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궁경부암 백신 맞으러 가.”
“무슨 소리야. 형은 자궁이 없잖아.”

인유두종바이러스 백신(자궁경부암 백신, 이하 HPV 백신)을 만드는 제약사 MSD의 광고에 나오는 대사다. 해당 광고는 *자궁이 없는 남성도 자궁경부암 백신을 접종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남성도 접종이 필요한 백신인데 왜 여성하고만 직접적 연관이 있는 자궁이라는 단어가 백신명에 사용되는 것일까? 자궁경부암 백신의 정확한 명칭이 무엇인지, 남성도 접종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살펴보자.

* 최근 남성 중심적 용어로부터 탈피하려는 의도에서 자궁(子宮)을 포궁(胞宮)으로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본 기사는 자궁과 자궁경부암 백신 간의 연관성을 분명히 드러내고자 포궁을 자궁으로 표기한다.

인유두종바이러스로부터 우리 몸을 지키려면 
자궁경부암은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발병률을 보이는 여성암이다. 자궁경부암은 정상세포가 완전한 암세포로 변하기까지 최소 수년에서 길게는 수십 년까지 소요되는 특징이 있다. 우리나라 만20세 이상 여성이라면 국가건강검진을 통해 암을 유발하는 바이러스가 있는지, 암으로 발전할 만한 이형세포가 있는지, 조기에 자궁경부암 증상을 확인할 수 있다. 2년마다 자궁경부암 검사가 가능해 대한산부인과학회는 암 중에서 약 100% 예방이 가능한 암으로 자궁경부암을 꼽기도 한다.  

자궁경부암 발병의 주원인은 인유두종바이러스(Human Papillomavirus, 이하 HPV)다. 전세계 자궁경부암종에서 HPV 유병률이 99.7%에 도달해 HPV가 자궁경부암을 유발한다고 알려져 있다. HPV는 약 200종류가 있는데, 이 중 HPV 16번과 18번이 자궁경부암의 유발 원인이 된다. 이외에도 HPV 16, 18번에 의해 외음부암, 질암, 항문암 등이 발생하기도 한다.

HPV는 여성뿐 아니라 남성도 감염의 대상이 된다. HPV는 성관계를 통해 전염되는 것으로써 남성에서 여성으로도, 여성에서 남성으로도 옮을 수 있다. HPV로 인해 남성이 겪는 질환엔 음경암, 항문암 등이 있다. 실제 최근 3년간 HPV로 인한 질병 중 하나인 남성 생식기 사마귀 유병률은 2·30대 사이에서 36% 증가했다. 해당 질병은 자궁경부암에 비해 *유병률이 낮으며 생명 위협이 적지만 재발 위험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 국내 자궁경부암 환자 발생 추이다. 지난 2015년에 비해 2019년의 자궁경부암 환자가 약 16% 증가했다.

신체에서 주로 발견되는 HPV는 현재 개발된 백신으로 예방할 수 있다. 가다실9가가 대표적인 HPV 백신이다. 가다실9가는 HPV 백신 중 유일하게 HPV 52번, 58번까지 예방한다. **HPV 52번과 58번은 16번 다음으로 한국 여성에게서 높은 유병률을 나타내는 바이러스다. ***가다실9가는 16세부터 26세까지의 여성들에게서 자궁경부, 질 또는 외음부 질환에 96.7%의 예방 효과를 보인 바 있다.

높은 예방 효과의 백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HPV 질환자 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보건의료빅데이터개방시스템에 따르면 자궁경부암 환자 수는 지난 2015년 5만 4603명에서 지난 2019년 6만 3051명으로 늘었다. 지난 2016년부터 만 12세 여아를 대상으로 HPV 백신의 무료 예방접종이 시행됐으나 시행 첫해 1차 예방 접종률은 58.5%에 그쳤다. 지난 2017년 8월  질병관리본부(현 질병관리청)는 보도자료를 통해 “백신의 유용성을 인정하는 보호자도 45.7%에 불과했다”며 “자녀의 암 발생 위험과 백신의 유용성을 체감하지 못하는 보호자가 많다”고 전했다. 이처럼 효과가 입증된 HPV 백신이 있으나 적극적인 예방 접종으로까진 이어지지 않고 있다.

