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졸업장만 있으면 취업이 보장되던 시기는 지난 지 오래다. 졸업 후 대기업 정기 공채를 통해 입사하고 평생직장으로 삼는단 공식도 옛말이 됐다. 최근 2년간 대기업과 중견기업 신입 채용은 눈에 띄게 줄었고 채용 공고의 80% 이상이 경력직을 원한다. 이 틈에서 취업을 포기하거나 무기력한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다. 새롭게 등장한 중고 신입 채용 흐름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알아보자.
경력 있는 신입? 채용의 새 기준
최근 채용 시장엔 신입보다 경력을 우대하는 ‘중고 신입’ 흐름이 자리 잡고 있다. 중고 신입은 1~2년의 짧은 경력을 가졌지만 신입 채용에 지원하는 구직자를 말한다. 지난 6월 대한상공회의소의 ‘상반기 채용시장의 특징과 시사점 조사’에선 올해 채용 공고의 97.4%가 경력 보유자를 선호한다고 나타났다. 기업은 실무에 즉시 적응할 수 있는 인재를 원하지만 대졸 구직자 1000명 중 절반 이상은 대학 재학 중 직무 경험이 없다고 답해 기업의 기대와 청년층의 상황이 엇갈리고 있다. 본교 이은실 현장실습지원센터 담당자는 “정기적으로 열리던 대규모 공개 채용이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 이후 기업이 필요한 시점에 인재를 뽑는 수시 채용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성장과 효율을 중시하는 기조가 채용 방식에서 드러난 결과다.
기업이 중고 신입을 우대하는 이유는 실무 적응력과 조직 경험을 갖춘 인재를 원하는 경향이 강화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HR테크 기업 ‘인크루트’가 인사 담당자 95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 약 90%가 중고 신입을 선호한다고 밝혔다. 이유로는 ‘조직 문화 이해도가 높아서’(46.2%), ‘업무 투입 속도가 빨라서’(26%)가 꼽혔다. 회사라는 조직에 소속돼 본 경험과 이전 직장에서 축적한 업무 능력이 매력적으로 작용한다. 임창현 SK리더십 리서치 펠로우는 “명문대 졸업만으로 취업을 장담하던 시대는 지났다”며 “자신의 능력을 가시적으로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고 전했다. 범용적으로 다양한 일을 소화할 수 있는 인재보단 한 분야를 전문적으로 알고 경험한 직원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바뀐 채용 동향에 따라 구직자들의 취업 전략도 달라지고 있다. 정기 공채 시기엔 전공 성적, 인적성 검사, 면접과 같은 간접 지표가 주요 평가 기준이었다. 그러나 수시 채용 체제로 전환되며 실무 경험과 포트폴리오와 같은 직접적 경험의 비중이 높아졌다. 임 펠로우는 “최근 기업들은 사업 확장 속도가 빨라 성과와 효율을 중시한다”며 “중고 신입만을 원한다기보단 새로운 사업에 바로 투입할 수 있는 검증된 인력을 찾다 보니 경력직을 뽑는 흐름이 생겨났다”고 얘기했다. 이에 대학생들은 졸업 전 인턴 경험을 중요 스펙으로 여기고 있다. 특히 채용 전제형 인턴은 정규직 전환 가능성이 높아 경쟁이 치열하다. 하지만 그마저도 높은 스펙과 경험을 요구해 진로 방향을 바꾸는 구직자도 존재한다. 이소연(식품영양 20) 학우는 “실무 중심의 경험을 요구하는 취업 동향에 한계를 느껴 공기업 취업으로 진로를 전환했다”고 말했다.
청년 경력 양극화를 불러오다
실무형 인재를 높이 평가하는 기업 문화 속 청년은 임금과 경력 확보 문제로 불안을 느낀다. 직무 중심 역량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대학 교육에 대한 불신도 영향을 미친다. 2023년 고용노동부와 한국노동연구원의 공동 연구에 따르면 대학은 이를 개선하고자 취업 계약 학과를 도입했으나 그 효과가 미미하다. 일부 대학과 지역 기업 간의 연계에 그치고 업무 능력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 역시 취업 불안도를 심화시키는 요소다. 작년 기준 대기업 대비 중소기업 임금 비율은 약 62%이며 국제 비교에서도 국내 임금 격차는 일본과 EU보다 크게 나타났다. 그럼에도 청년들은 경력을 확보하기 위해 중소기업 취업을 고려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 학우는 “영국 어학연수 시절 대기업 취업 여부와 관계없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수준의 임금을 받을 수 있단 점에 놀랐다”며 “반면 한국은 업무 부담 대비 임금이 낮아 경력을 위해 참고 일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라고 전했다.
