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에게 문을 열었던 제천여성도서관이 지난달 1일(목) 남성들에게도 일부 개방됐다. 제천시의 결정은 ‘여성 전용’은 남성에 차별적이기 때문에 양성평등에 어긋난다는 이유였다. 제천여성도서관은 여성을 위한 독서 환경의 필요성에 설립됐다. 제천여성도서관의 남성 이용 허가는 설립의의를 잊은 결정이라며 많은 이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지난달 ‘제천여성도서관의 남성 도서 서비스의 중단, 폐지를 요구합니다.’란 제목의 국민청원까지 등장했다. 여러 논란에 둘러싸인 여성 전용 공간은 어떤 상황에 놓여있을까.


여성 연대의 장을 살펴보다
여성 전용 공간은 여성의 기본권리를 보호하는 것에 초점을 둔다. 여성만을 위한 공간을 설정함으로써 성차별적인 사회의 불평등을 일부 해소하는 것이다. 여성의 교육권을 보호하는 여성 교육기관과 여성의 사회권 및 자유권을 위한 정부 부처 등이 여성 공간의 의미를 잘 드러내는 예다. 여성의 공간엔 여성의 안전을 보호하는 여성 전용 편의시설 또한 포함된다. 익명을 요구한 학우는 “여성 전용 공간은 여성들이 여성 혐오 범죄와 같은 차별적인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운 곳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성 전용 공간은 여성 연대의 핵심 공간이다. 이는 단순한 치안 유지의 목적을 넘어 새로운 관계망을 형성할 수 있는 공간으로 이용된다. 여성이 직면하는 성차별적인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여성 전용 공간의 특징이다. 이곳에서 여성들은 다른 여성들과 사회적 관계를 맺으며 새로운 담론을 형성한다. 여성 전용 공간의 사회적 작용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여성 전용 공간엔 여성들이 자신만의 환경을 구축하고 독자적인 연대 세력을 만들고자 하는 욕구가 반영돼 있다. 이러한 욕구가 투영된 여성 연대의 중심지는 여성 교육기관이다.

여성 교육기관은 여성들의 사회적 연대에서 시작했다. 지난 1898년 발표된 ‘여권통문(女權通文)’은 여성 교육기관 설립을 촉구하는 한국 최초의 여성 인권선언서다. 평등한 교육 기회의 보장을 강조했던 여성들은 한국 최초의 여성 단체 ‘찬양회’를 조직했다. 찬양회의 출범은 여성들이 남성에 귀속됨을 거부하고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게 된 시발점이 됐다. 여성 교육기관은 한국 최초 여성 연대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여성 연대는 자아 주체성 성장의 동력으로 작용한다. 여성들은 차별적인 시선이 존재하지 않는 환경 속에서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며 담론을 형성할 수 있다. 여성의 입장에서 남성 중심의 사회를 진단하는 행위는 여성이 능동적인 주체로서 자리함을 나타낸다. 이는 남성적 가치관에 벗어나 보다 넓은 시야를 확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학우는 "여성 대학에선 여성이 주체적으로 토론장에 나서 생각을 공유할 기회가 주어진다”며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는 과정에서 여성의 자주성이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성 연대는 성 평등을 지향한다. 여성 연대에서 시작된 단체들의 여성학적 연구는 여성 인권 증진을 도모한다. 여성에 대한 연구를 통해 여성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구조적 부조리함을 얘기할 수 있다. 본교 김지은 아시아여성연구교수는 “1960년대에 발간된 학술지에서 지적한 불평등이 현재와 그리 다르지 않다”며 “연구를 통해 불평등을 비판하고 차별을 해소할 것을 강조하는 행위에 제한은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여성들의 지속적인 연구는 평등에 다가가는 발걸음과 같다. 익명의 학우는 “성 평등이 실현되지 않은 상태에서 여성을 온전히 사람으로서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은 여성뿐이라고 생각한다”며 “하나의 인격체로서 모인 여성들이 성 평등이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함께 목소리를 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역차별’이라는 허상
여성 전용 공간이 남성에게 제한된다는 이유로 역차별적인 공간이란 인식도 존재한다. 지난 3월 11일(목) 여성가족부가 만 13세에서 만 39세 사이 청년 약 1만 명을 대상으로 성 평등 인식을 조사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약 51%의 남성이 한국 사회가 남성에게 불평등하다고 응답했다. 여성과 남성은 성별을 기준으로 구분돼 자신의 성별이 혜택을 받지 못할 때 불평등하다고 느낀다. 여성 전용 공간이 그동안 여성들에게 행해진 불평등을 상쇄한다는 목적을 가진다. 일부 남성들이 여성들만 누릴 수 있는 공간에 부당함을 느끼며, 동등한 권리를 누리지 못해 역차별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에 김 연구교수는 “역차별의 개념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에서 비롯된 논란이다”며 “성 평등이 전제되지 않은 사회에서 역차별은 성립할 수 없다”고 말했다.

▲ 여성가족부가 지난 3월 11일(목) 보도한 ‘청년의 생애과정에 대한 성인지적 분석과 미래 전망 연구’ 중 성 평등 인식에 대한 응답이다.
▲ 여성가족부가 지난 3월 11일(목) 보도한 ‘청년의 생애과정에 대한 성인지적 분석과 미래 전망 연구’ 중 성 평등 인식에 대한 응답이다.

