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눈으로 볼 수도, 손으로 만질 수도 없다. 이런 점에서 LP는 음악 애호가의 소장욕을 자극한다. 음악을 실물로 소유한다는 것은 음악 애호가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LP는 Long Playing Record의 준말로, 여러 곡이 수록된 원반 형태의 음악 저장 매체다. 디지털 음원의 등장으로 인해 내리막길을 걷는 듯했던 LP는 오늘날 음반 시장에서 재조명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도서·음반 판매 사이트 ‘YES24’에서 분석한 자사의 최근 3년간 음반 판매량에 따르면 지난해 LP 판매량은 재작년 대비 73.1% 증가했다.

대중의 LP 수요가 증가한 원인으로 레트로(Retro)와 뉴트로(Newtro) 열풍이 있다. 레트로는 과거의 것이 유행하는 현상이고, 뉴트로는 과거의 것을 현대적인 방식으로 재해석해 즐기는 현상이다. 추억이 담긴 LP를 듣기 위해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이 레트로라면, LP의 세련된 특성을 살려 새로운 방식으로 소비하는 게 뉴트로인 것이다.


까다로운 LP를 사랑하는 이유
LP로 음악을 재생하는 것은 불편함이 있지만, 음악을 듣기 위해 스스로가 연속적인 과정에 참여한다는 점에서 특별한 감정이 느껴진다. LP를 재생하기 위해선 레코드 플레이어(Record player)가 필요하고, 전력을 연결해야 한다는 점에서 휴대성이 낮다. 디지털 음원보다 편리성도 떨어진다. LP 표면의 흠이나 먼지 때문에 재생 중 잡음이 생길 수 있고, 양면 트랙에 녹음된 음악을 모두 듣기 위해선 직접 LP를 꺼내 뒤집어야 한다. 이러한 불편함은 LP에 익숙한 7080세대에겐 향수를 느끼게 하고, LP가 낯선 세대에겐 신선하게 다가온다. 조부모님의 LP를 들은 이후로 LP를 수집하게 된 고은비(미디어 16) 학우는 “LP는 디지털 음원과 달리 재생 목록을 마음대로 정할 수 없고 곡이 녹음된 순서대로 들어야 하지만 그 불편하고 번거로운 과정에서 재미를 느낀다”고 말했다.

 LP로 음악을 듣기 위해 쏟아야 하는 수고로움에서 오히려 음악에 대한 애정이 커질 수 있다. 디지털 기기만 있다면 음원 스트리밍 사이트를 통해 어려움 없이 원하는 곡을 들을 수 있는 시대다. 반면 LP로 음악을 듣기 위해선 세심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LP를 깨끗한 상태로 보관해야 하는 것은 물론, LP에 새겨진 소리골을 지나는 레코드 플레이어 바늘의 압력까지 조절해야 한다. 레코드 플레이어가 정전기에 노출되지 않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고 학우는 “LP 음질을 유지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솔질을 하고 세척액을 묻힌 천으로 닦아 먼지를 제거한다”며 “이렇게 정성을 들여 관리한 LP의 음악엔 더욱 정감이 간다”고 말했다.

 

 MZ세대 겨냥한 LP의 재해석
최근 LP의 용도는 단순한 음악 재생을 넘어 자신의 취향을 표출하는 수단으로 확장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엔 ‘복고풍 음반’ LP를 ‘세련되고 감각적인 문화 요소’로 재해석한 *MZ세대의 영향이 컸다. 특히 LP의 커버 디자인은 빛바랜 중고 LP부터 화려한 그래픽의 최신 LP까지 다양해 소비자들은 자신의 취향에 맞는 LP를 구매할 수 있다. 오프라인 레코드 판매점 ‘라보앤드 레코드(Lavoand Record)’의 이승원 차장은 “일부 소비자는 공간에 어울리는 LP를 골라 전시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만의 감성을 표현한다”고 설명했다.

 특정 작품의 팬층을 겨냥한 상품인 굿즈(Goods) 개념으로 발매된 LP도 있다. 최신 영화나 드라마의 OST 앨범이 담긴 LP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LP 커버엔 영화나 드라마의 포스터, 주인공의 사진, 작품을 상징하는 일러스트 등이 그려진다. LP 자체에 색이나 무늬를 입히는 것도 가능하다.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Call Me By Your Name)> OST의 한정판 LP는 복숭아 단면을 본뜬 색상이고, 커버에서는 복숭아 향이 난다. LP 구매자는 영화의 주요 상징물인 복숭아가 활용된 LP를 통해 영화의 내용을 되새긴다. 최윤재(글로벌협력 21졸) 동문은 “OST가 작품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만큼 LP를 들으면 영화를 보고 느낀 감정이 다시 떠오른다”며 “LP는 작품을 곱씹어볼 수 있게 한다”고 강조했다.

