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칼럼]

가끔 나 자신 혹은 상대방의 감정에 무감각해짐을 느낀다. 서로 공감하기도, 공감받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필자는 타인의 고통을 직시하려 노력했다. 이를 위해 전시를 보기 시작했다. 과거 필자는 전시가 지루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전시를 관람하며 사색에 잠겼던 경험이나 타인의 솔직한 생각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에 매료돼 이젠 전시 관람이 취미가 됐다. 필자가 이번에 관람한 전시는 ‘퓰리처상 사진전’이다.

당신은 누군가의 절망을 찍는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가? 대부분의 퓰리처상 수상작은 절망적이고 잔혹한 순간을 담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케빈 카터가 있다. 그는 수단 배급소로 가는 길에 쓰러져 있던 소녀와 그 소녀를 노리는 독수리의 모습을 담은 ‘수단의 굶주린 소녀’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수상 이후 케빈 카터에겐 ‘왜 소녀를 돕지 않았느냐’는 수많은 질타가 쏟아졌고, 결국 그는 죄책감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필자 또한 소녀를 돕지 않고 사진만 찍은 그의 행동에 의문을 가졌다.

필자는 잔혹한 순간을 촬영해 퓰리처상을 수상한 이들의 인터뷰를 듣고서야 그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호스트 파스와 미쉘 로렌트는 방글라데시 독립 당시 무장 게릴라가 죄수를 담뱃불로 지지는 사진으로 퓰리처상을 받았다. 그들은 “죽어가는 모습을 사진 찍은 데 죄책감을 느낀다”며 “하지만 사진을 통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려야 했다”고 말했다.

저널리스트(Journalist)는 암흑 속 현실에 빛을 비추듯, 본질적인 사회 문제를 조명해야 한다. 사회 문제를 공론화의 장으로 끌어와 해결하는 것까지가 저널리스트의 사명이다. 만약 절망적인 순간을 사진으로 남길 시간에 그 상황에 처한 이들을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다른 시각으로도 생각해보길 권한다. 참혹한 현장을 담은 사진이 있기에 우리가 세계 곳곳의 실상을 알게 됐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런 사진을 찍고 싶었습니다. 강렬한 힘을 가진 순간을 담은 사진이요” “누구도 노래하지 않은 나의 영웅들, 우리 저널리스트가 그들의 노래를 부르지 않으면, 누가 해야 할까요?” “퓰리처상은 역사를 보여주는 거울입니다”

역대 퓰리처상 수상자들이 남긴 말이다. 수상자들의 사진이 다소 무정해 보일 수 있지만, 이들은 특종을 노리는 사람들이 아닌, ‘제발 이 순간에 함께해주세요’를 외치는 시각적 전달자다. 필자는 퓰리처상 사진전을 통해 누군가의 절망을 가감 없이 전달하는 저널리스트들의 역할에 공감할 수 있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나’의 감정을 일깨우고 잠재우는 매개체가 있길 바란다.

법 19 박경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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