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드라마는 한 사람이 상대방에게 일방적인 호감을 갖고 애정을 표현하는 모습을 순정으로 묘사한다. 상대방은 거절 의사를 밝혔음에도 상대방이 아르바이트하는 카페의 출퇴근 시간에 맞춰 가게 앞에 찾아가 마음을 고백하곤 한다. 드라마 속에서 아름답게 비치지만, 이는 명백한 스토킹 행위다. 드라마 속 주인공들이 일방적인 구애 끝에 연인 관계로 발전하는 모습은 시청자가 스토킹 행위의 심각성을 인지하기 어렵게 만든다. 하지만 개인이 겪는 스토킹 피해가 심각해지고 그 양상도 다양해지면서 스토킹 범죄에 대한 인식이 점차 변화하고 있다. 지난 3월 22년간 논의되던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스토킹 처벌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올해 10월 시행을 앞둔 스토킹 처벌법은 스토킹 피해자를 가해자들로부터 보호하는 법이 될 수 있을까.


경미했던 스토킹 범죄의 처벌
스토킹의 개념을 법률적으로 규정하기 어려워 스토킹 처벌법을 도입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스토킹은 지난 2013년 경범죄 처벌법에 ‘지속적인 괴롭힘’이라는 내용으로 처음 입법화됐다.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스토킹 처벌법)’에 따르면 스토킹은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는 행위를 지속해 피해자에게 공포와 불안을 주는 행위로 정의된다. 스토킹 처벌법 제2조 1항에 의하면 반복적으로 피해자에게 접근하는 행위, 주거·직장·학교 등 일상적으로 생활하는 장소에서 기다리는 행위 등이 스토킹에 해당된다. 이외에도 우편·전화 등을 이용해 물건이나 글·말·그림·부호·영상·화상을 전하는 행위, 직접 또는 제3자를 통해 물건 등을 주는 행위가 스토킹으로 분류된다. 이동찬 법률사무소 더프렌즈 변호사는 “스토킹 범죄는 피해자에게 직접 접촉하지 않고 해를 입히는 비접촉 범죄의 일종이다”며 “비접촉 범죄는 행위의 범죄 여부를 판단하는 경계가 모호하다”고 말했다. 디지털 성범죄와 성희롱도 비접촉 범죄에 해당한다.

스토킹 처벌법이 제정되기 이전엔 스토킹 행위가 경범죄로 분류됐다. 스토킹 가해자는 경범죄 처벌법에 따라 최대 1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졌다. 경범죄는 스토킹 외에 장난전화나 노상방뇨, 무전취식 등을 포함한다. 예외적으로 스토킹이 형법에 의해 처벌되는 경우가 있다. 스토킹이 살인, 강간과 같은 중범죄로 이어지는 경우이다. 온라인상에서 행해지는 스토킹 역시 개인정보 보호법 위반과 같은 다른 범죄에 포함될 때만 처벌이 가능했다. 본교 김용화 법학부 교수는 “기존 법체계 아래에서는 스토킹이 강력범죄로 이어져 발생하는 피해가 가시화되지 않을 경우 실질적인 처벌이 어려웠다”고 말했다.

