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전 세계적으로 좀비 영화와 드라마의 인기가 식을 줄 모른다. '부산행' '킹덤' '지금 우리 학교는' 같은 작품은 'K-좀비'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키며 글로벌 관객의 주목을 받았다. 예술은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거울이다. 좀비 문화의 확산이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사회의 현실을 투영하는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이유다.
좀비는 사유 능력을 상실한 존재의 표상이다. 보통 '자발적 사고 없이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존재' '타인의 의지에 지배당하는 존재'로 해석되고, 대중문화에선 '인육을 탐하며 감염을 퍼뜨리는 괴물'로 자주 묘사된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말했다. 여기서 ‘생각한다’란 이성으로 대상, 문제, 현상을 철저히 탐구하고 그 의미와 본질을 깊이 헤아리는 사유(思惟)의 과정을 일컫는다. 사유할 수 있는 사람만이 존재 가치를 지닌다는 뜻일 것이다. 반면 좀비는 사유의 주체가 사라지고 기계적 본능만 남은 기형적 존재이고, 좀비 작품은 사유 능력이 마비된 사회가 초래할 공포와 붕괴를 극적으로 조명한다. 극단주의와 가짜 뉴스, 무분별한 선동이 판치는 현실 세계와 놀랍도록 닮았다.
인간 본연의 사유 능력을 회복하기 위해 AERO 사고(Thinking)를 제안한다. AERO는 Anti-framing(프레임 탈피), Essence(본질 추구), Reason(이성적 판단), Ownership(주인의식)의 약자로, 좀비를 인간으로 되돌리는 사유 능력의 필수 요소다.
AERO 사고는 편협하고 억압적인 프레임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흑백 논리와 이념의 덫에서 벗어나야만 정상적인 사유가 가능하다. 다음으로, 사안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을 터득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사소한 논쟁과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다. 셋째, 이성적 판단을 통해 사실과 가설을 명확히 구분하고, 근거 없는 주장이나 허위 정보에 현혹되지 않아야 한다. 지구가 평평하다는 가설과, 항공 데이터와 인공위성이 반증한 지구는 둥글다는 사실을 분별케 하는 원동력이 이성이다. 넷째, 주인의식으로 무장해 사회적 권리와 책임을 정확히 인식하고 실행하는 일도 간과해선 안 된다. 기업의 소액주주는 단순한 투자자가 아닌 주인의 권리를 행사해야 하듯, 시민 또한 국가의 주인으로서 헌법이 보장하는 주권을 올바로 활용해야 한다.
AERO 사고는 사리사욕에 사로잡힌 자들이 무차별로 휘두르는 권모술수와 *혹세무민의 언행에 맞서는 강력한 수단이자 최후의 보루다. 좀비가 창궐하는 지금이야말로 AERO 사고를 회복하고 존재 의미를 되새길 때다.
*혹세무민: 세상을 어지럽히고 백성을 미혹하게 하여 속인다는 말을 뜻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