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 저장된 디지털 기록은 우리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남는다. 여론 조사 업체 한국리서치가 지난 5월23일(금)~26일(월)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가장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디지털 자산은 사진, 문서 등의 개인 보관 콘텐츠가 51%, 문자, 카카오톡과 같은 메신저 기록이 48%를 차지했다. 그러나 이러한 자산을 상속하기 위한 제도는 아직 미비하다. 디지털 유산이 무엇인지, 현행법엔 어떤 한계가 있는지 알아보자.


만질 수 없는 유산
‘디지털 유산’은 사망자가 생전에 보유하던 디지털 형태의 재산과 기록을 의미한다. 게임 속 재화, 선불충전금, 가상화폐 등은 금전적 가치가 있는 디지털 유산에 해당한다. 사진과 영상, 온라인 계정, 메시지, 댓글을 포함한 디지털 기록은 비금전적 가치의 디지털 유산으로 구분된다. 본교 우병창 법학부 교수는 “금전으로 환산 가능한 경우 기존 민법에 따라 정해진 상속자에게 일정 비율로 배분할 수 있어 비교적 간단하다”며 “그러나 비금전적 유산은 함께 기록을 남긴 연인이나 친구처럼 관계자가 많고 서로 의사가 충돌할 수 있어 처리 과정이 복잡하다”고 말했다.

유족의 계정 접근 요청과 플랫폼의 개인정보 보호 의무가 충돌하며 디지털 유산 상속이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지난해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의 유족들은 고인의 장례를 위해 스마트폰 연락처와 메시지 기록 확인을 요청했으나 기업은 개인정보 보호 원칙과 고인의 생전 동의 부재를 이유로 거부했다. 이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의 요청으로 삼성전자와 카카오 등은 이름을 제외한 전화번호만 공개했다. 메시지 내용과 같은 유산의 상속은 사생활과 직결돼 고인이 상속을 원하지 않을 수 있다. 정연우(공예 24) 학우는 “온라인 계정은 비밀번호를 설정하는 개인 공간이기에 상속하고 싶지 않다”며 “기업은 고인의 사생활 보호를 우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얘기했다. 권리 충돌을 막기 위한 디지털 유산 상속법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 메신저 플랫폼 카카오톡이 개인/보안 설정에서 제공하는 ‘추모 프로필’ 기능이다.(사진출처=카카오톡 캡처)
▲ 메신저 플랫폼 카카오톡이 개인/보안 설정에서 제공하는 ‘추모 프로필’ 기능이다.(사진출처=카카오톡 캡처)

디지털 유산 상속만을 위해 제정된 법은 없지만 일부 국내 플랫폼은 상속을 돕는 기능을 도입하고 있다. 메신저 플랫폼 카카오톡은 2023년 1월부터 ‘추모 프로필’을 운영하고 있다. 스마트폰을 해지하거나 휴면 상태가 돼도 ‘알 수 없음’ 대신 프로필 앞에 국화가 표시돼 고인을 추모할 수 있다. 이용자는 생전에 직접 전환 여부를 선택하거나 대리인을 지정할 수 있다. 유족의 요청으로도 전환이 가능하다. 삼성 클라우드를 운영하는 삼성전자는 올해 4월부터 ‘유산 관리자 지정 기능’을 마련해 고인이 지정한 사람이 일부 클라우드 데이터를 열람할 수 있도록 했다.

법이 닿지 못한 상속
디지털 유산을 현행법에 적용하면 민법상 상속 대상에 해당하지 않거나 상속 과정에서 개인정보보호법과 충돌한단 한계가 있다. 민법 제1005조에 따르면 상속 대상은 형체가 있는 물건이나 재산적 가치가 있는 권리에 국한된다. SNS 계정이나 클라우드 데이터와 같이 고인의 인격이나 사생활과 결부돼 타인에게 양도할 수 없는 권리는 상속이 불가능할 수 있다. 개인정보보호법은 개인정보처리자가 법이 정한 범위 내에서만 개인정보를 이용하거나 제3자에게 공유할 수 있도록 한다. 유족에게 정보를 제공할 경우 기업은 고인의 사생활 침해나 제3자 정보 유출에 대한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어 정보 공유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다. 우 교수는 “법적 공백은 기업의 적극적 행동을 이끌지 못한다”며 “플랫폼 내부 정책에만 의존하는 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전했다. 

