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대학 교육은 한 분야에 전문화된 인재를 길러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본전공만 심화 학습하는 대학 교육 구조는 인문사회계열과 이공계열을 분리하고 다른 학문과의 교류를 차단한다. 교육 구조의 한계점이 거론되며 대학 교육 과정 변화의 필요성이 주목받고 있다. 이에 학문 간 경계를 허문 ‘융복합형 인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미래 사회를 위한 융복합형 인재는 현재 어디까지 성장했을까.


대학 사회 속 ‘융복합 교육’ 
융복합이란 융합과 복합의 합성어로 여러 기술이나 학문이 더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녹는다는 뜻의 융(融), 겹친다는 뜻의 복(複), 모은다는 뜻의 합(合)에서 유래한 ‘융복합’은 서로 다른 것을 녹여 하나로 합한다는 뜻을 가진다. 대표적인 융복합의 예시로 정밀농업이 있다. 정밀농업은 정보통신기술을 접목해 생산 효율성을 높인 농업기술을 말한다. 이러한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1차 산업과 4차 산업이 결합하며 산업 구조가 고도화됐다. 이에 복잡해진 산업 구조에 대한 창의적 사고력과 문제해결능력이 강조되며 융복합형 인재에 대한 수요가 증가했다. 미래 인재에 대한 수요는 대학가에도 적용되기 시작했다.

대학에선 융복합 교육을 위해 학제 개편을 시도했다. 본교를 포함한 일부 대학에선 융복합형 인재 양성을 위해 다양한 학과를 운영하고 있다. 서울 소재 4년제 대학교 43곳 중 학과명에 ‘융합’이 포함된 학과는 134개다. 각 대학은 학과를 신설·개편하거나 기존 학과와 연계해 소속 대학 학생들의 창의력을 키우는 융복합 교육을 선도하겠다고 주창한다. 지난해 9월 취임한 본교 장윤금 총장은 ‘세계를 품은 창의·융합형 인재’를 취임 후 최우선 과제로 상정하기도 했다. 대학 융복합 교육엔 두 개 이상의 인접한 전공에서 파생된 연계 전공, 학생이 직접 탐색을 통해 전공 지식을 쌓는 자율 전공 등이 있다.

정부는 융복합 교육 지원 사업을 적극 마련해 대학 내 융복합 과정 신설을 촉진한다. 지난 2018년 정부는 ‘교육·문화 혁신에 대한 정부업무보고’를 통해 대학의 혁신적인 교육 과정을 지원하는 학사제도 개선안을 발표했다. 교육부 주관의 ‘4차 산업혁명 혁신선도대학 지원 사업’은 융복합형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대학에 사업비를 지급한다. 융복합 교육은 학생의 전공 선택권을 확대하고 진로 개척의 다양성을 증대한다. 대학은 융복합 교육을 통해 학생들이 새로운 학문과 직업 세계의 변화에 대응할 수 있도록 돕는다. 


“융복합 교육 어떻게 운영되나요?”
과거 산업과 달리 정보통신기술의 융합으로 이뤄지는 4차 산업혁명이 시작되며 다양한 산업 분야에 대한 학습이 필요해졌다. 본교 나영진 기계시스템학부 교수는 “4차 산업혁명은 기존 1·2·3차 산업이 새로운 기술, 개념과 융합되는 것이다”고 말했다. 지난해 본교에 도입된 SMHM(Smart Mobility with Healthcare Management) 융합트랙제도는 2차 산업인 공업을 차세대 산업과 융합한 교육 과정이다. SMHM 융합트랙제도는 창의융합형 여성 기술자 양성을 목표로 기계시스템학부, 화공생명공학부, 전자공학전공, IT공학전공을 융합해 도입됐다. 해당 제도는 정보통신기술, 자율주행차 등의 교육 분야로 구성된다. 

학생들은 융복합 교육 제도로 학문의 경계의 구분 없이 폭넓은 학습을 할 수 있다. 지난해 덕성여대는 융복합 인재 양성을 위해 ‘자유전공제’를 도입했다. 자유전공제는 학생이 입학 후 1년 간 본전공을 정하지 않고 전공 탐색에 집중하는 교육 방식이다. 박일우 계명대 타불라라사 칼리지(Tabula Rasa College) 명예교수는 “학과제로 운영되는 우리나라 대학 교육 과정에선 본전공만이 강조된다”며 “단과대학, 학과의 구분 없이 학생이 공부하고 싶은 과목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1학기 시작된 본교의 학생자율설계전공 제도 또한 학생의 주체적인 학업을 돕는다. 본교 구효정 학사팀 과장은 “학생 본인이 원하는 전공 과목이 없는 경우 학생자율설계전공을 통해 새로운 전공을 설계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본교엔 영상산업에 미디어학과 홍보광고학을 접목한 영상문화커뮤니케이션전공을 비롯해 17개의 학생자율설계전공이 운영되고 있다.

