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초반 ‘인구’는 단순히 많은 사람을 뜻하는 단어로 처음 등장했다. 각국이 가진 노동력의 수가 곧 국력이었기 때문이다. 18세기 중반 중농주의가 나타나며 효과적인 농작을 위해 최적의 인력을 배치해야 했다. 인구의 의미는 점차 ‘많은 사람’에서 ‘적절한 수의 사람’으로 옮겨갔다. 오늘날의 인구는 일정한 지역에 사는 사람의 수를 뜻한다. 이처럼 인구의 정의는 시대에 따라 변화했다. 그러나 우리에게 유의미한 정보를 제공하는 인구의 본질은 변함이 없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진행된 특별전 ‘사람, 숫자: 인구로 보는 한국 현대사’에선 네 개의 소주제를 통해 시대에 따른 인구 문제를 조명한다. 전시를 통해 우리나라 인구의 어제와 오늘을 살펴보자.


인구폭발, 가족계획사업에 불을 붙이다
1960년대 출산율의 증가와 영유아 사망률 감소로 인구가 급증하면서 가족계획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한국전쟁 무렵 50%에 달했던 영유아 사망률은 해외 원조 및 의학 기술의 발달로 지난 1960년엔 30% 미만으로 감소했다. ‘사람, 숫자: 인구로 보는 한국 현대사’ 전시장에 전시된 인큐베이터와 유리 주사기는 1960년대의 의학 기술을 보여준다. 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자녀 수인 합계출산율은 60년대 당시 6명이었다. 이때 인구성장률이 유지된다면 23년 후엔 인구가 두 배 증가할 것으로 예상됐다. 지난 1961년에 박정희 정권에선 인구 제한 정책을 시행함과 동시에 사단법인 대한가족계획협회를 창립하고 다음 해 가족계획사업 10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가사 노동에 종사하던 여성들이 경제 활동에 진출했으나 그 범위는 한정적이었다. 산업화로 촌락의 인구가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이동하며 여성의 사회 진출이 증가했다. 당시 많은 여성이 버스 안내양, 직물 공장 직원 등 높은 학력이나 특별한 기술을 필요로 하지 않는 직종에 종사했다. 이들은 낮은 임금과 열악한 처우에도 노동을 지속했다. 1부의 마지막엔 그들이 사용한 재봉틀과 빨간색 버스 안내양 모자가 전시됐다. 그 옆엔 영화 ‘영자의 전성시대’의 OST가 수록된 LP 앨범도 놓여있다. 돈을 벌기 위해 상경한 영자는 급여가 적은 직물 공장을 그만둔 후 버스 안내양으로 일하다 사고로 한쪽 팔을 잃는다. 그는 당시 홀대받던 여성 노동자를 대표한 인물로 그려진다. 옆에 배치된 한국 직업 사전엔 ‘하녀’란 직업이 등재돼 있다. 가사 노동을 한 여성 대부분이 식모로 일했던 현실을 반영한다.

전시 2부에선 ‘선을 넘어간 사람들’이란 주제를 통해 등한시됐던 이주민들의 인권 문제를 조명한다. 지난 1952년 당시 이승만 정권은 ‘한 핏줄 한 운명’이란 표어 아래 단일 민족만을 중시하는 ‘일민주의’를 내세웠다. 따라서 한국 여성과 주한 미군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 사생아 등은 단일 민족 정서에 반한단 이유로 쫓겨나듯 이민을 가야 했다. 한편 영화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은 해외 입양의 현실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자료다. 영화의 주인공 ‘유숙’은 4살에 스웨덴으로 입양돼 ‘수잔 브링크’란 이름으로 살아간다. 남편이 사망해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던 유숙의 어머니는 여성이 혼자 아이를 키울 수 없단 사회 분위기에 휩싸여 아이를 입양 보낸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를 통해 당시 한국 사회에 만연했던 편모 가정에 대한 편견을 엿볼 수 있다.

