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토) 방영된 ‘SNL 코리아’ 중 한 코너가 화제였다. 해당 코너에선 상사의 지적에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하고 결국은 눈물을 보이며 일을 마무리 짓지 않은 채 상황을 회피하는 20대 인턴 기자의 모습이 담겼다. 필자에겐 미숙한 사회초년생의 모습을 담은 그의 연기가 마냥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필자는 숙대신보에 들어와 많은 실수를 범했다. 수습기자 시절, 결재를 받지 않은 공문서를 발송하기도 했고 선배 기자의 피드백을 잘못 반영해 여러 차례 수정을 거치기도 했다. 이에 필자는 실수를 반성하며 미완에서 도약으로 성장하자는 의지를 담아 글을 작성한 경험이 있다. 필자는 당시의 미숙함을 부정하지 않는다. 실수투성이란 수식어가 붙은 경험이 아무런 설명도 따라오지 않는 무경험보다 낫단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경험이 비웃음의 대상이 된다면 그 누가 자랑스럽다 여길 수 있을까.

여성의 모습을 한 어리숙한 캐릭터는 쉽게 과장돼 비판받곤 한다. 맡은 일을 해결하지 못해 눈물로 책임을 모면한 이들을 마주한 경험이 있는지 묻고 싶다. 흔히 발생하지 않는 사례들로 여성이 비판의 대상이 된 상황이 어딘가 익숙하다. 미디어에선 누군가에게 민폐를 주는 미숙한 여성 캐릭터가 수없이 등장해왔다. 젊은 여성은 전문성이 부족하단 편견을 현실로 가져오는 캐릭터가 또다시 탄생한 것이다. 편견을 재현해 얻어낸 웃음은 달지 않다. 이는 잘못된 편견을 더 견고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미숙함은 입문자에게서 나타나는 하나의 상태다. 우리는 사회초년생의 미숙함이 비웃음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 재고해야 한다. 누구나 가진 미숙함을 유머로 소비하며 대상화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 든다. 해학적인 웃음을 유발하기 위함이었다고 해도, 해당 코너는 누군가를 웃음의 대상으로 삼는 것을 단순하고 가볍게 치부했다. 그들은 여성의 모습을 한 사회초년생을 비웃음의 범주에 놓이게 만들어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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