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넘어 중국, 프랑스, 독일 등 해외에서 숙명의 이름으로 뭉친 이들이 있다. 바로 해외 지회 동문들이다. 본지(오진화, 황다솔, 구민경, 권나혜, 신윤영 기자)와 영자신문사 ‘숙명타임즈’(하선우 기자)는 올해 1~2월 언론리더십그룹 글로벌 탐방을 통해 각 지회의 해외 동문들을 만났다. 해외 지회 동문들의 이야기, 바다 건너편의 숙명을 만나보자.

<상해 지회>

◆ 상해 지회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김윤자 동문(공예 79, 이하 김 동문): 상해 지회는 1992년 이뤄진 한중수교 이후에 설립됐어요. 창립 당시 상해엔 한국인이 많지 않았죠. 낯선 땅에서 동문들끼리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친목을 도모하려 상해 지회를 만들었어요. 처음 동문회가 결성됐을 땐 7~8분들이 서로 집으로 초대해 식사를 하는 정도였어요.
박현선(법 94, 이하 박 동문): 현재 상해 지회에는 약 30명의 동문들이 계세요. 요즘엔 지회 동문들의 수가 늘어나는 추세예요. 제가 왔을 때만 해도 15명 정도였는데 최근 들어 30명 가까이 됐으니까요.

◆ 상해 지회의 활동에 대해 설명해주신다면
박 동문: 여름, 겨울 방학을 제외하고 보통 2달에 1번씩 정기 모임을 가져요. 신년회와 송년회도 함께 하죠. 정기 모임이 아니더라도 다들 가깝게 살고 있기 때문에 자주 만나요. 각자 집안의 경조사가 있을 때 만나 친목도모도 많이 하고, 선후배 간의 교류도 많아요.
김 동문: 친목도모 외에도 학교 행사를 후원하거나 상해에 있는 후배들을 도와주기도 해요.
박혜정(교육 83, 이하 박 회장) 동문: 동문들끼리 교류하는 것뿐만 아니라 앞으로는 지회가 대외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활동을 계획하고 있어요.
 
◆ 상해 지회를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김 동문: 추억의 모임이고 추억의 장소예요. 긴 세월이 무상하게 동문회에 모이면 학교를 다녔던 때로 돌아갈 수 있거든요.
박 동문: 우리 동문들은 모두 언니 동생 같은 사이에요. 만나면 즐겁고 좋거든요. 선배님께 ‘어디 몸이 아파요’하면 약도 가져다 주시고, ‘반찬이 없어요’라고 말하면 맛있는 반찬도 나눠주세요. 이젠 서로의 남편들과 같이 만나 술도 한 잔씩 기울이는 사이가 됐죠. 또, 다른 모임에선 체면을 차려야 하고 조심해야 하는 부분들이 있기 마련이에요. 그런데 우리 동문회에서는 어떤 이야기라도 거리낌 없이 할 수 있어요. 같은 공간을 4년 동안 함께했다는 건 시대가 달라도 중요한 것 같아요.
 
◆ 많은 후배들이 상해에 관심이 많은데, 한 마디 해주신다면
박 회장: 이후에 후배들이 중국이나 상해에 올 때 상해 지회가 후배들이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됐으면 해요. 또, 상해에 왔을 때 지회에 연락해주면 좋을 것 같아요. 우리 동문들은 도움이 필요한 후배라면 누구든지 환영하니까요. 상해에서 혼자 직장생활을 하거나 유학 온 후배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해요. 집으로 초대해 밥도 같이 먹고 생필품을 거리낌 없이 나눠주면서 말이에요.

<파리 지회>

▲ 파리 지회의 민현숙 동문이 재학 시절을 회상하며 당시의 이야기를 설명하고 있다.

◆ 재학시절, 가장 값진 경험은
함희경(프랑스언어·문화 75년 졸업, 이하 함 동문): 재학 당시 학과에서 학회장직을 맡았어요. 불어 웅변대회, 연극, 단막극 경연대회, 학술 세미나 등 많은 교내외 행사를 준비해서인지 대학교 3학년 때 추억이 가장 많아요. 대외적으로 숙명을 알렸다는 게 가장 기억에 남아요.

