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가 있어 뜨거웠던 삶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은 1908년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에서 태어났다. 그는 섬유회사를 경영하는 부모 덕분에 부유한 환경 속에서 성장할 수 있었지만, 부모가 원하는 삶을 살진 않았다. 학교 공부는 하지 않고, 수많은 책을 읽으며 사색에 잠기기 일쑤였다. 때문에 가족들 사이에서 반항아로 불리던 그는 중학교도 졸업하지 않고, ‘삶을 가장 뜨겁게 살 수 있는 방식’을 찾아 나섰다. 그리고 1930년대 즈음 그는 그 방식으로 카메라를 선택하고, 멕시코, 미국 등 세계 각국의 모습을 찍었다.


그러던 중 발발한 세계 2차대전에서 브레송은 독일군의 포로가 됐다. 포로수용소에서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던 그는 세 번의 시도 끝에 그곳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이후 전쟁이 끝나고, 사회가 안정되면서 브레송의 사진작가 인생도 다시 시작됐다. 그는 당대 유명 사진작가들과 함께 사진작가들의 연합통신사 ‘매그넘포토’를 설립해, 사진가들의 자율권과 경제권을 보호하고자 했다. 브레송 자신도 이를 기반으로 인도, 중국 등 동양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이후 『결정적 순간』 『모스크바 사람들』 등 작품집을 출간했다. 이런 많은 활동을 이어가던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은 2004년 8월 3일, 96번째 생일을 며칠 앞두고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눈을 감았다.

‘결정적 순간’ 속에 담긴 일상, 사회, 개인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은 대상의 본질이 가장 잘 드러나는 순간인 ‘결정적 순간’을 찍고자 했다. 이를 위해 그는 반사판 등 사진을 찍기 위한 장비와 어떠한 연출도 거부한 채 흑백으로만 사진을 찍었다. 또한 초점거리 50m, 조리개 3.5인 렌즈가 전부인 사진기 ‘라이카’를 사람 눈에 상응하는 이상적인 모델로 여기고, 그의 사진기로 ‘라이카’만을 고집했다.


그의 손 안에 쏙 들어가는 ‘라이카’로 그가 포착한 결정적 순간에는 평범한 일상, 당시 사회의 모습, 개인의 모습 등이 담겨 있다. ‘결정적 순간’의 미학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인 ‘생 라자르 역 뒤에서’(사진①)와 실존주의 작가 겸 철학자인 장 폴 사르트르가 문학비평가 장 폴한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의 사진은 평범한 일상을 보여준다. 또한 중국 공산당이 집권하기 직전 청나라 내시의 모습(사진②), 혁명가 체 게바라가 포도주 잔을 앞에 놓고 맑게 웃는 모습, 혁명 활동을 하고 있는 파리의 학생과 노동자, 나치 협력자를 고발하는 프랑스 여인을 찍은 사진은 개인의 모습과 그 개인이 속한 사회의 모습도 보여준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은 사진작가 외에 초현실주의 그림을 그리는 화가, 장 르누아르 감독을 도와 영화를 찍은 조감독으로도 유명하다.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삶을 원했던 만큼, 예술도 자유롭게 즐겼던 그의 모습에서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점이 있다. 그가 추구한 자유 속에는 세상 본연의 모습을 보고자 한 그의 목표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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