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필자는 길고 길었던 10대를 벗어나 20살이 되면 바로 어른으로 변신할 줄 알았다. 이때 ‘어른’은 더 성숙하고, 더 멋있게 도전하는 소위 ‘어른스러운’ 어른이다. 필자 주변의 어른들은 자연스럽게 멋있는 ‘어른’이 돼 있었다. 하지만 22살이 된 지금도 필자는 어른이 되지 못했다. 부모님에게 경제적 지원을 받고 고민이 생기면 여전히 주위 어른들에게 조언을 구한다. 청소년 시절과 달라진 게 없다고 느꼈을 때 ‘어른’에 가까워지기 위해 본지 기자를 지원했다. 어른이 되기 위해 맞이해야 할 ‘처음’에게 도전장을 내밀자는 의미였다.

본지 기자 활동을 통해 그동안 필자 마음대로 어른이 되는 과정을 생략했음을 깨달았다. 인터뷰 요청 전화를 걸 때면 두려움에 떨고, 인터뷰 나갈 땐 떨리는 마음으로 허둥지둥하기도 한다. 완벽하지 못한 모습을 보일 때면 스스로가 초라해지고 한심하게 느껴진다. 요즘같이 SNS가 발전한 시대에선 ‘결과’에 집중하기 쉽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 세상엔 공짜는 없다. 어떤 결과도 쉽게 얻을 수 없고, 어떤 사람도 바로 ‘어른’으로 변신할 수 없다. 완벽하지 못한 시행착오를 겪어야만 어른이 되기 때문이다. 어쩌면 당연한 순리지만 말이다.

수많은 ‘처음’의 과정을 지나면 필자도 모르게 조금씩 성장한 것을 느끼고 있다. 장황하게 글을 늘리던 문체에서 어느새 간결한 기사체로 기사를 작성하는 필자를 발견했다. 인터뷰 기술도 조금씩 늘기도 한다. 할리우드 배우 윌 스미스는 한 강연에서 “신은 인생에서 가장 최고의 것들을 항상 두려움 뒤에 숨겨놓는다”란 말을 남겼다. 우리는 최고에 닿기 위해 최고의 두려움을 겪어야 한다. 그리고 필자는 두려움을 이젠 의연하게 받아들이기로 결심한다. 

어른스러운 어른이 되기 위해 우리는 수많은 ‘처음’을 만나야 한다. 그동안 그 처음을 맞는 과정들이 두려워 바로 어른이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앞으로도 본지 기자 활동으로 수없는 ‘처음’을 만날 것이다. 하지만 ‘처음이라 두려울 뿐’이라는 생각으로 당당하게 맞서고 싶다. ‘두려움을 느끼지 않겠다’보단 ‘두려움을 인정하자’에 가까운 결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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