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한 장면처럼 인공피부와 장기를 사용할 수 있는 날이 머지 않았다. 지난 2016년 ‘3D바이오프린팅’ 기술을 이용해 만든 인공혈관이 세계 최초로 영장류인 원숭이에게 이식되는데 성공했다. 영화 <아일랜드> 속 배양액에서 키워낸 맞춤형 인공장기로 복제인간을 만든 장면과, 영화 <리포 맨>의 인공장기가 거래되는 시장이 더 이상 영화 속 허구는 아니다. 영화와 같은 생체공학 기술의 상용화를 위해선 해당 기술들의 제작 가능성과 합리적인 가격 설정이 필수적이다. 이 두 가지를 실현하기 위해 과학자들은 3D바이오프린팅을 선택했다.
 

3D프린팅, 어디까지 왔는가
3차원의 입체 모형을 출력하는 기술을 ‘3D프린팅’이라 한다. 개별화 및 맞춤형 기술로 주목받는 3D프린팅은 세계경제포럼(WEF)의 ‘미래의 12대 기술’로 2차례 선정된 바 있다. 실용성으로 주목받은 3D프린팅은 세계적으로 약 126억 달러 규모의 시장을 가진 산업이 됐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IDC)은 3D프린팅 시장 규모가 올해 23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울산과학기술원 강현욱 바이오메디컬 공학과 부교수는 “3D프린팅의 현재 시장 규모는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며 “실용성을 갖춘 3D바이오프린팅 기술은 성장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

3D프린팅은 재료만 있다면 어떤 제품이든 인쇄 가능하다. 이러한 특징으로 3D프린팅은 플라스틱, 금속 등을 재료로 우주, 항공, 식품 등 다양한 분야에 응용됐다. 개발 초기인 1990년대의 3D프린팅은 인공위성과 항공 기기 등의 부품 인쇄에 활발히 이용됐다. 지난 2018년 영국 뉴캐슬대(Newcastle University) 연구진은 사람의 각막 줄기세포를 3D바이오프린터에 투입해 맞춤형 인공각막 제작에 성공했다. 이처럼 플라스틱과 금속 이외에 초콜릿과 같은 식품을 인쇄하는 ‘3D푸드프린터’와 인공각막과 같은 인공기관을 프린팅하는 ‘3D바이오프린팅’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오늘날의 3D바이오프린팅은 복잡한 기관까지 구현할 수 있다. 지난 2019년 이스라엘 텔아비브대(Tel Aviv University) 연구팀은 3D바이오프린터로 인공심장 출력에 성공했다. 본 연구팀은 모형 형태가 아닌 살아있는 세포, 혈관 그리고 심실로 이뤄진 인공심장을 만들어냈다. 장서연(회화 22) 학우는 “가족 중 신체 일부가 불편한 사람이 있다"며 “3D바이오프린팅을 통해 불편함이 해소된다면 정말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 2019년 성균관대학교 김근형 교수와 전남대학교 장철호 의과대학 교수 공동 연구팀은 3D바이오프린터를 이용한 인공근육 출력 기술을 발표했다. 이외에도 지난 8월엔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김성원 교수, 가천대학교 이진우 교수를 비롯한 연구진은 난치성 기관 결손 환자를 위한 맞춤형 이식용 인공기관을 개발했다. 

3D바이오프린팅의 작동방식
3D바이오프린팅에서 ‘출력방식’과 ‘*바이오잉크’는 비용과 출력물의 수명에 큰 영향을 미친다. 출력 방식은 공정의 전반적인 과정을 의미하며 미세압출, 잉크젯, 레이저보조 방식이 대표적이다. 이용된 출력 방식에 따라 출력할 수 있는 대상이 제한되며 금전적, 시간적 비용이 달라진다. 세포와 하이드로겔(Hydrogel)로 이뤄진 바이오잉크엔 네 가지 주요 기능이 있다. 먼저 3차원의 구조물을 쌓거나 출력, 표면 처리하는 3D바이오프린팅 과정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공정 과정에서 세포를 보호할 수 있어야 하며, 세포에 영양분을 제공해 세포재생을 도울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다양한 임상 검증을 거칠 수 있을 정도로 안정적이어야 한다.

