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는 반환된 미군기지에 제2캠퍼스, 교육연구단지, 국제캠퍼스 등을 유치하려는 대학과 지자체들에 관해 취재했다. 대학들은 학교의, 지자체들은 지역의 발전을 위해 캠퍼스 설립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그러나 취재를 하면서 왠지 모르게 마음 한 편이 씁쓸해졌다. 현 사회에서는 대학의 이름값이 대학의 몸집과 비례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대학이 지나치게 상업화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될 때가 많다.

최근에는 한 대학이 캠퍼스를 짓기 위해 재원을 확보하는 방식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시에서 조달받은 부지의 일부를 주거용지와 상업용지로 개발, 이를 통해 얻은 이익금으로 캠퍼스를 건설하려 했던 것이다. 대학에서 짓는 아파트라. 어째 썩 잘 맞는 짝은 아닌 듯하다.

얼마 전 대두됐던 ‘인문학의 위기’ 역시 대학의 뒤바뀐 관심 순위를 보여준다. 인문ㆍ사회학에 지원되는 연구비가 공학 분야 연구비의 5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2006 서울대 통계연보)는 조사만 보더라도 인문학의 위기가 단순히 학생들의 무관심 탓이라고만 보기는 어렵다. 인문학을 학교의 취업률에 도움이 되지 못하는 비효율ㆍ비생산적 학문으로 치부하는 학교의 태도에도 그 책임이 있을 것이다.

대학의 설립목적이 이익을 내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 이익이 자본의 이익이라면 더욱 그렇다. 고등학교 교육마저 형식적인 암기위주의 교육이 되고 있는 가운데 대학마저 자본에 끌려다니는 거대한 사업체가 돼버린다면 과연 학생들은 언제쯤 진정한 학문탐구와 인격도야를 경험할 수 있을까.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교육만은 상업화되지 않기를 바란다. 상업화를 향한 대학의 엇나간 방향이 학문을 탐구하는 사람들의 열정과 노력마저 상업적 잣대로 평가하지는 않을지 우려된다. 생각을 바꾸자.‘사업 잘 하는 대학’이 으뜸이 아닌 ‘정도를 걷는 대학’이 일등이 되는 세상을 만들자.

 

저작권자 © 숙대신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