▲스웨덴으로 입양된 수잔브링크가 친모를 찾는 과정을 그린 영화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의 포스터다. 그 옆엔 당시 전쟁 고아를 해외로 입양 보냈음을 알 수 있는 입양특례법 문서가 있다.
▲스웨덴으로 입양된 수잔브링크가 친모를 찾는 과정을 그린 영화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의 포스터다. 그 옆엔 당시 전쟁 고아를 해외로 입양 보냈음을 알 수 있는 입양특례법 문서가 있다.



반쪽짜리 인구대책, 여자아이들은 어디에
가족계획사업을 시행해 인구 증가는 정체됐으나 성비 불균형은 해소되지 않았다. 당시의 가족계획은 모자 보건 및 가정 경제 향상이란 본래의 목적과 달리 산아 제한만 중시했다. 근본적인 문제인 남아선호사상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행된 산아제한은 여아 인공 유산을 종용했다. 이 시기 도입된 초음파 진단 장비로 태아의 성별을 미리 알 수 있게 되면서 성비 불균형이 더욱 심화했다. 전시장 가운데에 있는 초음파 진단 장비 뒤쪽으로 돌아가면 지난 1989년에 방영된 KBS 9시 뉴스 방송의 일부인 ‘국민학교 여자 짝꿍 쟁탈전’을 시청할 수 있다. 해당 자료엔 남학생이 여학생과 짝꿍을 하고 싶어 서로 경쟁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이는 본 자료는 당시 남아의 수가 여아보다 월등히 많아 발생한 현상을 보여준다.

전시장 3부에 위치한 ‘피임의 집’은 70년대에 사용된 피임 교육 공간을 재현했다. 과거 대한가족협회는 피임 도구 사용법을 교육하기 위해 전국 기초 자치 단위에 피임의 집을 설치했다. 빨간 벽을 지나 내부로 들어서면 가운데에 놓인 칠판이 눈에 띈다. 칠판엔 피임법, 남녀 간 건전한 교제법 등이 적혀있다. 과거 정부는 정관 수술 비용을 지원하고, 자궁 내 피임기구 삽입 시술을 무료로 제공했다. 외에도 책상 주변을 둘러싼 벽엔 피임 관련 교육 서적, 당시에 판매된 남성용 피임 도구 ‘꽃신’, 경구 피임약 ‘진주’ 등이 전시됐다.

 

▲단산 가족 회의가 진행되는 모습을 재현한 피임의 집 내부 모습이다.
▲단산 가족 회의가 진행되는 모습을 재현한 피임의 집 내부 모습이다.

성차별적 통념의 시초는 의학서 동의보감 잡병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전시된 동의보감 잡병편 권10 부인문 사본엔 배 속 아이의 성별을 구분하는 법, 잉태된 여아를 남아로 바꾸는 법 등이 기술돼 있다. 아이의 성별을 남자로 바꿀 방법으론 ‘임신한 것을 알기 시작한 때에 도끼를 임신부 모르게 침상 밑에 둔다. 믿지 못한다면 닭이 알을 품을 때 도끼를 둥지 아래에 매달아 보라. 그러면 둥지의 모든 닭이 수컷이 되니 이것으로 알 수 있다’ ‘남편의 머리카락과 손발톱을 임신부 모르게 자리 밑에 깔아 놓는다’ 등이 적혀있다. 본 전시는 이에 대해 ‘다소 황당하게 들리는 이야기다’고 평가했다.

여성을 판단하는 비과학적인 띠별 속설이 정리된 글도 전시됐다. 각 속설은 ‘소띠 여성은 가정적이다’ ‘백말띠 여성은 기가 세다’ ‘토끼띠 여성은 온순해 부모님을 잘 모신다’ 등 사실과 거리가 먼 내용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최근까지도 많은 사람이 이런 비과학적 논리를 믿어왔다.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용의 해인 1988년엔 113.2명, 말의 해인 1990년엔 역대 최고치인 116.5명의 출생성비를 기록했다. 출생성비는 100을 넘으면 그만큼 남아가 더 많이 태어났단 것을 의미한다. ‘용띠, 말띠 해에 태어난 여자는 팔자가 드세다’는 편견 탓에 해당 연도엔 인위적으로 성비가 극대화됐다. 

