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칼럼]

올해 들어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사람들을 유난히 쉽게 마주할 수 있었다. 연일 미세먼지의 위험성에 대한 뉴스가 떠돌고, 노랗게 피는 개나리보다 뿌연 하늘이 먼저 봄을 알렸다. 날씨 탓인지 괜스레 나도 함께 흐려지는 기분이다. 내 인생도 봄인데, 나도 청춘인데 내게는 뿌옇게 낀 먼지만 가득한 것 같다. 울적한 기분에 ‘카톡’에 있는 친구 목록을 훑어보다 이내 핸드폰을 껐다. 언제부턴가 주변사람들에게 잘 지내냐는 가벼운 안부 인사를 묻는 것이 두려워졌다. ‘힘들다. 뭐 해먹고 살아야 되냐’라고 대답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우리는 서로에게 가벼운 인사치레로 괜찮다 말하기조차 힘들다.

작년 10월쯤, 나는 어떤 충동적인 호기심에 내 카톡에 저장된 130여 명의 20대들에게 물었다. “우리나라 대학생을 대표하는 단어가 뭐라고 생각하나요?” 총 160개(중복 포함)의 답변 중 취업준비생, 노예 등 109개의 단어가 부정적이었고 열정, 희망 등의 긍정적인 단어는 단 25개에 불과했다. 응답자 중 24명이 이 질문에 ‘취업준비생’이라고 답했다. 가장 많은 사람이 답변한 말이 취업준비생임에도 불구하고 나를 더욱 슬프게 만들었던 건 2번째로 많은 의견이 모였던 ‘노예’라는 단어였다.

2011년 초, <20대 개새끼론>이 논란의 중심이 됐던 당시 열변을 토했던 생각이 났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우리 세대의 20대가 정치에 무관심하고, 자기 밥벌이에만 전념한다는 것이 20대가 개새끼인 이유였다. 그로부터 4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한 사람이 대학교를 졸업할 수 있는 세월이 지난 지금, 우리는 여전히 밥벌이에 전념하며 살고 있다.

<20대 개새끼론>이 한창이었던 당시 나는 생각했다. 밥벌이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해주는 사회가 바람직한 것이 아닐까? 청춘들은 나름대로 고군분투하며 살아가고 있는데 왜 ‘개새끼’가 돼야 하지? 그런데 이상하다. 지금 우리는 밥벌이에 전념하는 청춘조차 되지 못하고 밥벌이의 ‘노예’가 됐다. 아니, ‘밥벌이조차도 못하는’ 노예가 됐다.

미세먼지 주의보와 함께 나의 4번째 학기가 시작된 지 2달이 지났다. 나의 청춘의 미세먼지농도도 함께 높아진다. 왜 20대가 개새끼가 돼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도 이제는 무의미하게 다가온다. 우리는 밥벌이에만 전념할 기회조차 갖기 힘들어졌다.


김벼울(미디어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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