경범죄 처벌법을 통한 스토킹 범죄 규제는 처벌 강도뿐만 아니라 피해자 보호 조치도 미흡했다. 지난 3월 정춘숙 의원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간 112로 접수된 스토킹 신고 가운데 사법 처리된 신고건은 12.6%에 불과했다. 지난해 신고된 스토킹 범죄 4천515건 중 경범죄 처벌법에 따라 처벌된 건수는 488건으로, 전체 신고의 89.2%인 4천27건은 처벌이 이뤄지지 않았다. 법원의 선고가 있더라도 집행유예나 벌금형에 그치는 경우가 절반가량이었다. 또한 법원의 선고를 받기 위해서 피해자는 스토킹 범행이 있은 날로부터 법원의 선고가 있기까지 평균 1년 이상을 불안감과 두려움 속에 기다려야 했다. 스토킹 행위의 재발을 방지하고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행할 수 있는 별도의 근거법령이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토킹 범죄 가해자 흘려보낸 법망
지난 3월 24일(수), 1999년 ‘스토킹 처벌에 관한 특례 법안’이 국회에 처음 발의된 지 22년 만에 스토킹 처벌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는 최근 스토킹으로 인해 정신적·신체적 피해를 입는 사례가 증가하는 가운데 범죄 발생 초기 단계에서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제안된 것이다. 지난 2013년 3월 22일부터 개정 경범죄 처벌법에 근거해 처벌됐던 스토킹 범죄는 오는 10월 21일(목)부터 스토킹 처벌법에 의해 처벌된다. 신설되는 스토킹 처벌법은 스토킹 범죄 가해자에 대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 등 형사 처벌을 내릴 수 있도록 규정한다.

스토킹 처벌법은 스토킹 범죄를 반의사불벌죄로 보는 관점을 유지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반의사불벌죄는 피해자가 범죄자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하면 처벌할 수 없는 범죄를 말한다. 김 교수는 “반의사불벌죄는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2차 피해를 입힐 가능성을 높인다”며 “가해자가 고소를 취하하게 하려는 목적으로 피해자에게 강압적으로 합의를 종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 김다슬 정책팀장은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표했다고 가해자를 처벌하지 못하는 것은 국가가 처벌에 대한 책임을 피해자에게 떠넘기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반의사불벌죄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친밀한 관계일 때 발생하는 스토킹 범죄에 대한 처벌을 어렵게 한다. ‘2020년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 상담 통계분석’에 따르면 스토킹 가해자는 애인이나 전 애인 36.5%, 배우자나 전 배우자 13.5%, 친족 16.5%, 직장 관계자 12.3% 등 피해자와 가까운 관계인 사람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김 정책팀장은 “스토킹 범죄가 신뢰와 애정을 기반으로 한 관계에서 발생하다 보니 피해자가 가해자를 고소하지 못하고 선처하는 경우가 많다”며 “부부나 연인과 같은 관계의 특성상 가해자가 피해자의 취약점이나 사적인 정보를 잘 알고 있어 이를 악용할 확률도 높다”고 말했다.

피해자 보호 범위가 직접 피해자 본인으로 한정됐다는 점도 스토킹 처벌법의 한계점으로 거론된다. 스토킹 범죄의 경우 가족과 친구와 같은 피해자의 주변인 역시 피해 대상이 될 수 있다. 한 남성이 스토킹 끝에 일가족을 살해한 노원구 일가족 살해사건에서도 직접적 피해자 본인 외에 피해자의 주변인이 함께 피해자가 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장은 “많은 경우 피해자가 큰 위협을 받기 직전에 주변인들도 피해를 받는다”며 “피해자의 주변인까지 보호 범위를 넓혀 가해자를 처벌한다면 스토킹 범죄가 추가적인 강력 범죄로 이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범죄로 희생되는 대상을 줄이는 방향으로 법이 보완돼야 한다.

스토킹 처벌법은 온라인 스토킹 행위를 처벌하는 조항을 두고 있지만, 익명성·비대면성·빠른 전파성에 기반을 둔 온라인 공간의 특성상 처벌은 쉽지 않다. 시행을 앞둔 스토킹 처벌법은 ‘우편·전화 또는 정보통신망을 이용해 글·말 등을 도달하는 행위’를 스토킹 행위의 하나로 규정한다. 과거엔 스토킹 범죄가 유명인과 같은 개인 정보 공개가 이뤄진 특정인을 대상으로 벌어졌다. 이젠 인터넷의 발달로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일정 부분을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하게 되기에 스토킹의 대상이 되기 쉽다. 이 변호사는 “당사자의 사적인 정보를 동의 없이 수집하는 행위는 법으로 처벌이 힘든 온라인 스토킹 행위의 대표적인 예다”고 말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ocial Network Service)를 통해 얻어낸 타인의 개인 정보를 이용해 상대에게 원치 않는 글과 이미지를 전송하는 행위도 온라인 스토킹의 일종이다.