융복합 교육은 타인에 대한 유연하고 개방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실현된다. 학생들에겐 새로운 정보를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타인 혹은 타 전공과의 협업이 강조된다. 나 교수는 “4차 산업과 관련한 많은 공학 프로젝트에선 협업이 중요하다”며 “*캡스톤디자인(Capstone Design)을 통해 타전공과 협업하며 그 능력을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조연성 덕성여대 기획처장은 “융복합형 인재는 시대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면서 선제적인 변화를 주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학생은 융복합 교육을 통해 개인 역량을 강화할 수 있다. 지식 기반 사회로 나아가며 학벌이나 전공이 아닌 개인 역량에 중심을 두는 문화가 발전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지난 2015년 청년 임금근로자 가운데 전공과 현재 직업간 연계성이 없는 경우가 과반수 이상이었다. 박 교수는 “학부 전공과 관련있는 기업에 취업하는 학생이 많지 않다”며 “직장과 직무가 여러번 변화한단 것은 전공보다 개인의 역량이 중요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취업과 전공의 상관관계는 점점 약화되고 있다. 능동적인 태도와 적극적인 소통 능력을 학습하는 융복합 교육은 변화하는 사회 현상에 부응하는 학문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안정적 정착을 위해 남은 과제
최근 융복합 교육은 대학 특성에 맞게 교육의 전문성을 고취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학생들의 수요를 반영한 새로운 교육 과정도 존재한다. 지난달 본교 학사팀은 학생자율설계전공에 교원추천형 전형을 추가했다. 이는 전문성을 지닌 본교 교원이 최근 취업 동향에 걸맞은 교육과정을 추천하고 설계해 운영하는 과정이다. 구 과장은 “학생자율설계전공은 대학 교육 환경이 변화할 수 있도록 돕는 촉진제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융복합 교육이 정착하기 위해선 더 높은 수준의 행정적, 경제적 지원이 요구된다. 학과제로 운영되는 현행 대학 교육은 융복합 교육의 활성화를 어렵게 한다. 조 기획처장은 “높은 수준의 융복합 교육을 체계적으로 제공하는 대학이 드물다”며 “유연한 학사제도와 더불어 학과 중심 문화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융복합 학과 운영을 위한 충분한 재정 여건도 필요하다. 박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 대부분의 대학은 인공지능, 메타버스(Metaverse), 자율주행 등 새로운 외부 환경에 대응할 재정 여유가 부족한 상황이다”고 말했다.

융복합 교육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선 현재 대학 교육의 목적과 방식을 되짚어 봐야 한다. 학과명에 ‘융합’을 포함한 전공들이 본질적으로 융합 교육을 시행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대부분의 융복합 교육 과정이 정부 정책 및 산업 흐름에 따라 신설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많은 대학이 사업비를 지원받기 위해 학과명에만 ‘융합’을 사용해 단순하게 개편하고 있다”며 “학과명을 바꾼다고 교육의 본질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란 점을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진정한 융복합 교육은 학문 간의 경계가 낮아지고 활발한 교류가 가능할 때 이뤄질 수 있다.


융복합의 뿌리는 고대 그리스에서 발견할 수 있다. 당시엔 문학, 예술, 학문, 종교 등 다양한 분야의 융합과 재창조가 자연스러웠다. 학문의 융합을 실천한 대표적인 인물엔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가 있다. 수학자이자 철학자였던 그는 융복합적 연구를 통해 다양한 분야에 큰 업적을 남겼다. 학문이 세분화되며 현대의 철학과 수학은 별개의 학문이 됐다. 그러나 21세기에 융복합이란 개념이 주목받으며 다시 그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어쩌면 융복합 교육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기존의 교육 방식으로 돌아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 자신의 전공을 넘어 다양한 분야로 관심을 넓혀보는 건 어떨까?


*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을 설계, 제작,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를 수 있도록 교육하는 종합설계 교육 프로그램임

참고문헌
「융복합교육의 이론과 실제」 차윤경 외 저, 학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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