◆ 숙명인으로 살아간다는 건
민현숙(프랑스언어·문화 81년 졸업, 이하 민 동문): 재학 시절 한 가지 느낀 점이 하나 있어요. 그건 바로 우리 학교는 학생들의 자존감을 높여준다는 사실이에요. 이곳 프랑스에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었던 것도 숙명 덕분이에요. 지금도 파리 지회에 있는 동문들을 보면서 숙명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돼요.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활약을 펼치고 있는 동문들이 많이 계시거든요.
또, 숙명을 통해 파리 지회 동문이라는 좋은 인연을 얻었어요. 제게 파리 지회는 ‘친정 같은 곳’이거든요. 다른 지회와 비교해서 파리 지회의 규모가 작긴 하지만 꾸준히 만나면서 서로 잘 지내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동문들을 만나면 친정에 온 것처럼 편해졌죠.

◆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함 동문: 우리 학교는 ‘인생의 놀이터’ 같은 곳이에요. 학과 생활을 하면서 가장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학과장으로 열심히 활동했죠. 그 때 당시에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과 아직도 연락하고 있어요. 학과 생활뿐만 아니라 시야를 넓혀 스스로 기회를 만들어가는 숙명인이 됐으면 좋겠어요.
민 동문: 해외에서 생활하다 보면 한국이 정말 좁게 느껴져요. 후배들은 인생을 좀 더 넓게 봤으면 좋겠어요. 젊을 때 많이 보고 경험하길 바라요.
또, 자기 삶의 큰 그림을 미리 그려보고 하나씩 이뤄가는 걸 추천해요. 전 개인적으로 원하지 않는 일이더라도 주어진 일에 항상 최선을 다하는 편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능동적이기보단 수동적일 때가 많았죠. 그런데 나이가 들고 보니 때론 아쉽기도 해요. 그때그때 주어진 일을 하는 것도 좋지만, 미리 그림을 그려놓고 퍼즐을 맞춰가는 것도 멋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독일 지회>

◆ 독일 지회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 독일 지회 회장 장근영 동문이 독일 지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장근영(정치외교 70년 졸업, 이하 장 회장): 독일 지회는 2009년에 만들어졌어요. 다른 나라의 동문들이 동문회를 만드는 걸 보며 독일에도 동문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마침 당시 뮌헨의 한인교회에서 알고 지내던 분들이 본교 동문이란 걸 알게 됐어요. 그분들과 함께 독일 지회를 만들었죠.
다른 나라의 지회보다 늦게 시작해서인지 아직 규모가 크지는 않아요. 그래도 여느 지회 못지않게 화목한 분위기에서 지내고 있어요. 매주 뮌헨 한인 교회에서 만나 함께 예배를 드리고 설교를 들어요. 아직 지회 설립 초기단계라 정기 모임이나 연락을 통해 동문들의 참여율을 높이려 하고 있죠.
김진희 동문(아동복지 98졸, 이하 김 동문): 앞으로는 동문들끼리 모일 기회를 많이 만들 계획이에요. 분기마다 한 번씩, 일 년에 네 번은 꼭 모이자고 약속했어요.

◆ 재학시절,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장 회장: 예전엔 학교에 통학 셔틀버스가 있었어요. 학교와 남영역을 오가는 버스를 타고 다녔어요. 그러다 가끔씩 버스를 놓칠 때면 학교를 올라가는 길의 언덕을 뛰어 가느라 힘들었죠.
김 동문: 방송부에서 매일 노래를 틀어주며 교내외 소식을 전해줬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게 가장 재밌었던 추억이에요.

◆ 숙명여대는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장 회장: 우리 학교는 학생들이 부드러운 힘이라는 역량을 키울 수 있는 곳이에요. 그 덕분에 지금의 저도 있는 것이라 생각해요. ‘세상을 바꾸는 부드러운 힘’, 처음 이 슬로건을 들었을 때 우리 학교에 딱 맞는 말이라 가슴에 절절히 와 닿았어요.

◆ 후배들에게 한 마디 해주신다면
김 동문: 숙명여대는 서로를 이어주는  끈이에요. 숙명여대 출신이라는 하나의 공통점만으로 낯선 이국 땅, 독일에서 동문들이 단합할 수 있는 걸 보면 알 수 있죠. 그 바탕엔 숙명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고 생각해요. 숙명이 스스로에게 자부심이 될 수 있다는 걸 후배들도 기억하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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