스토킹 처벌법, 입법은 시작일 뿐
스토킹 처벌법의 입법은 그 자체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스토킹 처벌법 도입으로 피해자를 직접적으로 보호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이 변호사는 “그동안은 스토킹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이 없어 경찰이 스토킹 범죄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없었다”며 “피해자 중심으로 스토킹 처벌법의 입법이 이뤄져 이젠 가해자의 스토킹 행위가 피해자에게 불안감을 유발했다면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다”고 말했다. 스토킹 처벌법 도입 이전에는 누군가의 집 앞에 칼을 두는 행위는 위협의 의도가 인정됐지만, 꽃다발이나 곰인형 등을 놓는 것은 위협적인 행위로 인정되지 않았다. 새로 도입된 스토킹 처벌법은 가해자의 고의성이 없어도 스토킹이 범죄로 성립한다고 규정한다. 이젠 꽃다발이나 곰인형 등을 놓는 행위에 상대를 위협하려는 의도가 없더라도 상대가 이로 인해 불쾌감을 느꼈다면 처벌될 수 있다.

경찰은 스토킹 범죄 신고를 받을 경우 즉시 현장에 나가 긴급응급조치를 취해야 한다. 긴급응급조치는 가해자가 피해자 100미터 이내에 접근할 수 없게 하고, 전기통신을 이용해 접근하는 행위도 금지시킨다. 스토킹 재발 우려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 판사는 검사의 청구에 따라 스토킹 행위자에 대해 피해자에 대한 스토킹을 중단할 것을 경고할 수 있다. 아울러 100m 이내 접근을 금지하거나 유치장·구치소에 유치하는 잠정조치 결정도 내릴 수 있게 됐다. 김 정책팀장은 “접근금지나 잠정조치 명령이 내려지더라도 조치가 효력을 발휘하는 기간은 기본 2개월이고 최대 연장을 해도 6개월까지만 가능하다”며 “스토킹이 수년에서 수십 년까지도 발생하는 사례들을 보면 이 기간은 너무 짧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스토킹 처벌법이 실효성 있는 법안으로 기능하기 위해선 현장에 투입돼 피해자를 보호하는 경찰의 적극적인 협조가 중요하다. 경찰들이 스토킹 범죄의 최전선인 사건 현장에서 피해자들을 보호할 수 있어야 한다. 권김 소장은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법이 마련된 현 상황을 적극 이용해야 한다”며 “바뀐 법에서 경찰들이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고 말했다. 경찰이 주어진 역할을 잘 수행하는 것이 스토킹 처벌법의 시행에 남은 과제다. 김 교수는 “스토킹 범죄로부터 우리 사회가 안전하기 위해선 법을 집행하는 사법기관의 높은 성인지 감수성이 절실하다”며 “전담 수사관의 성인지 감수성을 강화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구축하고 모의훈련을 통해 다양한 스토킹 범죄 대응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스토킹 처벌법은 지난 1999년부터 논의돼왔지만 노원 일가족 살해사건이 발생한 지 하루가 지난 3월 24일(수) 국회를 통과했다. 스토킹 처벌법 입법이 늦어져 스토킹이 강력 범죄로 이어지는 것을 막지 못했다. 따라서 스토킹 처벌법을 통해 가해자 처벌에 앞서 피해자 보호가 논의되는 것은 중요하다. 오랜 논의 끝에 스토킹 처벌법의 입법이 이뤄진 만큼 지속적인 보완을 통해 법안의 빈틈을 메꿔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

* 한민경(Han Min Kyung). "법정에 선 스토킹 : 판결문에 나타난 스토킹 행위의 유형과 처벌을 중심으로." 圓光法學 37.1 (2021): 6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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