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25시]

나와 다른 너, 우리가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직장인 A씨는 공장식 축산업에 관한 다큐를 보고 채식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러다 건강상의 이유로 채식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이후 회식 날이면 직장상사에게 또 어떤 핀잔을 듣게 될지 걱정이 앞서 온종일 기분이 좋지 않다. 다른 사람들이 고기를 먹을 때, 버섯을 구워먹거나 다른 반찬을 먹는다. 그럼에도 직장상사는 굳이 고기를 권하며 “왜 쓸데없이 그런 걸 하느냐. 사회생활 어찌 하려 하느냐”며 혀를 쯧쯧 찬다.’채식주의자들의 체험수기와 인터뷰 자료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대목이다. 많은 채식주의자들이 채식을 실천함에 있어 가장 어려운 점으로 꼽은 것은 줄어든 음식 범위나 경제적 비용이 아닌 사회적 인식이었다. 

 

 채식주의는 단순한 식습관의 의미를 넘어서 하나의 가치관을 내포한다. 개인의 가치관을 옳고 그름으로 평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는 비단 채식주의에만 해당하는 내용이 아니다. 위 사례의 직장상사처럼 본인과 다르다는 이유로 함부로 혹은 너무나도 쉽게 말을 내뱉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와 신념을 굳건한 틀로 규정짓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타인에게도 중요한 가치와 옳은 신념이 있다는 사실을 쉽게 망각해버린다. 역으로 자신에게 중요한 것이라도 타인에게는 그만큼 중요하지 않거나 더 중요한 다른 것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지워버리기도 한다. 이런 닫힌 마음을 가진 구성원들이 모인 사회는 결코 살기 좋은 사회가 될 수 없다.

 

 내가 사는 이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이러한 세상이 우리나라에만 약 5천만 개, 세계에는 약 70억 개가 존재한다. 각자의 세상을 끌어안은 우리는 수많은 상호작용을 수행하며 살아가는 사회적 동물이다. 자유와 평등, 다양성과 관용, 소통과 존중… 이 모든 익숙한 용어들이 추구하는 것은 결국 하나다. ‘함께 사는 사회’다. 자신의 가치관이 소중한 만큼 타인의 가치관도 소중하다. 자명하지만 어렵고, 어렵지만 고수해야 할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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