서다. 이어 ‘인권·성인지감수성 제고를 위한 가이드라인’도 발표했다. 해당 가이드라인은 피해자 보호를 위해 성적 대상화 및 성차별적인 표현을 지양하도록 했다. 성폭력 피해자의 신상과 가해자의 범행 수법에 관한 상세한 정보전달도 금지됐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보호를 위해 ‘음란물’과 ‘성착취물’의 구분을 강조했으며 디지털 성범죄 피해영상물이 유포된 온라인 플랫폼을 특정하지 않을 것을 언급했다. 이혜미 한국일보 기자는 “필연적으로 다른 자료를 참고하게 되는 언론 보도의 특성상 젠더와 인권에 관한 기본적인 보호기준의 확립은 고무적이다”며 “언론사가 인권·젠더감수성을 갖춘 보도의 필요성을 확인하는 신호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각 언론사는 댓글창을 폐쇄해 2차 가해를 방지할 수 있다. 지난해 11월 네이버(Naver)는 각 기사마다 댓글 온·오프(ON·OFF) 기능을 제공했다. 이에 같은해 11월부터 한겨레는 자사 포털 내 성범죄 보도 기사의 댓글창을 폐쇄했다. 윤 상임이사는 “한국처럼 기사에 관한 혐오 댓글을 그대로 노출시키는 경우는 드물다”며 “성범죄 2차 가해 방지를 위해 댓글창을 폐쇄한 한겨레의 사례를 많은 언론사가 참고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성평등 표현을 지향한 기자들의 정정보도 또한 이어졌다. 지난 2020년 한 기자는 N번방 사건을 보도하며 ‘개발자 꿈꾸던 모범생, ‘부따’ 강훈의 이중생활’이란 제목을 사용했다. 이에 독자들은 가해자에게 서사를 부여해선 안된다고 지적했다. 해당 기자는 피해자들을 위한 기사를 쓰겠다며 사과문을 게재했고 이후 범죄 사실에 초점을 맞춰 기사 제목을 수정했다.

 

언론 보도 속 올바른 젠더표현 문화가 자리잡기 위해선 대중의 관심이 필요하다. 기자를 성찰하게 만드는 것은 독자의 진정성 있는 지적이다. 양연규(법 18) 학우는 “언론을 포함해 많은 분야에 남아있는 성차별로 인해 논란이 많이 일고있다”며 “변화의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과정이기에 계속해서 목소리를 내야한다”고 말했다. 여성혐오적이거나 성차별적인 기사를 봤을 때 지나치지 않고 정당한 지적을 피력한다면, 올바른 젠더 표현을 사용하는 언론 문화를 만들 수 있다. 이혜미 한국일보 기자는 “성평등 언론을 위한 격동의 시기를 지나고있다”며 “독자들의 진정성 있는 피드백을 통해 성평등한 언론 보도가 많아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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