여성가족부의 폐지 주장은 역차별 논쟁의 연장선이다. 여성가족부는 지난 1988년 여성특별위원회로 시작해 지난 2005년 여성가족부로 개편됐다. 여성가족부로의 개편을 통해 여성 정책만을 관장하지 않고 사회적 약자와 가족 정책을 수립하는 역할도 수행하게 됐다. 지난 2008년 이명박 정부의 인수위원회에서 시작된 여성가족부의 폐지론은 오는 제20대 대선을 앞둔 대권 주자들의 공약으로 여전히 등장하고 있다. 일부 정치권에선 가부장제가 만연했던 과거에 비해 여권이 신장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여성가족부가 여성의 이익만을 도모하는 역차별적인 단체라며 젠더 갈등을 야기한다는 이유로 폐지를 주장했다.

여성 전용 공간은 젠더 갈등의 원인이 아닌 성차별에 대한 도피처로 여겨진다. 젠더갈등은 불평등한 현실을 바라보는 인식 차이로 발생한다. 명백한 젠더 권력 구조 아래에서의 약자 혐오는 갈등이 아닌 차별이다. 김 연구교수는 젠더갈등 원인에 대해 “우리 사회가 아직 불평등하다는 것을 알지 못하면 페미니즘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갖기 어렵다”며 “페미니즘에 대한 잘못된 관념을 가지고 있으면 이해관계의 대립은 심화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성 평등은 누군가의 인권을 침해해 약자에게 부여하는 구조가 아니다. 일방적인 성차별 아래에서 탄생한 여성 전용 공간은 젠더 갈등을 일으킨다는 이분법적인 구도로 치환될 수 없다.

여성가족부의 역차별 논란은 우리 사회에 백래시(backlash)가 만연함을 방증한다. 백래시란 사회가 진보하면서 변화한 가치관을 향한 반발이다. 여성들이 자신의 권리와 주체성을 강화하기 위한 페미니즘이 이론이 우리 사회에 떠오르자 이러한 흐름에 반발심을 표현하는 이들이 등장한 것이다. 김 연구교수는 “백래시로 일어난 남성 인권운동의 흐름이 잘못됐다”며 “남성 인권을 증진하는 목적의 운동이 아닌 여성의 인권을 낮추려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정치권을 비롯한 우리 사회 속 백래시 확대는 여성가족부와 같은 여성 전용 공간을 폐지하자는 논의로 이어졌다.

반발에 맞서는 여성들
확산된 백래시에 대응하는 여성들도 존재한다. 사회적으로 페미니즘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자리 잡자 ‘백래시대응범페미네트워크(이하 백범넷)’ 같은 백래시를 견제하는 관계망이 형성됐다. 지난 13일(금) 여성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출범한 백범넷은 여성주의적 시선으로 백래시를 진단하고 적절한 대응책을 모색하고자 출범했다. 백범넷 발족에 참여한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의 안소정 사무국장은 “현재 정치권이 대변해주지 않는 여성들의 요구를 여성 연대를 통해 사회적으로 드러내고자 한다”며 “백범넷을 통해 연대의 폭을 확장함으로써 성 평등 사회로의 진전을 도모하려 한다”고 말했다.

백래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자 성별 정체성을 제외한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제안됐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성별을 포함해 나이와 언어, 출신 국가 등 생활 모든 영역에서 이유 없는 차별을 금지하는 법안이다. 성별 정체성을 비롯해 사회 속 모든 차별을 금지하는 내용의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의하면 여성 전용 공간은 위법으로 분류될 수 있다. 특정 성별을 위한 공간에 생물학적 성(性)과 성적 정체성이 일치하지 않는 이들의 출입 여부를 명확히 규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지난 6월 15일(화), 국민동의 청원엔 포괄적 차별금지법 중 성별 정체성을 생활 영역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내용의 청원이 게시되기도 했다.

백래시에도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정부 차원의 공간 마련 정책은 지속돼야 한다. 국가는 사회적 약자의 성장과 안전을 보장할 때 진정한 진보를 이뤘다고 볼 수 있다. 이에 여성가족부는 실질적으로 평등한 사회를 지향하는 양성평등 정책의 일환으로 여성친화도시를 추진했다. 여성친화도시는 여성을 포함한 다양한 형태의 가족 및 공동체가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지향한다. 여성과 남성이 사회적으로 동등한 위치에서 지역 발전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돕는 여성친화도시는 성 평등 관련 업무를 중점적으로 처리한다. 김 연구교수는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공간은 진정한 포용 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이 된다”며 “사회적 약자를 위한 자원의 분배가 결국 모두에게 나은 방향으로 이어질 것이다”고 말했다.


여성의 권리가 온전히 보장받는 사회가 도래하기 위해선 지속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본교 김지은 아시아여성연구교수는 “우리나라의 미래가 20대 여성들에게 달려있다고 생각한다”며 “여성들이 불평등한 사회를 향해 목소리를 내는 것이 여성 인권 운동의 쟁점이다”고 말했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지금 바로 세우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변화된 사회를 꿈꾼다면 끊임없이 세상에 평등을 외쳐야 한다.

* 고윤경(Yoon-Kyung Ko). "여성전용공간." 여성이론 -.35 (2016): 167-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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