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문화]

웹(Web)의 어원은 거미집이다. 거미가 만들어 낸 거미줄은 공간을 새롭게 구획하고 누군가에 의해 파괴되기도 한다. 생태계의 절대 포식자는 아니지만 거미줄 세상에선 거미가 왕이다. 문득 필자는 구독 중인 한 유튜브(Youtube) 채널의 영상에 기시감을 느꼈다. 영상을 시청하지 않았음에도 마치 영상을 이미 시청한 것 같았다. 미디어가 개인의 삶을 지배해버린 지금, 미디어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하다.

거미줄 밖의 세상을 알고자 하는 두 작가가 있다. 하오징반과 홍진훤이 그 주인공이다. 두 작가는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의 대주제인 **‘도피주의’가 미디어의 순기능 회복을 위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오징반은 영상 작품 <나도 이해해...>에서 자신이 코로나19와 인종 차별에 반응하고 대처하는 당사자이며 동시에 SNS로 이를 목격하는 관찰자라고 전한다. 작가는 타인의 고통은 상상할 수 없으며,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 태도에서도 진정한 이해는 달성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해를 넘어 공감을 이루려면 타인의 상황에 몰입하는 동시에 거리를 유지하는 태도가 필요하단 것이다.

작은 거미라도 새로운 거미줄을 잇다 보면 열린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 홍진훤은 설치 작품 <굿 애프터눈, 굿 이브닝, 굿 나잇 v2.0>을 통해 대형 플랫폼의 알고리즘이 사용자 위에 시각 권력으로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개인의 선택은 기업에 무한 수요로 이어지고 편협한 사고의 정착을 낳는다. 과도한 상업주의가 도래했을 때 사용자들은 미디어의 순기능을 향유할 수 없게 된다. 작가는 대안 영상 구독 서비스 <DESTROY THE CODES>를 제시해 플랫폼의 권력을 분산시키려 한다. 권력으로부터 배제된 영상을 발굴하고 무작위로 추출해 사용자의 메일로 전송한다. 이러한 작가의 시도는 강제 및 통제가 선사하는 편안함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필자는 오늘도 구독을 중지할지 고민한다. 하오징반은 개인의 거미줄이 현실에 다다르면서도 젖어 들지 않아야 모두를 수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각자의 거미줄이 어디쯤에 도착했는지 알 수 없을 때가 많다. 홍진훤은 거미줄의 다양성을 강조하지만 검색은 또 다른 검색을 낳고 구독은 또 다른 구독을 낳는다. 거대권력과 타인에 의해 편향된 관점으로만 세상을 바라본다면 자칫 자신이 견지한 시각조차도 알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도피는 편향된 시각에 대한 우리의 거리 두기가 결코 무용하지 않음을 알려준다. 

법학 19 윤하정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서울시립미술관에서 2년 주기로 진행되는 미술 축제로, 미디어아트를 비롯한 확장된 방식의 예술을 선보임.

**도피주의: 현실의 제약으로부터 탈출하려는 개인의 욕망을 의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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