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좀 빠졌다’란 말을 칭찬처럼 주고받는 시대다. 마른 몸이 칭찬의 대상이란 생각이 사회에 전제돼 있기 때문이다. 사회가 정한 미적 기준에 부합하는 사람은 끝없는 자기 검열과 낙인 속에 살아간다. ‘다이어트는 평생의 숙제’란 말처럼 현대인은 다이어트 여부와 상관없이 체중 감량의 굴레에 놓여있다. 사회적 통념으로 자리 잡은 ‘이상적인 몸’의 기준, 여성에겐 어떻게 기능했을까.


‘당신의 몸에 만족하시나요’
‘이상적인 여성의 몸’에 대한 기준은 영상 매체가 발전하면서 엄격하게 매겨졌다. 영상 매체의 영향으로 대중은 보이는 이미지를 더 중요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영상은 ‘보는 사람’과 ‘보이는 사람’ 사이의 수직 관계를 형성한다. 여성과 남성의 권력 관계를 연구한 미국의 사회학자 피터 버거(Peter Berger)는 ‘항상 남성이 보는 사람의 위치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의 의견에 따르면 여성은 관객을 만족시키기 위해 존재하며, 특히 미디어 중독 사회에서 여성의 몸은 남성의 시선이 향하는 위치에 놓이기 쉽다.
미디어는 마른 몸만이 옳다는 잘못된 믿음을 심어 여성 스스로 본인 신체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형성하게 한다. 미디어엔 대부분 마른 여성들이 등장한다. 대표적인 예로 인형 같은 체형을 가진 애니메이션 등장인물들이 있다. 또한 우리나라 예능은 아름다운 몸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여성을 유머로 소비하며 수용자에게 외적 검열의 계기를 끊임없이 제공한다. 김지양 플러스 사이즈 전문 의류 브랜드 ‘66100’의 대표는 “미디어가 계속해서 마른 몸을 우상화한다면 여성은 체중이 증가하면 안 된다는 강박에 시달리게 된다”고 말했다. 여성은 자신과 미디어에서 파생한 신체 이미지 간 차이를 계기로 자신의 신체를 부정적으로 평가하거나 왜곡하는데, 이것을 ‘신체 불만족’이라고 한다.
 

▲김지양 플러스 사이즈 전문 의류 브랜드 ‘66100’의 대표가 '몸과 옷'이란 주제로 89명의 여성들과 대화한 내용이 담긴 책이다.
▲김지양 플러스 사이즈 전문 의류 브랜드 ‘66100’의 대표가 '몸과 옷'이란 주제로 89명의 여성들과 대화한 내용이 담긴 책이다.


자유없는 프리 사이즈
마른 신체 상을 ‘아름다운 여성의 몸’이라고 여기는 사회 분위기는 여성을 병들게 한다. 여성은 마른 몸을 내면화해 말라야만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이는 신경성 식욕부진증, 신경성 폭식증 등의 섭식장애로 이어진다. 극단적인 다이어트 경험이 있는 최희령(한국어문 19) 학우는 “일반식을 먹으면 살이 찔까 두려워 샐러드만 먹는 초절식을 감행한 적이 있다”며 “소위 ‘먹토’를 위해 입에 손가락을 넣기 시작한 시점에서 절식을 그만뒀다”고 말했다. 이처럼 여성들은 살이 찌는 것이 잘못됐단 인식을 강요하는 사회 속에서 섭식장애의 임상적 특징을 보이기도 한다.
국내 의류 산업 또한 여성이 사회적 기준에 자신의 몸을 맞추려는 원인이다. 해외 기성복 브랜드보다 국내 브랜드의 여성 옷 사이즈는 한정적이다. 국내 브랜드 ‘스파오(SPAO)’ ‘에잇세컨즈(8seconds)’ ‘탑텐(TOPTEN)’의 여성 상의 사이즈가 S부터 L까지 판매되지만, 해외 브랜드인 ‘자라(ZARA)’는 XXL 사이즈까지 제공한다. 이는 플러스 사이즈 의류를 제작해도 수익이 나지 않는 국내 의류 시장의 특성 때문이다. 지난해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OECD 비만율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18년 기준 전체 평균은 60.3%, 한국은 34.3%가 비만 인구다. 해외보다 플러스 사이즈 수요가 적기 때문에 의류 생산자 입장에선 제작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따라서 프리사이즈(Free Size)라도 실측은 S나 M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Body Positive
최근 여성들 사이에서 자신의 몸을 긍정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으로 ‘자기 몸 긍정주의(Body Positive)’와 ‘탈 다이어트’가 있다. 자기 몸 긍정주의란 미디어를 통해 정형화된 ‘이상적인 몸’에서 벗어나 자신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자세다. 여성들은 자신의 몸을 재단하는 기준의 오류에 맞서고 있다. 그 예론 플러스 사이즈 전문 브랜드 증가가 있다. 김 대표는 “어쩔 수 없이 맞지 않는 기성복을 구매하는 현실이 안타까워 ‘66100’을 설립했다”고 말했다.
보정 목적의 속옷이 아닌 편안함을 위한 속옷 수요도 증가했다. 이에 발맞춰 플러스 사이즈 옵션을 추가하는 쇼핑몰이 늘어나고 있다. 또 최근 의류 판매장은 프리사이즈란 용어가 아닌 다양한 신체에 맞는 단 하나의 사이즈란 의미의 ‘원 사이즈(One Size)’로 대체해 표기하고 있다. 최 학우는 “여성이 극복해야 하는 대상이 자신의 몸이 아니라 사회의 규정으로 변화했음에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여성이 주체적으로 자신의 몸을 긍정하는 움직임이 커지자 세상의 기준도 함께 변화하기 시작했다. ‘펨버타이징(Femvertising)’의 등장이 그 증거다. 펨버타이징이란 페미니즘(Feminism)과 광고(Advertising)의 합성어로 기존 성차별적 광고를 거부하고 성 평등 가치를 추구하는 광고다. 20·30대 여성의 요구에 맞춰 변화하는 브랜드가 많아지면서 펨버타이징의 영향이 더 확대됐다. 접근성이 높아진 펨버타이징을 통해 몸 긍정을 내면화하는 여성이 늘어나는 선순환이 이뤄졌다.


‘If not me, who? If not now, when?’ 배우 엠마 왓슨(Emma Watson)이 유엔 양성평등 캠페인 ‘히포쉬(HeForShe)’의 연설에서 남긴 말이다. 이제는 사회가 부여하는 미적 기준에 맞서 ‘지금’ ‘내가’ 변화해야 할 때다. 여성들은 세상이 부여한 기준에 문제를 제기하고 몸 긍정이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여성 개인의 움직임이 모여 확대된다면 언젠가 모든 여성이 자신의 모습 그대로 존중받을 날이 오리라 믿는다.


참고문헌
이수안. (2009). 여성 몸 이미지의 전형과 내면화 과정의 시각 체계적 상호작용 - 몸매관리산업 광고 이미지 분석을 중심으로. 여성학논집, 26(1), 73-108.

저작권자 © 숙대신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