▲ HPV에 대해 여성과 남성이 반드시 알아야 하는 정보를 나타낸 자료다.

 

HPV 백신에 대한 오해 바로잡기
‘자궁경부암 백신’이란 명칭은 ‘자궁이 없는 남성은 HPV 백신을 접종하지 않아도 된다’는 오해를 가져온다. 자궁경부암 백신이란 명칭이 등장한 이유는 백신 회사가 여성을 주 고객으로 설정했기 때문이다. HPV로 인한 질환 중 남성에게 발생하는 다른 질병보다 여성에게 발생하는 자궁경부암의 유병률이 더 높다. 이를 고려해 초기 HPV 백신 연구는 여성을 대상으로 진행됐고, 이후 여성에게 백신 접종을 홍보하고자 ‘자궁경부암 백신’이란 명칭이 붙은 것이다. 백수진 호산여성병원 원장은 “자궁경부암 백신이란 명칭은 정확한 의학 용어가 아니다”며 “HPV에 상대적으로 여성이 더 취약하다는 것을 반영한 명칭일 뿐, 남성도 HPV 백신 접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HPV 백신 무료접종 대상에 남성이 포함되지 않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질병관리청은 비용, 예방 효과, 공중보건학적 우선순위 등을 고려해 무료 접종 대상을 정한다. 이에 지난 2016년 연령이 낮아 항체 생성이 활발하며 HPV에 취약하다고 알려진 만 12세 여아가 무료 접종 대상으로 지정됐다. 그러나 이는 대중에게 남아는 백신 접종 필요성이 없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남성은 HPV 백신 맞을 필요가 없다’는 오해를 깨뜨리는 것이 우선이다”며 “국가의 무료 접종 지원으로 남성들의 접종 부담을 줄인다면 남성의 HPV 접종률도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HPV 백신은 성관계 경험이 없는 사람에게만 효과가 있다고 오해하는 이들도 있다. HPV는 성 접촉을 통해 전염되기 때문에 이미 성관계 경험이 있는 사람은 백신의 효과를 얻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성경험 유무와 무관하게 HPV 백신을 접종하면 이후 HPV를 보유한 상대방과 성관계를 했을 때 감염될 위험에 대비할 수 있다. HPV에 감염된 경험이 있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HPV는 항체가 자연적으로 생성되지 않으므로 오직 백신을 통해서만 면역 체계를 갖출 수 있다. 따라서 HPV가 소멸한 후 백신 접종으로 항체를 생성해 HPV를 예방할 수 있다.

6개월 내 총 3회 접종해야 한다는 조건은 백신의 완전 접종을 어렵게 한다. 가다실9가의 효과를 최대한 보기 위해선 1차 접종일로부터 6개월 이내에 남은 2회분을 모두 접종해야 한다. 백 원장은 “접종 주기가 불규칙할 경우 백신 효과가 현저히 떨어진다”며 “산부인과학회에선 1차나 2차 접종일로부터 2년 이상이 지났을 경우엔 1차부터 다시 접종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HPV 백신의 높은 가격도 접종률을 낮추는 원인으로 지목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비급여진료비정보에 따르면 서울 소재 병원에서 가다실9가의 1회 접종 비용은 최소 12만원이다. 백 원장은 “접종 가격이 높아 HPV로 인한 위험이 비교적 적은 남성은 낮은 접종률을 보인다”며 “남성은 보통 아내나 여자친구, 비뇨기과 의사 등의 권유로 HPV 백신 접종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백 원장은 “아직 남성이 여자 친구나 아내를 위해 스스로 백신을 접종받는 수준까지 10대 남성의 사회적 인식이 높아지진 않았다”고 말했다.


