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68년 개봉한 SF영화 <2001: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첫 장면에선 뼈다귀를 도구처럼 쓰는 유인원이 등장한다. 인류의 선조는 사용한 뼈다귀를 하늘 높이 던지고, 뼈다귀는 우주선으로 변한다. 뼈다귀가 우주 비행선으로 변하는 찰나의 시간에 인간의 역사를 모두 담아냈다는 <2001: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첫 장면은 아직도 영화사에서 회자되는 장면이다. 인류 문명은 영화의 뼈다귀처럼 보잘것없는 도구에서부터 차츰 발전해왔다. 불과 몇백 년 전만 하더라도 우주를 여행하는 사람이나 스스로 생각하는 로봇은 공상, 즉 판타지에 불과했다. 하지만 기술이 발전하며 판타지는 점차 현실로 변해갔다. SF(Science Fiction) 소설의 상상력이 현실에서 구현된 것이다. 지금의 SF는 판타지와 현실을 넘나드는 장르다.

지난 3월 23일(화)부터 오는 30일(일)까지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진행되는 특별전시 ‘SF 2021:판타지 오디세이’는 SF와 현실의 관계를 이야기한다. SF의 미래는 부정적인 면이 존재한다. 무분별한 기술 발전, 윤리관의 붕괴 등 SF의 영역에서 일어날 수 있는 비극도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SF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장르다. 불안한 미래를 극복할 긍정적인 대안 또한 SF가 그리는 세계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판타지 오디세이에 승선해 SF의 현재와 미래를 따라 항해를 떠나보자.

 

시각으로 체험하는 현실 반영 SF
고전 SF 작품 속에서 현실의 주요 쟁점을 읽어낼 수 있다. 1층 전시관 입구에 들어서면 벽면에 늘어선 커다란 그림이 눈을 사로잡는다. 김보영 작가의 ‘세계를 바꾸는 문장들(2021)’과 구현성 작가가 그린 6개의 만화 연작이다. 김 작가는 ▶장밋빛 전망 ▶경고 ▶사회비판 ▶소외된 자들 ▶모험 ▶새로운 세상이란 6개 주제로 SF의 특성을 설명한다. 이 주제들은 김 작가가 선정한 SF 고전 25작품을 통해 구체화된다. 구 작가는 김 작가가 제시한 작품을 만화로 표현했다.

‘경고, 과학 기술이 가져올 위험을 경고하다’‘ 메리 셸리의 SF소설 「프랑켄슈타인」에서부터, SF작가들은 꾸준히 기술이 가져올 불편한 미래를 경고했다’ 김 작가의 ‘경고’라는 작품 구절 중 일부이다. 김 작가는 ‘경고’라는 주제와 「프랑켄슈타인」을 연결 지었다.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괴물을 창조했듯이, 인간의 끝없는 기술 발전이 언젠가는 괴물 같은 미래를 가져올지도 모른단 경고다. 이에 구 작가는 ‘[Hu{Cyb(Android)org}man](2021)’에서 프랑켄슈타인에 등장하는 괴물을 인공지능과 사이보그의 모습으로 대체해 표현하기도 했다.

▲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1층 전시실1 벽면에 걸린 구현성 작가의 디지털 페인팅 작품 ‘[Hu{Cyb(Android)org}man](2021)’이다. 
▲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1층 전시실1 벽면에 걸린 구현성 작가의 디지털 페인팅 작품 ‘[Hu{Cyb(Android)org}man](2021)’이다. 사진·신유정 기자

이번 전시는 현실과 중첩되는 SF의 특성이 강조되기도 한다. 전시관 2층으로 올라가면 전시회장을 밝히는 커다란 연둣빛 화면이 보인다. 이 화면을 채운 그림들은 람한 작가의 ‘베껴 그린 이야기(2021)’다. 콩깍지에서 튀어나오는 아기토끼와 뽑기 기계의 캡슐들, 성냥에 닿자 연기처럼 사라지는 양 떼 등이 그려진 알록달록한 그림 9개는 처음에는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지 쉽게 알아차릴 수 없다. ‘베껴 그린 이야기’라는 작품 제목처럼 이 그림들은 모두 소설을 바탕으로 그려진 그림이다. 원본이 되는 소설 제목은 각 그림의 오른편에 전시된 작품에서 찾을 수 있다.

