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동국대 교수 신정아 씨로부터 불거지기 시작한 학력위조 바람이 두 달이 넘도록 사그러들 기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유명 건축가에서부터 CEO, 대학 교수까지 학력을 위조한 사람들의 직업도 가지가지다. 이쯤되다 보니 위조 사실이 밝혀지기 전 스스로 밝혀 죄를 조금이나마 줄이겠다는 마음으로 자백 아닌 자백을 하는 웃지 못할 상황까지 생겨났다.

이번 사태를 지켜보며 한 가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적지 않은 연예인들이 학력 위조에 참여(?)했다는 점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학벌에 대한 무조건적인 추종이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님을 알고 있었지만, 학벌 텃세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고 생각했던 연예인조차 그 틀에 갇혀 있었다는 점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론적 지식보다는 감성이 중요한 직업이 예능인 아니던가. 사람들을 속였다는 잘못은 그렇다 치고, ‘왜 그들이 거짓말을 해야 했을까’가 새삼 궁금해졌다.

그러나 궁금증은 10분도 되지 않아 풀렸다. 답은 학력 위조 소식을 접한 포털 사이트의 뉴스 페이지에 있었다. 뉴스 페이지의 연예 섹션은 ‘서울대 출신 미스코리아’ ‘명문대 출신 탤런트’와 같은 제목으로 장식돼 있었기 때문이다. 기사에 달린 네티즌들의 호의적인 댓글 역시 좋은 학교를 나온 만큼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한국의 연예인들의 처지를 보여주는 듯 했다.

학력에 있어서만큼은 분야를 막론하고 이토록 ‘평등한’ 기준이 적용되다니, 이제는 학벌이 새로운 신분제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그리고 ‘학력 신분제’가 절대적으로 적용되는 사회에서 대중의 관심을 받아야만 하는 연예인들이 학력을 속이는 선택을 했던 것은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학력 신분제’ 안에서는 뛰어난 노래나 연기와 같은 실력보다 ‘점수 높은 학교’가 가산점으로 인정되기에.

학력 위조 연예인들의 ‘하나같이 젊을 적의 치기어린 거짓말이었다’는, ‘고백할 용기가 없었다’는 천편일률적인 변명을 지켜보면서 배신감보다는 안쓰러움을 느낀 이유는 그들에게 거짓말을 요구한 ‘학력 신분제’를 만든 사람은 바로 우리였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동안 필자의 양심이 콕콕 쑤셨던 것은 바로 어제 ‘명문대 출신 연기자 A' 기사를 클릭했던 내 모습이 생각나서였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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