금전적 가치가 있는 디지털 유산 역시 상속인의 접근 권한을 보장하기엔 법적 공백이 존재한단 비판을 받는다.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자산은 현금화가 가능한 무형 자산으로 상속이 가능하지만 고인이 생전에 어디에서 얼마를 보유했는지 확인하기 어렵다. 지갑 주소나 비밀번호를 모르면 자산에 접근하지 못해 상속할 수 없다. 상속인의 자산 손실을 방지하기 위해 고인의 가상자산 보유 여부와 지갑 주소, 비밀번호의 접근 권한을 사전에 보장하는 제도가 필요하단 목소리가 나온다. 정 학우는 “생전에 모아둔 자산이 금전적 가치를 다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해외 일부 국가와 기업은 디지털 유산 상속 제도를 마련했다. 미국 47개 주는 ‘수탁자 디지털 자산 접근에 관한 개정 통일법(RUFADAA)’을 통해 온라인 계정 이용자가 유언장이나 온라인 도구를 통해 동의한 경우 지정된 사람이나 유산관리자가 전자통신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규정한다. 사용자가 생전에 상속을 준비할 수 있는 서비스를 운영하는 플랫폼도 있다. 구글(Google)은 ‘비활성 계정 관리자’ 기능을, 애플(Apple)은 ‘디지털 유산 연락처’ 제도를 도입해 사용자가 생전에 지정한 인물에게 계정 접근 권한을 부여했다. 이민지(문헌정보 23) 학우는 “장기 기증처럼 사전 동의 제도가 필요하다”며 “제도를 통해 가족들이 SNS 계정을 통해 추억할 수 있도록 상속하고 싶다”고 얘기했다.

분쟁의 씨앗이 되지 않으려면
국내에서 디지털 유산 상속법은 제18대 국회를 시작으로 여섯 차례 발의됐지만 입법 첫 단계인 개념 정립조차 마무리되지 않았다. 각 입법안은 고인의 개인정보 보호에 집중하거나 미니홈피, 블로그를 포함한 일부 형태만을 적용 대상으로 삼아 디지털 유산 상속 문제 전반을 다루지 못했다. 또 디지털 유산의 법적 성질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아 기존 법률과 충돌한단 비판을 받으며 논의가 무산됐다. 우 교수는 “입법의 첫 단추는 해당 법이 다루는 범위와 다른 법률과의 차별점을 명확히 하는 개념 정립이다”며 “디지털 유산의 개념에 대한 논의가 충분히 진행되기 위해선 사회 전반적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업은 이용자의 사후 기록 관리 방안을 선택할 권리가 존중되도록 정보 처리 방안을 세워야 한다. 카카오톡이 ‘추모 프로필’, 구글이 ‘비활성 계정 관리자’ 기능을 제공하듯 이용자가 자신의 디지털 기록 관리에 대한 의사를 확실하게 남길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 우 교수는 “디지털 유산 상속은 플랫폼의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며 기업이 적극적으로 관여할 수 있는 법안 또한 중요하다”고 전했다. 기업은 마련한 기능을 알리고 비밀번호 변경 요청처럼 주기적으로 선택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서비스를 개발해야 한다. 

개인은 원활한 디지털 유산의 상속을 위해 유산 관리 방법을 정해두는 것이 좋다. 어떤 자료를 누구에게 남기거나 파기할 것인지 미리 정해 원하는 처리 방식을 기록해 둬야 한다. 오프라인에 저장된 디지털 기록은 이중으로 저장해 안정성을 높일 수 있다. 실물이 존재하지 않는단 특성을 고려해 가상자산의 지갑 주소나 비밀번호처럼 상속인이 유산을 인식하고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 학우는 “고인의 의사를 반영하는 제도를 이용해 보고 싶다”며 “죽음을 준비하는 방식이 다양해진 것 같다”고 얘기했다. 디지털 유산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국가, 기업, 개인 모두의 관심이 필요한 시점이다.


법적 공백을 채우는 것보다 중요한 건 실효성 있는 법을 만드는 것이다. 본교 우병창 법학부 교수는 “성급한 입법은 권리 보장이 아닌 피해를 주는 누더기 법을 만들 수 있다”며 “충분한 공감대 형성과 디지털 유산의 구체적 개념 정립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디지털 흔적은 생성부터 처리까지 우리의 관심을 필요로 한다. 디지털 유산이 갈등의 씨앗이 아닌 고인의 안식과 유족의 추억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준비된 사회를 만들어 가보자.

참고 문헌
양종찬. (2020). 디지털유산 중 비공개 정보의 상속성. 중앙법학, 22(4), 53-83.
김진홍, 이해영. (2022). 개인의 사후 디지털 기록관리를 위한 정책과 방안. 기록학연구,(72), 165-203. 10.20923/kjas.2022.72.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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