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칼럼]

“절대 너 자신을 잃지 마” 필자가 최근 재밌게 감상했던 한 액션 영화에서 나온 대사다. 당시 필자는 영화가 강조한 주체성에 공감하면서도 ‘나 자신을 잃지 말라’는 말에는 공감하지 못했다. 자신이 누구인지 이해하기보다 얼마나 못난 사람인지 나열하기 바빴던 시기여서 그랬을까. 그때는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과 자신을 놓아버리고만 싶은 충동으로 일상을 영위하기 힘들었다.

4학년 진학을 앞두고 취업 고민을 시작한 필자는 현실과 어정쩡한 타협을 시도했다. 필자 자신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면서 필자의 쓸모를 입증하고 싶었다. 지난 여름방학에 특히 그랬다. 7학기로 접어들기 전 어떤 일이라도 해보고자 여기저기 채용공고를 찾아봤다. 하루빨리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었다. 계획대로 보내지 못한 휴학 생활을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매일같이 올라오는 채용공고를 유심히 살펴봤지만 적절한 회사를 찾기 어려웠다. 가끔 관심이 가는 공고가 있다 한들 까다로운 자격요건에 단념을 반복했다. 필자만의 고유성을 지키려 했지만, 필자 자신이 부족하게만 느껴지는 날들이 반복됐다. 이대론 별 성과 없이 방학이 끝나겠단 불안감에 매몰돼 의욕마저 없어졌다.

 그렇게 심연으로 가라앉던 어느 날, 평소 좋아하던 최은영 작가의 장편소설 「밝은 밤」을 읽게 됐다. 독서 모임을 위해 빌려놓고 일주일이 지나도록 펼쳐보지 않은 책이었다. 큰 일정을 앞두고 도무지 잠이 오지 않던 밤, 책이라도 읽어야겠단 마음에 미루던 소설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첫 장을 넘기자마자 단숨에 그 속으로 빠져들었다.

 소설을 읽으며 필자는 ‘삼천이’를 설명하는 문장에 마음이 갔다. 삼천이는 일제강점기 시대 백정의 딸로 태어나 개나 말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았다. 사회는 그에게 ‘감히 양민과 눈을 마주치려 들지 말고 고개 숙이고 걸으라’고 강요했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숙이고 걸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세상이 궁금하고 사람이 궁금해서 고개를 숙이려다가도 하늘을 올려보는 사람이었다. 타고난 기질이 그랬다고 한다.

 그래. 필자도 삼천이처럼 타고난 기질을 가진 사람이었다. “어떤 경우에도 자신을 속이지 않는 재능”을 가진 사람이었다. 하고 싶은 일엔 열정이 샘솟지만, 지루한 일은 도저히 못 참는다. 무언가를 보고 읽고 쓰고 생각하며 사람들과 대화하고 싶어 한다. 남들보다 조금 민감하지만 그렇기에 감정이 풍부하다. 언젠가 직접 만든 이야기로 필자와 비슷한 사람들에게 위로를 전하고 싶어 한다. 예술이 직접 밥을 먹여주진 못해도 밥을 먹을 수 있는 최소한의 상황은 마련해준다고 믿는 사람이다.

 필자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떠올리며 자신을 깎아내리던 행위를 멈추자 많은 것이 편안해졌다.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상황일수록 ‘나’를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단 사실을 깨달았다. 조급함과 불안함에 사로잡히기보다 필자가 진정으로 바라는 바를 따라갈 것이다. 세상에 자신을 내던진 액션 영화의 주인공처럼 거창한 마음은 아닐지라도, 자신만의 고유성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 바로 ‘절대 나 자신을 잃지 않는 일’이 될 것이다.

미디어 18 강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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