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보험사가 가상 인물로 자사 홍보를 시작해 화제가 됐다. 해당 광고에서 사람과 흡사하게 춤을 추는 모델의 모습은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점차 모호해짐을 실감하게 했다. 오늘날의 ‘메타버스(Metaverse)’는 현실처럼 사회, 경제, 문화 활동이 이뤄지는 가상의 세계를 포괄적으로 의미한다. 메타버스는 1992년 닐 스티븐슨(Neal Stephensen)의 소설 「스노 크래시(Snow Crash)」에 처음 등장했다. 메타버스는 초월함을 뜻하는 그리스어 ‘Meta’와 세계를 뜻하는 ‘Universe’의 합성어다. 30년 전 처음 언급된 메타버스가 최근 다시 주목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실과 가상을 넘나드는 메타버스
메타버스(Metaverse)는 미국의 비영리기술연구단체인 ASF(Acceleration Studies Foundation)의 *기준에 따라 증강현실, 라이프로깅(Lifelogging), 가상세계, 거울세계의 4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 메타버스의 증강현실은 ‘포켓몬고(pokemon GO)’처럼 현실에 가상 이미지를 덧씌워 하나의 영상으로 출력해내는 기술이다. 라이프로깅은 일상의 데이터를 수집, 분석하고 기록하는 것을 뜻한다. 데이터를 모아 정리하는 SNS나 건강 앱들이 대표 사례다. 가상세계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다른 세상을 칭한다. 온라인 게임인 ‘포트나이트(Fortnite)’가 대표적인 가상세계다. 게임 속엔 현실과 분리된 다른 사회가 있어 공간, 시대, 문화를 초월해 모든 것이 자유롭단 점이 가상세계의 가장 큰 특징이다. 거울세계는 현실을 거울에 비춰 만든 세상이다. 구글 어스(Google Earth)와 같이 현실세계를 구현하면서도 확장성과 효율성을 더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메타버스는 기술의 발전이 코로나19와 맞물리면서 발전했다. 코로나19로 대면활동이 제한되자 사람들의 소통방식 변화 속도가 가속화됐다. 전자기기와 네트워크를 통해 소통을 이어나가며 비대면 활동의 빈도가 늘었다. 이에 현실을 실감 나게 재현한 플랫폼 소비 또한 급격히 증가했다. 기술이 진보함에 따라 메타버스의 현실성을 높이기 위한 핵심 기술인 5G 상용화에 따라 정보통신기술과 하드웨어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메타버스가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조건이 충족된 것이다.

가상세계에서도 수익 창출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메타버스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과거에 가상공간은 게임과 같은 여가활동 중에 아이템을 구매하거나 캐릭터를 꾸미는 등 소비를 하는 공간이란 인식이 강했다. 그러나 최근엔 메타버스를 활용한 플랫폼 안에서 사용되는 디지털 화폐로 수익을 창출한 사례가 등장했다. 이승환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 팀장은 "메타버스 속 공간에선 소비뿐만 아니라 아바타의 옷을 제작하거나 게임을 창작해 돈을 버는 생산까지 가능해졌다"며 “이용자들의 메타버스 내 경제 활동 범위가 확대됐다”고 말했다. 

현실세계의 축소판, 경험을 확장하다
메타버스는 과거 수백 명이 모여 진행했던 행사를 집 안에서 각자 즐길 수 있게 도왔다. 단체생활이 대부분인 학교나 회사에서도 메타버스 속 가상세계를 비대면 만남의 공간으로 활용한다. 메타버스는 같은 공간에 있는 듯한 높은 현장감을 줄 뿐만 아니라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들만 경험할 수 있는 휘발성이 있다. 이런 점에서 비대면 화상회의 앱인 ‘줌(Zoom)’이나 영상 플랫폼인 ‘유튜브(Youtube)’와 차별점을 갖는다. 

메타버스를 활용한 플랫폼은 비대면 상황에서도 아티스트와 팬들의 소통을 가능하게 했다. YG엔터테인먼트는 지난해 소속 가수 블랙핑크를 본 따 만든 제페토 아바타로 가상공간에서 팬 사인회를 개최했다. 이 행사엔 20일 간 다양한 국적을 가진 약 4600만 명의 팬들이 참여했다. 제페토(ZEPETO)는 대표적인 메타버스 플랫폼으로 네이버 자회사 네이버 제트(Z)의 증강현실 아바타 서비스다. 온라인게임에서도 가상공간을 활용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온라인 게임 포트나이트는 유저들과 문화생활을 즐기는 공간인 ‘파티로얄(Party Royale)’이 마련돼 있다. 미국의 힙합 가수 트레비스 스캇은 지난해 4월 파티로얄에서 5번의 콘서트를 열었다. 가수를 직접 만나는 것이 아니라 가수의 아바타를 만나는 콘서트임에도 약 18억 원의 공연수익을 기록하며 메타버스를 활용한 퍼포먼스의 수익 창출 가능성을 보여줬다. 이장주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 소장은 “온라인 콘서트는 아티스트와 팬이 1대1의 만남을 갖는 듯한 느낌을 제공해 몰입감을 높인다”며 “오프라인처럼 온라인도 수익 창출을 기대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교육계에선 공간의 제약을 해결하기 위해 메타버스를 활용했다. 지난 3월 순천향대학교는 SKT 가상공간 플랫폼인 ‘점프AR’을 이용해 비대면 입학식을 진행했다. 지난달 15일(일) 게더타운이란 메타버스 플랫폼을 이용해 비대면 교회 수련회를 기획한 김도현(수학 15) 학우도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인원이 모이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가상의 장소지만 익숙한 장소에서 서로의 얼굴을 보며 미션을 수행해 즐거웠다”고 말했다. 공간 마련의 어려움 때문에 제한됐던 소방훈련 교육이나 과학 실험 수업도 메타버스 세상에선 가능하다. 

