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4일(일), 본지 기자단은 에픽하이의 20주년 콘서트 실황을 담은 영화 <에픽하이 20 더 무비>를 관람하기 위해 CGV 용산아이파크몰을 찾았다. 조용한 관람이 필수인 여느 영화와는 다르게 관람객 모두 응원봉을 흔들며 노래를 따라 불렀다. 티켓팅에 실패해도 콘서트 현장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시대가 왔다. ‘공연 실황 영화’의 매력에 빠져보자.

▲CGV 용산아이파크몰에 들어서면 대형 전광판에 걸린 '에픽하이 20 더 무비'의 포스터를 볼 수 있다.
▲CGV 용산아이파크몰에 들어서면 대형 전광판에 걸린 '에픽하이 20 더 무비'의 포스터를 볼 수 있다.

다크호스로 떠오른 공연 영화
‘공연 실황 영화’는 콘서트나 뮤지컬 등 공연의 실제 상황을 녹화해 영화로 제작한 작품이다. 영화 외에 콘서트, 뮤지컬 등 극장에서 대안으로 상영할 수 있는 영상물은 얼터콘텐츠(Alter-contents)로 불린다. 공연 실황 영화도 얼터콘텐츠에 속한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지난 2월 20일 발표한 ‘2023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공연 장르 주요 상영작인 <아임 히어로 더 파이널> <아이유 콘서트: 더 골든 아워> <방탄소년단: 옛 투 컴 인 시네마>는 순서대로 매출 1, 2, 3위를 기록했다. 해당 영화 모두 지난해 전체 극장 박스오피스 순위 50위 안에 이름을 올렸다. 공연 실황 영화는 콘서트의 현장감을 더하는 ScreenX나 4D 등의 특수상영, 팬덤을 위한 응원봉 상영회 등을 통해 관객을 극장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국내 공연 실황 콘텐츠는 뮤지컬 홍보 쇼케이스 생중계를 계기로 영역을 넓혀 갔다. 2013년 예술의전당은 ‘공연영상화 사업(SAC on Screen)’을 시작했지만 공연예술을 접하기 어려운 지역에 콘텐츠를 보급하는 데 머물렀다. 2015년 6월 초연을 앞두고 있던 뮤지컬 ‘데스노트’는 뮤지컬 공연 역사상 최초로 네이버 TV를 통해 쇼케이스를 생중계했다. 해당 쇼케이스는 온라인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이에 국내 공연계는 실황 생중계가 작품 홍보에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다. 2016년부턴 실황 생중계가 뮤지컬에서 오페라, 콘서트, 클래식으로 확장됐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을 기점으로 공연 실황 영화 제작이 활발해졌다. 당시 수억 원에 달하는 제작비를 들인 다수의 영화가 연이어 개봉을 미루거나 영화관 상영을 거치지 않고 OTT 플랫폼에 공개됐다. 방문객이 줄어들자 극장 업계는 영화 외에 상영할 수 있는 대체 콘텐츠를 찾았다. 이에 CGV는 얼터콘텐츠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브랜드 ICECON에 더 주력하기 시작했다. 

시공간과 장르를 뛰어넘어
공연 실황 영화의 등장으로 국내에서도 해외 가수의 공연을 만나볼 수 있다. 지난해 11월 CGV에서 독점 개봉한 <테일러 스위프트: 디 에라스 투어(Taylor Swift: The Eras Tour)(이하 디 에라스 투어)>는 콘서트 실황 영화의 저력을 보여줬다. 해당 영화는 전 세계에서 한화 약 3501억원을 벌어들이며 역대 최다 수익을 올린 공연‧콘서트 영화로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디 에라스 투어>를 관람한 강다은(데이터사이언스 23) 학우는 “다른 나라에서 열리는 콘서트를 보러 갈 수 없어 영화 개봉 소식이 특히 기뻤다”고 말했다.

▲테일러 스위프트(Taylor Swift)의 콘서트 실황 영화 '테일러 스위프트: 디 에라스 투어(Taylor Swift: The Eras Tour)' 포스터가 전광판에 걸려 있다. (사진제공=강다은(데이터사이언스 23) 학우)
▲테일러 스위프트(Taylor Swift)의 콘서트 실황 영화 '테일러 스위프트: 디 에라스 투어(Taylor Swift: The Eras Tour)' 포스터가 전광판에 걸려 있다. (사진제공=강다은(데이터사이언스 23) 학우)

국내 엔터 업계에서도 팬층을 사로잡기 위한 콘서트 실황 영화를 내놓고 있다. 지난달 20일(수)엔 에픽하이 20주년 콘서트 실황 영화 <에픽하이 20 더 무비>가 CGV에서 단독 개봉했다. 해당 영화를 제작한 영화사 그램(gram FILMS)의 박상근 대표는 “주 소비층인 팬덤을 만족시키기 위해 제작 과정에서 콘서트의 현장감을 살리는 데 가장 중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에픽하이의 영화와 콘서트를 모두 관람한 백유진(28) 씨는 “영화에 콘서트 현장이 잘 담겨 있어 재밌게 즐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박가희(31) 씨는 “영화를 보며 콘서트 당시의 설렘을 다시 느꼈다”고 덧붙였다. 이외에도 오는 10일(수) CGV에선 에스파(aespa)의 월드 투어 콘서트 실황을 담은 <에스파: 월드 투어 인 시네마>가 개봉한다. 같은 날 방탄소년단 슈가의 앙코르 콘서트 실황 영화 <슈가 | 어거스트 디 투어 디-데이 더 무비>도 아이맥스(IMAX)와 일반 영화 개봉을 앞두고 있다.