▲1986년, 1988년, 1990년의 출생성비를 나타낸 그래프다.
▲1986년, 1988년, 1990년의 출생성비를 나타낸 그래프다.



미래를 위한 인구 담론
‘카페100’에선 현대 한국사회의 인구 문제를 카페 음료에 빗대어 소개한다. 관람객은 카페100 한 쪽에 놓인 기계에서 인구 문제라는 음료가 담긴 컵을 받을 수 있다. 인구 문제 컵엔 센서가 부착돼 있어 이를 카페 테이블 위에 인식시키면 빔프로젝터(Beam Projector)로 인구 문제에 대한 질문과 답변이 비친다. 컵의 종류에 따라 저출산, 다문화, 고령화 중 한 가지 주제에 관한 질의응답을 볼 수 있다. 각 주제에 대한 질문은 ‘아이는 꼭 낳아야 해?’ ‘다문화 가정이 그렇게 많아?’ ‘100살이나 살면 어떨까?’ 등이다.

▲본 전시의 4번째 공간 ‘카페100’의 카페 테이블에 질문과 답변이 나타나는 모습이다.
▲본 전시의 4번째 공간 ‘카페100’의 카페 테이블에 질문과 답변이 나타나는 모습이다.

우리나라는 저출산 문제의 원인을 특정 집단에서 찾고 있다. 지난해 기준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84명으로 역대 최저치며 OECD 국가 중 최하위에 속한다. 본 전시는 뉴스1의 ‘백말띠의 비극’ 기사를 인용했다. 기사는 현재 가임 여성이 산아제한 정책과 띠별 속설로 성비 불균형이 심해진 때 태어난 여성 인구임을 강조한다. 이는 저출산을 여성의 탓으로만 돌린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

2010년대부터 다문화 가정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진열장 속 다국어 산모수첩과 어린이 건강수첩은 보건복지부가 지난 2011년부터 제작해 보급한 실제 수첩이다. 보급 대상은 결혼이주여성이며 현재 한국어를 포함한 9개 국어로 제작되고 있는 해당 수첩은 다문화 가정의 우리나라 정착을 지원하는 수단 중 하나였다. 수첩 진열장 뒤쪽 벽에 붙은 통계 포스터 ‘다양해진 우리 이웃’을 통해 다양한 가구 형태의 증가율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의 다문화가정 학생 수는 14만 7378명으로 지난 2012년 대비 3.14배 증가했다. KBS에서 지난 2015년 1월 시작한 시사교양 방송 ‘이웃집 찰스’는 본 전시의 특별전 중 하나로 한국 사회에 정착한 이주민들의 삶을 기록한다.

우리나라는 늘어난 노년 인구와의 공존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지난 1970년 62.3세였던 기대 수명은 지난 2019년엔 83.3세까지 늘어났다. 또한 10년 전엔 입원환자 중 산모가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했지만 현재는 백내장과 폐렴을 앓는 노인이 주를 차지한다. 이에 국가는 지난 14년간 노인 복지 시설을 29.1% 더 증설했다. 지난 2019년엔 입학생이 적은 초등학교에 노인을 위한 한글 교실이 열렸다. 지난해엔 노년을 제2의 청춘이라 칭하며 노인을 겨냥한 자동차 브랜드의 광고가 조회 수 약 266만 회를 기록하기도 했다.


지난 2016년 말, 정부는 가임기 여성 수에 따라 각 지자체에 순위를 매긴 ‘대한민국 출산지도’를 만들었다. 해당 지도가 올라온 사이트는 바로 폐쇄됐지만, 저출산을 여성의 탓으로만 돌렸단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5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비혼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여성을 비난하거나 인구 담론을 성별 갈등으로 왜곡하려는 시선은 여전히 존재한다. 저출산과 고령화의 원인을 특정 세대나 성별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건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아니다. 프랑스의 역사가 필립 아리에스는 그의 저서
「아동의 탄생」에서 ‘승리한 것은 개인주의가 아니라 바로 가족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개인의 탓으로 돌리기 보다는 함께 고민하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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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주, 「가족과 통치」, 창비,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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