람한 작가의 그림과 대치되는 커다란 화면은 정소연 작가의 ‘동시대 SF의 화두-변화하는 세계의 감각(2021)’이다. 정 작가는 9편의 SF소설을 각각 ▶인간성 ▶페미니즘 ▶사회적 기억 ▶정상성 ▶아동 ▶생태 ▶팬데믹 ▶새로운 기준 ▶생활 공동체의 9개 주제와 관련지어 선정했다. 작품의 배경인 검은 화면에 담긴 문장들은 특정 주제를 대표하는 소설에서 발췌한 문장이다. 람한 작가는 정 작가가 선정한 9개 소설을 그림으로 재현했다.

두 작품은 어떤 순서로 감상하느냐에 따라 색다른 경험이 가능하다. 전시장에서 람한 작가의 그림을 감상한 후, 각 그림의 모티브가 된 소설을 읽는 것이 첫 번째 방법이다. 이 경우 소설을 읽으며 람한 작가가 그린 이미지의 의도를 천천히 추측해볼 수 있다. 두 번째는 글을 먼저 읽고 그림을 보는 방법이다. 이 방법을 택할 경우 본인의 경험을 토대로 그림을 자유롭게 해석할 수 있다. 김초엽 작가의 소설 「스펙트럼」에는 그림을 그려 기억과 감정을 공유하는 외계 생명체가 등장한다. 해당 도서를 읽은 관람객은 하트 모양의 개체에서 다른 개체들이 줄지어 태어나는 그림을 보고 ‘인간성이 유산을 남기듯 이어지는 그림’이라는 것을 추측해낼 수 있다.

 ▲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2층 전시실2에 람한 작가의 ‘베껴 그린 이야기(2021)’와 김보영 작가의 ‘동시대 SF의 화두’이 나란히 전시돼 있다.
▲‘베껴 그린 이야기’의 작품 주제는 인간성, 페미니즘, 사회적 기억, 정상성, 아동, 팬데믹, 새로운 기준, 생태, 생활공동체다.
▲‘베껴 그린 이야기’의 작품 주제는 인간성, 페미니즘, 사회적 기억, 정상성, 아동, 팬데믹, 새로운 기준, 생태, 생활공동체다.

 

SF가 예견한 불안한 미래
SF 장르 내엔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비관적으로 상상하는 작품들도 있다. 어떤 작가는 기술 발전의 속도가 지나치게 빨라 윤리관이 뒤처지는 미래를 예견한다. 현재 겪고 있는 재난이 오래도록 지속돼 암울한 나날이 계속되는 미래를 그리는 작가도 있다. 이들의 불안한 상상력을 함께 살펴보자. 이러한 작품들 속엔 기술 발전의 속도가 지나치게 빨라 윤리관이 뒤처지는 미래나 현재 겪고 있는 문제가 미결된 상태로 지속돼 암울한 미래가 그려진다.

루시 매크래(Lucy McRae) 작가의 다큐멘터리 <고립연구소(2016)>는 가까운 미래를 인간이 살아가기 힘든 환경으로 설정한다. 주인공은 극한의 상황을 대비해 *무반향실에서 고립을 경험하기, 중력이 매우 크거나 작은 환경에서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연습하기 등의 훈련을 거듭한다. 관람객은 주인공이 훈련하는 모습을 관찰자의 시점에서 지켜보며 작가가 상상하는 불안한 미래를 엿볼 수 있다.

