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숙케치]
지난해 필자는 17년 지기 친구와 여행을 떠났다. 남들 다 간다는 유럽 여행을 가보고 싶었다. 지갑이 얇은 대학생은 유럽 전역을 돌지 못한다. 대신 거리만 걸어도 유럽을 느낄 수 있는 프랑스와 런던에서 2주를 보내기로 했다. 출발 전부터 기대가 가득했다. ‘음식이 맛없기로 소문난 영국보단 낭만의 도시, 파리가 있는 프랑스가 더 멋지지 않을까?’ ‘해리포터 팬인 나에게 걸맞은 나라는 영국이 아닐까?’ ‘어차피 두 나라 모두 멋질 텐데!’하는 행복한 고민 속을 헤엄치며 여행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파리는 낭만의 도시다웠다. 전철역 출구로 나와 처음 마주한 파리 하늘은 그야말로 회색이었다. 필자는 소매치기를 경계하느라 짐가방을 끌어안고 두리번거렸다. 어린 동양인 여자의 한껏 웅크린 어깨는 영락없는 초짜 여행객의 모습이었다. 여행 둘째 날이 돼서도 긴장은 풀리지 않았다. 교과서 위주의 영어 공부를 지향한 필자는 음식 주문조차 버벅댔다. 결국 외국인과의 모든 대화를 스페인 교환학생인 친구에게 일임해 버렸다. 스페인 생활을 시작한 지 고작 3개월 차인 친구는 졸지에 ‘영어’란 짐을 혼자 짊어졌다. 초짜 여행객 둘은 신나 보이면 초짜 티가 날까 두려워 많은 사진을 남기지도 못했다.
즐거움과 긴장감이 공존하던 와중, 파리에서 갈등이 발생했다. 파리에서 런던으로 출발하는 날 아침이었다. 28인치 캐리어와 짐가방을 힘겹게 끌던 필자는 마치 겨울을 준비하는 개미 같았다. 개미 눈엔 가벼운 기내용 캐리어를 들고 크로스백을 멘 채 발랄한 발걸음을 옮기는 친구가 얄미운 베짱이처럼 보였다. 대중교통으로 파리 북역까지 갔다간 도중에 여행을 포기할 것 같아 친구에게 우버를 타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했다. 하지만 친구는 땀을 흘리는 필자의 모습이 와닿지 않았던 모양이다. 3만원이 훌쩍 넘을 우버 비용이 걱정될 뿐이었다. 그렇다. 개미와 베짱이는 고작 ‘역까지 가는 방법’ 하나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의견이 대립했다.
결국 지하철과 버스를 이용해 파리 북역까지 가기로 했다. 이동하는 2시간 동안 냉전이 지속됐다. 필자는 양팔이 빠지기 일보 직전이었고 필자의 캐리어는 이리저리 부딪혀 바퀴가 빠질 듯 덜렁거렸다. 친구는 어느새 불개미로 변해버린 필자 때문에 안절부절못했다. 그래도 성실하게 필자의 곁을 지켰다. 예민해진 필자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사방으로 노력했다. 파리 북역에 도착했을 때 친구는 2시간 동안 쌓인 설움과 6일 동안 쌓인 긴장에 그만 눈물이 터져버렸다. “너의 첫 유럽 여행을 내가 책임지고 싶었어.” 그 말을 들은 필자는 친구의 노력을 알아챘다. 필자의 첫 프랑스 여행을 행복과 즐거움으로 채워주려는 친구의 마음을. 필자는 지금도 친구 덕에 행복했던 프랑스 파리를 사진으로 되돌아본다.
한국어문 22 강주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