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칼럼

오랜만에 책을 집어 들었다. 책의 첫 장을 넘기는 것이 이렇게도 어려운 일이었던가. 오랜만에 마주한 긴 줄글이 필자를 압도했고 한 문장에 모르는 단어들이 수두룩했다. 영문 원서를 읽는 것도 아닌데, 이젠 한글로 쓰인 책을 읽을 때도 사전이 필수가 됐다. 긴 줄글을 맞닥뜨릴 때 느끼는 부담감은 필자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공감할 것이다.

문해력이란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을 말한다. 문해력은 대중에겐 ‘리터러시(literacy)’로  잘 알려져 있다. 문해력은 최근 교육 이슈 중에서도 많은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주제다. 문맹률은 글을 읽거나 쓸 수 없는 사람의 비율을 뜻한다. 우리나라 문맹률은 1% 이하로 대부분의 한국인이 한글을 소리 내 읽을 줄 안다. 그러나 문해력이 낮아 글을 읽어도 실질적인 글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조사 시기와 나이대별로 측정값엔 차이가 존재하지만 한국의 문해력은 OECD 회원국 중 중간 아래에 위치한다. 하지만 문해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체감하긴 어렵다. 필자와 같이 책의 첫 장조차 넘기기 힘든 경험을 하지 않는 이상 말이다.

한국 사회의 문해력 저하는 일상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문해력이란 단순히 글자를 보는 행위를 넘어 문장을 이해하는 능력이다. 문해력 저하의 심각성은 지난해 나타난 ‘사흘 대란’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사흘 대란은 지난해 7월 21일(수) 정부가 광복절을 임시 공휴일로 지정하면서 ‘광복절 사흘간 연휴’라고 발표한 후 벌어졌다. 당시 ‘사흘’이 ‘3일’을 뜻하는지 ‘4일간’을 뜻하는지에 대한 누리꾼들의 의견이 분분했다. 심지어 기자들조차 기사 제목에 ‘사흘’을 ‘4흘’로 표기하면서 오늘날 문해력 저하의 현주소를 절실히 보여줬다.

디지털 시대의 독서량 저하는 문해력 저하의 주요 원인이다. 현재 우리는 ‘영상의 시대’에 살고 있다. 많은 이들은 독서보다 포털사이트 검색에 의존하며 인터넷에서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영상 콘텐츠를 소비한다. 인터넷이 익숙한 1030세대의 경우 하루 동안 짧은 영상 콘텐츠를 시청하는 시간이 장문의 글을 읽는 시간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많은 이들이 다섯 줄만 넘어가더라도 구구절절 쓰인 글이라며 회피하기 바쁘다. 심지어 *Z세대는 모르는 것을 동영상 플랫폼에 검색하는 편리함에 이미 익숙해졌다. 편리함에 익숙해진 그들이 장문의 글을 읽는 능력의 중요성을 깨닫기는 어려울 것이다.

문해력 저하가 초래한 가장 큰 문제는 사회구성원 간 ‘소통의 불가’다. 우리는 유튜브(Youtube)와 기사에 달린 댓글에서 누리꾼들이 서로의 댓글을 이해하지 못한 채 말꼬리를 잡고 논쟁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문해력엔 글을 이용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도 포함된다. 그렇기에 문해력 부족은 사람들이 상대방의 의견을 이해하는 데 벽을 만들어 소통의 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

짧은 영상에 익숙해져, 긴 글을 그저 귀찮은 것으로 치부하는 세상이 올지 모른다. 하지만 글을 이해하는 것엔 글쓴이와의 소통 나아가 자신과의 소통이 담겨 있다. 오늘은 덮어 놨던 활자의 깊이를 느껴보는 건 어떨까.

최한진 영어영문 18

*Z세대: 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출생한 세대를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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