기업 내에서도 메타버스를 활용해 업무를 수행한다. 부동산 앱 ‘직방’은 자체 개발한 메타버스 공간인 ‘메타폴리스(metapolis)’를 가상공간 속 본사로 지정했다. 메타폴리스에선 물리적 출근 없이 회의와 업무를 진행한다. 현실과 유사한 환경을 구축해 업무 몰입도를 높였다. 구글은 신제품 공개 행사인 ‘구글 I/O’를 메타버스 속 가상 행사장에서 진행했다. 해당 플랫폼에서 자신의 아바타로 가상 행사장을 자유롭게 구경하며 원하는 발표를 듣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단순 화상회의 앱과 달리 메타버스 플랫폼에선 아바타가 실제 사람처럼 움직이기 때문에 현장감이 증폭된다.

메타버스가 만들어낸 신경제생태계
기업들은 제품 홍보 수단으로 메타버스 플랫폼을 활용한다. 구찌(Gucci)는 해외 명품 브랜드 중 처음으로 제페토와의 협업을 진행했다. 제페토 속 아바타들은 구찌 제품을 구매하기 위해 구찌의 본사가 위치한 이탈리아 피렌체로 이동한다. 현실에선 370만 원의 명품가방이 제페토 속에선 한화 6천원 정도인 60젬(zem)이란 비교적 부담 없는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다. 제페토 이용자들은 아바타와 자신을 동일시하며 빠르게 몰입하는 경향이 있기에 현실보다 저렴한 가상의 세계에서 명품을 소유해 자신의 아바타를 꾸미려는 욕구를 가진다. 구찌뿐만 아니라 나이키, 폴로 등 다른 의류 브랜드들도 자사 제품을 제페토 내 아이템으로 등록했다. 지난 6월엔 현대자동차가 제페토와 협업해 소나타 N 라인의 자동차 디자인을 공개했고 제페토 속 아바타에게 시승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이를 통해 현대자동차는 자동차를 직접 시승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 사람들에게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 성인이 돼 차를 구매할 잠재적 고객에게 브랜드를 각인시키기도 용이하다.

메타버스는 미래 자산을 위한 투자의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어스2(Earth2)는 구글 어스 지도를 기반으로 현실을 재현한 가상 부동산 중개 메타버스 플랫폼이다. 어스2는 자사 홈페이지에 한 사용자가 어스2 내 특정지역을 0.17달러에 매수해 200달러에 매도했다는 사실을 알렸다. 가상세계를 통해 실제로 수익을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다. 이 팀장은 “과거엔 가상과 현실이 분리됐다고 믿었다”며 “현재는 두 세계가 상호작용하며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 수 있다는 사람들의 기대가 존재한다”고 가상 부동산 투자의 이유를 말했다.

가상 세계 속 투자뿐만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도 메타버스 관련주에 대한 투자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 7월 국내 투자자가 가장 많이 산 해외 주식 중 2위는 로블록스(Roblox)였다. 메타버스가 접목된 게임 로블록스는 상장 당일이던 지난 3월 10일(수), 69.5달러에서 지난달 31일(화) 84.73달러로 꾸준히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한종목 미래에셋증권 미디어콘텐츠본부 디지털리서치팀 연구원은 "많은 IT기업이 메타버스 시대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자하고 있다”며 “아직은 메타버스가 성장 초기지만 많은 분야에서 활용도가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메타버스의 성장 가능성을 설명했다.

메타버스의 급격한 발전으로 부수적인 위험도 발생할 수 있다. 메타버스 세계에선 가상 인간 복제, 아바타 대상의 성폭행 등 윤리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메타버스에서 활용된 개인 가상자산이 순수한 본인의 창작물이 아닐 시 저작권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블록체인 기반 기술의 NFT(Non-Fungible Token, 대체 불가능 토큰) 고유번호를 통해 권리자를 보장하는 것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이 팀장은 “가상세계 속에서 오감을 전달할 수 있는 기술도 진화하고 있다”며 “현실과 구분되지 않는 가상세계 속 과도한 몰입감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메타버스 속에서 나의 아바타는 우주나 미래사회 등 현재의 기술로는 방문하기 어려운 장소를 방문할 수 있다. 원하는 것이라면 모두 할 수 있는 전지전능한 존재가 되는 것 역시 가능하다. 그래서일까 메타버스는 한계 없이 상상하고 매 순간에 호기심을 가지는 10대들에게 인기다. 그러나 메타버스를 단순히 아이들의 장난거리로만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인간 정신의 상위 단계를 어린아이의 정신이라고 언급했다. 어린 아이가 인생을 유희하듯 재미있게 살아가는 것처럼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즐기기 때문이다. 시공간의 한계가 없는 메타버스는 자기 자신의 삶을 온전히 즐길 수 있는 본래의 자신에 한 발짝 가까워지는 데 도와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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