루시 매크래 작가의 영상 작품 <제작자(2012)>는 유전공학 기술이 극한까지 발전한 세계를 묘사한다. 작품은 앞치마를 맨 주인공이 쟁반에 받친 젤리 덩어리를 들고 가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후 주인공은 자신의 신체를 본뜬 모양의 젤리를 만들기 시작한다. 수술대에 누운 주인공의 신체 일부가 젤리로 대체된 듯한 연출은 높고 날카로운 배경음과 어우러지며 섬뜩한 느낌을 준다. 곧이어 신체 모양의 젤리는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손에 들린 실, 줄톱, 칼 등의 도구로 인해 조각나고, 주인공은 조각난 젤리를 무표정하게 먹어 치운다. 영상에서 신체의 복제품인 젤리를 먹는 것은 비윤리적이고 터무니없는 상상처럼 다가온다. 루시 매크래 작가는 이런 극단적인 상상을 통해 생명체를 마음대로 분해하고 조립하게 될 유전공학의 미래를 묘사한다.

▲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1층 전시실1에서 상영 중인 루시 매크래 작가의 영상 작품 다. 영상 속에서 주인공이 자신의 얼굴을 본뜬 모양의 젤리를 만들고 있다.

최윤 작가의 ‘둠즈데이 오디오(2021)’는 육지가 수몰된 가상의 미래를 통화 경험할 수 있는 작품이다. ‘둠즈데이 오디오’를 체험하기 위해선 전시장 벽에 걸린 파란 간판을 유심히 살펴야 한다. 관람객이 간판 아래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면 최 작가가 제작한 자동 응답 시스템에 연결된다. “배에 오르시겠습니까? 그렇다면 1부터 0까지 빠짐없이 수행하세요”라는 상담원의 음산한 목소리와 함께 여행은 시작된다.

둠즈데이 오디오의 자동 응답 시스템은 관람객에게 가상의 항해를 시작하는 방법을 안내한다. 관람객은 개인 휴대전화의 숫자 패드를 활용해 ‘선언’ ‘만남’ ‘경고’ ‘환청’ ‘항해’ 등에 해당하는 음성메시지를 선택해 들을 수 있다. ‘환청’에 해당하는 4번을 누르면 파도 소리와 함께 “태풍에 길을 잃어 불빛이 보이지 않는다”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더듬이를 잡고 균형을 잡으면 된다”와 같은 속삭임이 들린다. 관람객은 속삭임 사이사이 주어지는 지시사항을 들으며 자동 응답 시스템에 녹음된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는 것을 잊고 작가가 설계한 항해 환경에 실제 상황처럼 몰입하게 된다.

▲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1층 전시실1에 걸린 최윤 작가의 디지털 사운드 작품 ‘둠즈데이 오디오(2021)’다, 간판 하단의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면 최 작가가 제작한 자동 응답 시스템과 연결된다.
▲ 환청에 해당하는 4번을 누르면 관람객의 핸드폰에 유튜브(Youtube) 영상 주소가 담긴 문자가 수신된다. 해당 주소에 접속하면 ‘더듬이’라는 단어를 반복해서 속삭이는 목소리와 쫓기듯 달리는 누군가의 발이 담긴 영상이 재생된다.
▲ 환청에 해당하는 4번을 누르면 관람객의 핸드폰에 유튜브(Youtube) 영상 주소가 담긴 문자가 수신된다. 해당 주소에 접속하면 ‘더듬이’라는 단어를 반복해서 속삭이는 목소리와 쫓기듯 달리는 누군가의 발이 담긴 영상이 재생된다.

 

SF적 상상력, 종말의 위험에 대비하며
SF 작가는 SF 장르에서 비관적 결말 중 하나로 제시되는 종말에 대한 희망적 해결책을 제시하기도 한다. 영상 작품 <세계의 껍질 우주의 뼈(2021)>의 장서영 작가는 종말을 피할 방법으로 시∙공간을 제한하는 유무형의 껍질로부터 벗어나는 대안을 제시한다. 장 작가는 종말의 원인을 한정된 시공간으로 생각한다. 갈수록 몸집을 부풀리는 암세포와 갑각류처럼 모든 생명체는 확장을 꿈꾼다. 그러나 몸에 암세포가 퍼질수록 신체는 병들거나 죽고, 더이상 자라지 않는 껍질은 게가 자신의 몸에 끼어 죽게 한다. 이들이 죽음이란 종말을 피하기 위해선 탈피를 통해 세계 바깥으로 나가야 한다.