콘서트 실황 영화뿐 아니라 클래식, 발레, 연극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 실황을 담은 플랫폼도 등장했다. 예술의전당은 지난해 12월 16일(토) 국내 최초로 공연 영상 플랫폼 ‘디지털 스테이지’를 선보였다. 예매 경쟁이 치열한 클래식계에서 큰 호응을 얻으며 플랫폼 개시 한 달 만에 회원 수는 4만 3700명을 돌파했다. 국내 유명 피아니스트 조성진과 임윤찬의 공연도 온라인에서 만나볼 수 있다. 디지털 스테이지는 2024년 말까지 무료로 운영되며 PC와 모바일 앱으로 이용 가능하다.

영화관이 주는 특별한 기억
공연 실황 영화엔 현장에선 볼 수 없던 CG 효과와 비하인드가 담겨 몰입도를 극대화한다. <디 에라스 투어>엔 시각을 사로잡는 그래픽이 추가돼 공연 흐름의 이해를 돕는다. 남수연(컴퓨터과학 19졸) 동문은 “다른 앨범의 곡으로 전환되는 시점에 CG 효과가 펼쳐져 각 테마의 변화가 잘 드러났다”고 말했다. 지난달 싱가포르에서 진행된 <디 에라스 투어>를 직접 관람한 배정원(한국어문 22) 학우는 “영화엔 콘서트 현장에서 알아차리기 어려운 세심한 연출부터 팬들의 응원 문화까지 담겨 있다”며 “공연 실황 영화는 소중한 기록물이다”고 말했다. 영화 중간에 삽입된 아티스트의 무대 뒷모습은 콘서트 현장의 생생함을 전달한다. 박 대표는 “공연 실황 콘텐츠를 구성할 땐 아티스트 인터뷰를 별도로 녹화하는 일명 ‘메이킹 영상’을 포함하는 경우가 많다”며 “에픽하이 실황 영화를 제작할 땐 정제된 인터뷰보단 멤버들의 솔직한 모습을 담고자 공연 당일이나 리허설 중 틈틈이 촬영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응원봉, 싱어롱(Sing-along) 상영회와 같은 이벤트는 콘서트 현장의 분위기를 재현한다. <에픽하이 20 더 무비> 상영 중엔 무대인사와 동반 관람회 이벤트, 응원봉 상영회인 ‘박규봉 상영회’가 마련됐다. 박 대표는 “팬들과 허물없이 지내는 아티스트의 특성에 맞춰 팬들과 함께 영화를 보는 이벤트를 제안했다”며 동반 관람회를 준비한 계기를 설명했다. 특별 상영회에서 관객은 영상 시청을 넘어 공연에 직접 참여한다. 상영 도중 관객들은 음악 소리에 맞춰 응원봉을 흔들기도, 춤추며 곡을 열창하기도 한다. 백 씨는 “응원봉 상영회에선 응원봉을 흔들거나 노래를 따라 부르며 콘서트 현장과 동일하게 즐길 수 있다”고 답했다. 싱어롱 상영회에 참여한 강 학우는 “싱어롱 상영회에 모인 팬들과 노래를 따라 부르며 소속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배 학우는 “많은 관객이 스크린 앞으로 나가서 춤추는 모습에 실제 콘서트장에 있는 것 같았다”면서도 “영화에 노래 제목과 가사 자막도 추가됐다면 일반 관람객도 쉽게 따라 불렀을 것이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CGV 용산아이파크몰엔 '에픽하이 20 더 무비' 개봉을 기념한 ‘박규네 사진관’ 포토존이 설치됐다.
▲CGV 용산아이파크몰엔 '에픽하이 20 더 무비' 개봉을 기념한 ‘박규네 사진관’ 포토존이 설치됐다.

영화관은 특별 굿즈(Goods)를 제공하며 팬들의 ‘N차 관람’을 유도한다. 제공되는 굿즈로는 시그니처 티켓, 포토 카드 등이 있다. 박 대표는 “요즘 관객분들은 극장에 와서 영화를 본 걸 기념하고 추억할 수 있는 특전을 선호한다”며 “팬덤의 수요를 고려해 아티스트 영화 배급 시 주차 별로 다른 특전을 준비한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2월 1일(수) 개봉한 방탄소년단의 콘서트 실황 영화 <방탄소년단: 옛 투 컴 인 시네마>에선 영화 관람객을 대상으로 멤버 7인 중 1명의 포토 카드를 랜덤으로 증정했다. 또한 방탄소년단의 응원봉인 ‘아미밤’ 상영회 관객에겐 전체 공연 목록이 담긴 티켓 특전이 제공됐다. 박 씨는 “굿즈에 대한 욕심으로 영화를 예매하기도 한다”며 “팬들은 기념 티켓이나 포토 카드 같은 한정판 굿즈로 공연을 추억한다”고 말했다. 


현장 공연보다 저렴한 가격과 높은 접근성은 공연 실황 영화가 가진 매력이다. 해당 콘텐츠는 공연에 대한 호기심을 유발해 관객이 콘서트 현장을 찾는 계기가 된다. 강다은(데이터사이언스 23) 학우는 “콘서트 현장에 함께하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실황 영화를 관람했지만 오히려 두 눈으로 직접 콘서트를 보고 싶단 마음이 커졌다”고 말했다. 콘텐츠 제작 업계의 지속적인 기술 개선으로 공연 실황 영상은 현장 공연만의 분위기까지 담아내고 있다. 시공간의 제약이 느슨해진 지금, 우리의 삶 한가운데로 들어온 공연 예술을 맘껏 즐겨보면 어떨까.

참고문헌
홍선희, 박찬인. (2017). 공연실황 생중계의 관객개발 효과. 글로벌문화콘텐츠학회 학술대회자료집, p.243-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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