 LP의 개성적이고 세련된 분위기가 특정 브랜드 이미지의 홍보 수단이 되기도 한다. 현대카드는 지난 2016년부터 오프라인 음반 매장 ‘바이닐 앤 플라스틱(Vinyl And Plastic)’을 운영하고 있다. 다양한 장르의 LP, CD, 카세트테이프와 음향기기를 찾아볼 수 있는 것은 바이닐 앤 플라스틱의 특징이다. 본교 이신형 경영학부 교수는 “현대카드는 고객에게 여러 테마의 다채로운 공간 경험을 제공하는 ‘Space·Culture’ 사업을 통해 감각적인 기업 이미지를 형성하고자 했다”며 “바이닐 앤 플라스틱의 운영으로 LP만의 독특한 이미지를 자사의 인상에도 투영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한 것이다”고 말했다.

라보앤드 레코드(Lavoand record)의 내부다.  다양한 장르의 LP와 직접 청음할 수 있는 레코드 플레이어가 진열돼 있다.
라보앤드 레코드(Lavoand record)의 내부다. 다양한 장르의 LP와 직접 청음할 수 있는 레코드 플레이어가 진열돼 있다.

 

음반 시장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
최근 발매되는 LP 대부분은 한정된 수량만을 판매해 희소가치가 크다. 이 차장은 “2-30대에게 인기 있는 가수의 LP 발매가 늘면서 젊은 층의 LP 수요가 급증했다”며 “이들의 LP는 짧은 기간 동안 한정 수량으로 판매되기 때문에 기간 내에 구매해 소장하려는 소비자가 많다”고 말했다. 이러한 LP의 한정 판매 전략은 소비자의 수집욕을 자극해 시장을 활성화한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희소한 LP의 중고거래가 이뤄질 때 과도하게 웃돈을 붙여 판매하는 행위가 문제되기도 한다. 지난 2016년 발매된 아이유의 ‘꽃갈피’ LP는 발간일 기준으로 중고 시장에서 최고가 2백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해당 LP가 예약 판매방식으로 이뤄져 희소성이 크다는 이유로 정가인 4만 4천 원의 45배 이상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재판매 거래에서 발생하는 이윤은 창작자가 아닌 사업자등록조차 하지 않은 재판매자에게 돌아간다. 김규빈(소비자경제 20) 학우는 “LP의 한정 수량으로 인헌 불건전한 거래가 계속 일어난다면 결국 LP 국내시장의 쇠퇴는 피할 수 없을 것이다”고 말했다.

 중고 LP가 출고가보다 높은 가격에서 거래되는 현상을 법적으로 제재하긴 어렵다. 수요가 많으면 가격이 높아지는 것은 시장경제의 원리에 따라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최근 일부 기업들은 한정판 상품의 구매를 원하는 고객들에게 추첨을 통해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온라인 추첨제를 이용하기도 한다. 이 교수는 “온라인 추첨제는 실사용 목적으로 구매를 희망하는 소비자가 재판매 목적으로 구매하는 소비자 때문에 구매할 기회를 얻지 못하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며 “이처럼 기업이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자체적인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좋아하는 뮤지션의 앨범을 찾는 행위를 ‘디깅(Digging)’이라고 한다. 나무 상자를 캐낸다는 뜻의 ‘Digging the crate’에서 온 말로, 원하는 LP를 찾아내려면 수많은 음반이 섞인 상자를 샅샅이 뒤져야 한다는 것에서 유래됐다. LP를 디깅 하기 위해선 앨범을 한 장씩 넘기며 제목과 표지를 꼼꼼히 봐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온라인에서 검색을 통해 손쉽게 음반을 구매하면 될 것을 괜히 고생한다고 할지 모른다. 고 학우는 고민과 걱정이 많아질 때 LP가 천천히 돌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생각을 정리한다고 했다.

빠르고 편리한 서비스가 흘러넘치는 세상이다. 복잡하게 돌아가는 하루 속, 자기만의 속도로 돌아가는 LP를 바라보며 잠시나마 여유를 가져보는 건 어떨까

 

 

*MZ세대: 198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초 사이에 태어난 밀레니얼(Millennial) 세대와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 사이에 태어난 Z세대를 통칭하는 말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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