장 작가의 영상 작품 <탈피(2021)>는 자신을 둘러싼 경계를 깨고 나오는 과정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스크린은 버퍼링이 걸린 것처럼 화질이 깨진 영상을 연속적으로 보여준다. 색색의 픽셀로 깨진 화면은 의도적으로 **데이터모싱(Datamoshing) 기법을 사용한 결과다. ‘새로 만들어지는 몸에 의해 과거의 몸이 밀려난다’ ‘방금까지만 해도 이게 내 몸이었어’라는 영상 속 자막은 현재의 몸이 다른 몸으로 넘어가는 몸의 이동 과정을 보여준다. 관람객은 이 작품을 통해 앞선 작품에서 제시한 ‘탈피’의 과정을 눈으로 보며 탐구할 수 있다.

▲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2층 전시실2에서 상영 중인 장 작가의 영상작품 다.  장 작가는 의도적으로 디지털 영상의 재생을 방해해 픽셀이 깨지는 것을 주요 표현 기법으로 사용했다.

<세계의 껍질 우주의 뼈>를 둘러싼 투명한 구조물은 무한대 모양(∞)을 그리며 <탈피>의 상영 공간과 이어진다. 공간을 이동하는 과정 또한 작품의 일부로서, 신체는 어떤 순간에도 쉬지 않고 계속적인 변화 속에 있음을 상징한다. 다음 작품을 보러 이동하는 동선을 통해서도 두 작품의 주제를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코로나19라는 전 세계적 재난 상황을 SF적 상상력으로 극복하려는 작품도 있다.

▲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2층 전시실2에 위치한 장서영 작가의 영상작품 와 다.  두 작품이 무한대(∞) 모양을 그리는 투명한 구조물 안에서 상영되고 있다. 
▲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2층 전시실2에 위치한 장서영 작가의 영상작품 와 다.  두 작품이 무한대(∞) 모양을 그리는 투명한 구조물 안에서 상영되고 있다. 

최 작가의 <둠즈데이 비디오>(2020)는 국가 간 이동이 차단된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 상황 속에서 각기 다른 나라에 있는 일곱 명의 동료 예술가와 연결을 시도한다. 이들의 연결 시도는 일반적인 통화나 메신저를 통해서 이뤄지지 않는다. 뜨거운 물에 오일과 레몬, 녹차를 넣고 손을 담그는 핸드스파(Hand Spa)를 하거나, 화상회의 앱 ‘줌(Zoom)’에서 모여 민요를 부른다. 스마트폰이나 웹 카메라로 각자의 손을 찍은 사진을 이어붙여 강강술래를 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진을 만들기도 한다. 작가는 동료들과의 연결에 이용된 몸짓과 목소리를 영상으로 기록, 재구성해 많은 사람에게 연대를 통한 재난 극복 의지를 전했다.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2층 전시실2에서 상영 중인 최윤 작가의 영상 작품 ‘둠즈데이 비디오(2020)’다.  최 작가가 동료 작가들의 손 사진들을 3D 모델로 만들어 강강술래를 하듯 둥글게 회전시키는 장면이다.

 

공상과학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요즘이다. 우주여행, 인공지능, 이상기후 등 과거의 SF에서 가정했던 미래의 상황들이 우리 앞에 하나둘씩 도착하는 지점에 다다랐다. 그렇기에 오늘날의 우리가 상상하는 SF는 우리가 앞으로 살아갈 삶을 예측하고 대비할 수 있는 가능성이 된다. 따라서 우리는 SF 장르를 통해 아직 실현되지 않은 미래적 요소를 미리 체험해볼 수 있다.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불안감을 느끼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이러한 불안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한 준비를 하기 위한 추진력이 되기도 한다. SF 작가들이 미래에 대한 묘사를 다양하게 그려낸 작품들을 감상하며 자신이 상상하는 미래의 모습과 비교해보는 것은 어떨까.

 

 

*무반향실: 소리가 울리지 않도록 만들어져 내부에선 거의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는 방을 말함. **데이터모싱(Data Moshing): 파일이 해독할 때 시각적 또는 청각적 효과를 얻기 위해 미디어 파일의 데이터를 조작하는 과정을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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