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우리나라의 박지성 선수가 속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우승으로 영국 프리미어리그가 막을 내렸다. 리그가 진행되는 동안 우리 국민들은 박지성 선수를 비롯한 4명의 프리미어리그들을 향해 뜨거운 관심을 보냈다. 그들의 활약상을 보기 위해 눈이 충혈되도록 밤을 지새우기도 했고, 한 선수가 골이라도 넣은 날이면 관련동영상을 찾아 ‘보고 또 보고’를 반복했다. 우리는 왜 프리미어리그에, 그리고 한국인 프리미어리거에 열광하는 것일까?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자 지난 미국 버지니아대학 총기난사사건이 일어났던 몇 주 전 상황이 떠올랐다. 총기난사사건의 주인공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우리 국민들은 단순한 유감 표명이 아닌 ‘사죄’로써 미국 국민들에게 애도의 뜻을 표했다. 분명 이 사건은 미국사회의 문제와 결부된 것임에도 우리는 이 사건을 ‘피의 문제’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박지성 선수의 성공에 기뻐하는 것은 박지성 선수의 성공은 한국인의 성공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조승희의 잘못은 곧 한국인의 잘못이며, 박지성의 성공은 곧 한국인의 성공으로 볼 수 있을까? 마치 그들의 일이 자신의 일인 양 일희일비하고 있는 우리는 사실 ‘박지셩=한국인=나’와 같은 과장된 정체감에 사로잡혀있는 지도 모른다.


우리의 정체성 중 가장 과장되거나 왜곡된 형태 중 하나는 바로 학교에 대한 정체감이다. 자신이 다니는 학교가 대학종합평가에서 1위를 받느냐 2위를 받느냐에 목을 매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머리를 식히고 냉정하게 바라보자. 학교의 평가 순위는 달라질 수 있어도 나의 본질을 이루고 있는 것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대한민국의 국민, 어느 정당의 지지자, 한 연예인의 팬클럽 회원……. 우리는 이렇게 다양한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 ‘우리 학교’ ‘우리나라’는 내가 정체감을 느끼는 많은 집단 중 하나이며, 상황에 따라 나의 정체성은 언제든지 다른 것으로 대체될 수 있다. 자신을 한 집단에 너무 매몰시킬 필요는 없다. 물론 이것은 학교를 사랑하는 마음,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과는 별개다. 내가 속한 학교, 사회, 국가에 너무 집착하지 말자. 이것이 바로 지연주의, 학연주의와 같은 우리 사회의 고질병을 막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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