HPV 백신, 우선 과제는 ‘인식 개선’ 
지난해 11월 HPV 백신의 국가예방접종 대상을 확대하는 개정안이 발의됐다. 해당 개정안이 통과되면 HPV 백신의 국가예방접종 대상은 기존 만 12세 여아에서 만 18세 미만의 청소년으로 확대된다. 연령 확대와 더불어 남성까지 무료 접종 대상에 포함한 것이 개정안의 주 내용이다.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최 의원은 “최근 4년간 HPV 백신의 완전 접종률이 60%대에 머물고 있다”며 “HPV는 누구나 감염될 수 있어 여아만이 아니라 남아까지로 접종 대상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개정안의 취지를 설명했다. 

성인 대상 HPV 백신 교육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성인 여성의 경우 HPV 백신 접종을 받았더라도 자궁경부암 정기 검진은 필수 사항이다. HPV 백신이 차단하지 못한 다른 종류의 HPV에 감염됐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백 원장은 “HPV 백신 접종을 받은 성인 여성 중 백신 접종 이후 자궁경부암 검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고 얘기했다. 이어 백 원장은 “자궁경부암에 걸리는 이유와, HPV가 몸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교육이 이뤄진 후 HPV 백신 접종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남성의 HPV 백신 접종률을 높이기 위해 대중매체의 역할이 조명된다. 남성 접종률 상승은 곧 자궁경부암 유병률 하락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지난해 방영된 tvN드라마 ‘청춘기록’은 지난해 9월 방영한 4화에서 남성 등장인물 세 명이 ‘자궁경부암 백신’을 접종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여자 친구가 백신 접종을 권유하자 남자는 “그걸 어떻게 내가 맞아, 나는 자궁이 없어”라고 답한다. 이에 여자는 “맞으면 나한테 효과가 있어”라고 말한다. 방영 후 HPV 백신에 관한 검색률이 증가하며 남성도 HPV 백신을 접종해야 한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졌다. 

백신 접종률을 높이기 위해선 정책적 지원도 요구된다. 최 의원에 따르면 현재 한국보건의료연구원에서 HPV 백신 예방접종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연구는 오는 5월 중으로 마무리돼 연구 결과에 따라 HPV 백신 접종 비용을 지원하는 정책의 방향이 결정될 예정이다. 최 의원은 “한국이 HPV 감염증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국민을 폭넓게 보호하기 위해 국가에서 HPV 백신 접종 비용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최 의원은 “질병관리청, 보건복지부와 함께 자궁경부암 백신이 아닌 HPV 백신이라는 더 적합한 명칭으로 부를 수 있도록 캠페인과 공익광고 기획을 고려해 보겠다”고 말했다.

여성과 남성 모두 HPV에 감염될 수 있고 HPV를 전파할 수도 있다. 그러나 HPV는 치료제가 없어 예방만이 우리의 신체를 보호할 유일한 방법이다. 남성 HPV 백신 접종은 남성의 몸을 HPV로부터 보호할 뿐 아니라 성관계를 통해 HPV를 여성에게 전염시킬 가능성을 줄인다. 따라서 남성의 HPV 접종은 남성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여성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여성과 남성 모두 HPV 백신을 적극적으로 접종함으로써 HPV 예방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인구 대비 해당 질병을 앓는 환자 수를 의미함.
**이은희, 엄태현, 지현숙, 홍영준, 차영주(2012). 제한 단편 질량 다형성 분석에 의해 결정된 한국 여성의 인간유두종바이러스 감염 유병률 및 분포. 한국 의학 연구 , 27 (9), 1091–1097.
***가다실9가 제약사 MSD가 발표한 ‘2018 가다실9 팩트시트(2018 Gardasil9 Factsheet)’의 내용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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