위 네 가지 기능을 충족하기 위해 바이오잉크는 ‘하이드로겔’로 구성된다. 커다란 분자인 하이드로겔은 물과 쉽게 결합해 많은 수분을 함유하고 있다. 하이드로겔의 수분은 3D바이오프린팅이 세포에 미치는 충격과 오염을 막는다. 칼슘이온과 반응해 하이드로겔 구조를 띄게되는 알지네이트(Alginate)는 반응 속도가 빠르고 다루기 쉽단 장점이 있다. 세포 친화적인 피브린(Fivrin)은 3D바이오프린팅에 사용되는 대표적인 하이드로겔 물질이다. 강 부교수는 “알지네이트는 공정에 적합하고 피브린은 세포의 재생속도를 높인다”며 “그외 하이드로겔화가 가능한 콜라겐, PEG, 젤라틴도 바이오프린팅에 활용 가능하다”고 말했다. 지난 2016년엔 포항공과대학교 조동우 교수팀이 ‘탈세포 처리 기술’로 만든 ‘세포외기질 하이드로겔’을 발표했다. 세포외기질 하이드로겔은 인체의 조직으로부터 직접 추출한 물질이다. 세포외기질 하이드로겔은 수축과 이완 운동을 해 실제 근육과 유사한 기능을 할 수 있다.

미세압출 방식은 잉크를 분사해 제품을 출력해낸다. 해당 방식은 연구 초기부터 이용돼 현재까지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으나 나노리터(10–9 L) 크기의 잉크를 출력해 정밀도와 해상도가 낮다. 따라서 이 방식은 아주 얇은 폐포 조직이나 섬세한 피부 조직과 같은 복잡한 구조를 만들기엔 적합하지 않다. 포항공과대학교 정성준 신소재공학과 부교수는 “현재 3D바이오프린팅 시장에선 미세압출 방식이 90% 이상 사용되고 있다”며 “지속적인 3D바이오프린팅의 발전을 위해선 새로운 방식이 연구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미세압출 방식의 취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잉크젯과 레이저보조(Laser-assisted) 방식이 주목받고 있다. 잉크젯 방식은 피코리터(10–12 L) 크기의 잉크를 사용해 복잡한 구조의 출력물 제작이 가능하다. 또한 레이저보조 방식은 미세압출 및 잉크젯 방식과 달리 레이저를 사용하기에 출력 과정에서 재료가 부족하거나 막히는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나에게 딱 맞는 ‘인공장기’
3D바이오프린팅은 비용 절감, 시간 단축 등 기존 3D프린팅의 장점을 공유한다. 3D프린팅은 재료를 쌓아 만드는 ‘적층’ 방식을 활용한다. 이러한 3D프린팅의 적층과정은 낭비되는 재료를 최소화하고 필요한 양 만큼만 재료를 출력해 경제적으로 유리하다. 이외에도 도면만 있다면 다양한 디자인을 시도해볼 수 있다. 강 부교수는 “기존 바이오프린팅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더 높일 수 있도록 개발 중이다”며 “신약 실험을 위한 조직과 질병 모델의 대량 제작이 가능하도록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3D바이오프린팅은 제품 테스트 및 생산에 소요되는 시간이 짧다. 3D바이오프린팅은 제조업 공장의 주물 가공과 시제품 생산 및 성능 시험을 거치지 않는다. 따라서 3D바이오프린팅 출력물은 3D디자인이 설계된 후 곧바로 제품 생산이 가능하다. 인공 귀 제작 과정에선 우선 실제 귀를 컴퓨터 단층 촬영장치(Computed Tomography, CT)와 자기공명영상장치(Magnetic Resonance Imaging, MRI)로 촬영한다. 이를 컴퓨터 그래픽 디자인을 통해 입체적으로 설계한 이후 설계 디자인에 따라 세포와 하이드로겔로 이뤄진 바이오잉크를 3D바이오프린터에 투입해 출력한다. 마지막으로 만들어진 인공 귀에 영양분을 공급해 세포를 성장시킨 뒤 원하는 위치에 이식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은 수년 내에 3D바이오프린팅을 통한 인공장기가 일부 상용화될 것으로 분석했다. 

인공장기 시장은 3D바이오프린팅을 통한 ‘맞춤형 장기’를 기대하고 있다. 3D바이오프린팅은 환자 개인에게 맞춘 장기 및 조직을 출력해낼 수 있는 기술이다. 3D바이오프린팅은 환자의 상태에 맞춰 세포의 크기부터 밀도까지 자유롭게 설정할 수 있다. 정 부교수는 “3D바이오 프린팅이 약물 반응을 실험하는 체외 약물 실험이나 맞춤형 의약기술에 활용될 날이 머지않았다”고 말했다. 3D바이오프린팅으로 제작한 인공장기와 기관은 장기기증이나 동물 장기이식이 지닌 거부 반응을 최소화한다.

 

3D바이오프린팅의 발전에도 인공기관이 신체에 미칠 부작용에 대한 우려는 여전하다. 최윤정(컴퓨터과학 19) 학우는 “3D바이오프린터로 만든 인공장기에 거부감이 여전히 산재한다”며 “앞으로 3D바이오프린팅으로 만든 인공기관의 안전성이 보장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3D바이오프린팅 기술을 안전하게 사용하기 위해선 기술적, 제도적 발판이 마련돼야 한다. 더욱 안전한 3D바이오프린팅이 우리에게 눈과 귀를 가져다 줄 세상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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