경력직 중심 채용이 확대되면서 청년층은 초기 노동시장 진입부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의 조사 결과 민간 채용 공고의 82%가 경력직 대상이었으며 신입 채용은 2.6%에 불과해 인턴이나 계약직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인식하고 있다. 치열한 경쟁은 ‘인턴을 위한 인턴’이란 표현까지 낳았다. 주은영(경영 22) 학우는 “정규직이 아님에도 높은 자격을 요구해 요즘 인턴은 ‘금턴’이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말했다. 직장에 진입하는 시기가 늦어지며 생애 총소득 역시 감소한다. 지난 2월 한국은행의 ‘경력직 채용 증가와 청년 고용’ 보고서에 따르면 경력 우대 채용의 확산으로 생애 총 취업기간이 21.7년에서 19.7년으로 줄었고 *생애 소득 현재가치는 13.4% 감소했다. 청년 취업 지연은 장기적으로 개인과 사회 모두에게 부담을 키우는 구조다.
모두가 바꾸는 미래의 채용 시장
고용 환경의 과도기 속에선 청년 세대의 적극적인 도전이 요구된다. 과거와 비교했을 때 업무 적합성이 중요해진 지금 기업에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야 한단 조언도 있다. 임 펠로우는 “학생들은 주어진 기회가 없다면 스스로 프로젝트를 만들어 보는 것 또한 방법이다”며 “성공과 실패에 상관없이 자발적으로 시도하며 그 안에서 가치를 창출해 보는 경험도 도움이 될 것이다”고 얘기했다. 실무 중심의 채용 변화는 국내에만 한정된 것이 아닌 전 세계적 흐름이기 때문에 이에 편승하고 지원자가 자신의 역량을 증명하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실효성 있는 경력 지원을 강화하기 위해선 대학을 포함한 평생교육시설이 변화의 흐름을 따라가야 한다. 본교는 산학협력 현장실습과 인턴십 프로그램을 운영해 재학생의 실무 경험을 지원하고 있다. SW중심대학사업단의 SW인턴십은 중장기 인턴십을 진행해 실제 개발 업무와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한다. 이 산학협력 담당자는 “산학협력 인턴십 프로그램은 재학생 신분으로 회사 생활을 겪을 수 있는 기회인만큼 많은 학생이 방학과 정규 학기를 활용해 참여하면 좋겠다”고 전했다. 대학 내 프로그램은 경험뿐만 아니라 개인의 역량과 성향을 파악하는 계기로도 활용할 수 있다. 주 학우는 “현대 취업 시장에서 산학협력 프로그램은 필수라고 생각한다”며 “회사가 구직자에 대해 알게 되는 것뿐만 아니라 스스로가 조직 생활에 적합한 성향인지에 대해서도 알 수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기업이 무경력 신입을 채용해 교육할 수 있도록 정부의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 임 펠로우는 “경력과 일자리 안정성이 흔들리는 현상은 전 세대와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하는 문제다”며 “기업은 의도적으로 무경력 신입 사원을 채용해 미래 자원을 확보해야 한다”고 전했다. 취업 지원을 장기화하고 안정적인 노동시장 진입을 위한 인센티브 지원과 같은 현실적인 정책이 필요하단 점도 확인된다. 고용노동부는 위축된 채용 시장에서 청년 세대의 일자리 부담을 덜기 위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원활한 노동시장 진입과 기업의 인재 양성을 위한 ‘미래내일 일경험’ 사업이 대표적 예시다. 올해 하반기부터 확대되는 청년 일자리도약 장려금은 연속 4개월 이상 실업 상태에 처한 청년을 정규직으로 채용한 기업과 6개월 이상 고용을 유지한 기업에 지원금을 지급한다. 안정적인 노동 시장 진입을 위해선 교육과 채용에만 그치지 않고 고용 유지로 이어지는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
시대가 급격히 변함에 따라 청년 노동시장도 변곡점에 놓여있다. 대기업의 신입 채용 축소, 경력 중심 선발, 일자리의 질 저하, 장기화 되는 취업 준비가 청년에게 지나친 부담을 지우는 것은 아닐까. 원활한 취업과 인재 양성을 위해 각자의 입장만을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는 연대가 필요하다. 그 연대가 시작되는 순간 한국 사회는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생애 소득 현재가치: 노동시장에 진입한 시점에서 앞으로 평생동안 벌게 될 소득을 현재 시점의 가치로 환산한 금액
참고문헌
2025년 청년고용 정책방향, 고용노동부, 2025.1.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