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음을 울리는 판소리를 찾아

지난 겨울 본지 기자단은 국악 크로스오버 밴드 ‘모던판소리’의 송봉금 대표를 만나기 위해 전주에 위치한 송 대표의 작업실 ‘판문 창창’을 방문했다. 기와지붕 위 눈이 소복하게 쌓인 작업실의 풍경은 고요하고 아름다웠다. 통유리로 된 창문 밖으로는 눈 덮인 마당이 펼쳐졌고, 맞은편엔 한옥 건물이 보였다. 작업실 벽 한쪽엔 장구와 베이스가 놓여있었다. 커피 향이 가득한 한옥과 장구, 그리고 베이스. 얼핏 보기엔 이질적인 요소들이 한데 모인 공간은 송 대표가 추구하는 다양함을 아우르는 예술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대학 졸업 후, 송봉금 대표는 다원 예술집단 ‘아따(Art-Ta)’에서 국악을 소재로 한 다양한 음악 작품을 시도했다. 이후 활동을 하면서 다른 구성원의 색이 섞이지 않고 자신만의 색이 드러난 음악을 작업하고 싶단 욕심이 생겼다. 마침내 지난 2016년 그는모던판소리를 결성해 자신만의 상상력과 표현력으로자유롭게 작품을 구현하고 있다.

모던판소리 음악의 정체성이 궁금해요. 모던판소리의 음악은 어떤 장르인가요?
제게 장르란 편의상 음악을 구분 지은 명칭일 뿐이라서 저희 음악을 특정한 장르로 규정하긴 어려워요. 다만 제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국악을 원천으로 사용하면서도 사람들이 흥미롭게 들을 수 있는 음악을 하는 것뿐이에요. 모던판소리라는 이름도 이런 의미를 담아 지었어요. 판소리는 전통(傳統), 즉 ‘전하여 통한다’는 사명을 지녔음에도 다양한 장르의 음악에 익숙해진 대중에게 그 매력을 전하는 데 부족함이 있어요. 그래서 전달 방식의 한계를 극복해보자는 의미로 ‘모던’이라는 단어를 ‘판소리’ 앞에 붙여 대중에게 세련되면서도 친근한 느낌으로 다가가고자 했죠.

판소리라는 하나의 장르를 넘어서고자 한 이유가 있을까요?
판소리를 배우면서 기존의 판소리가 답이 정해진 숙제 같단 생각을 자주 했어요. 판소리 하는 사람들에겐 선생님의 소리를 그대로 모방하는 것이 가장 큰 미학으로 통해요. 이걸 ‘거울 소리’라고도 하는데, 선생님의 소리를 잘 따라 할수록 칭찬을 받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모방을 잘하지 못하면 스스로 비관하게 되고, 점차 판소리에 흥미가 덜해지더라고요. 그러면서 판소리계에서 정해놓은 답을 그대로 좇기보단 무궁무진한 나만의 영역을 찾고 싶어졌어요. 사람들이 생각하는 판소리의 고정관념과 한계를 넘어서고 싶다고 생각했죠.

모던판소리 앨범엔 춘향가를 각색한 ‘신연맞이’ ‘귀곡성’ 등의 곡들이 수록돼 있는데요, 원작 가사를 쉽게 풀지 않고 그대로 가져오셨어요. 판소리 가사는 알아듣기 어렵다는 의견이 많은데, 이에 대한 대표님의 생각이 궁금해요.
판소리를 전문적으로 공부한 제게도 판소리의 가사를 이해하는 건 여전히 어려운 일이에요. 판소리를 하는 사람들은 보통 또렷하지 않은 발음으로 소리를 하잖아요. 가사에 쓰이는 단어들도 어려운데 뭉개듯이 발음하니 알아듣기 어려운 것도 당연하죠. 그렇지만 저는 가사의 내용보단 곡의 분위기가 전달됐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이 이 곡의 박자나 선율만으로 호화스럽고 경쾌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면 충분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오히려 가사가 어렵기 때문에 듣는 분들이 선율 안에서 상상하며 저마다의 이야기를 펼치는 음악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 판소리에 담은 오늘의 우리

우리 집에 왜 왔니 왜 왔니 왜 왔니
꽃 찾으러 왔단다 왔단다 왔단다


숙명인에게도 익숙할 이 노래는 전래동요 ‘우리 집에 왜 왔니’의 가사 일부다. ‘우리 집에 왜 왔니’는 두 무리가 노래를 번갈아 부르면서 전진과 후진을 반복해 상대 진영의 사람인 ‘꽃’을 데려오는 놀이다. 그런데 지난 2019년 학계에서 이 가사 속 ‘꽃’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상징하며, 놀이는 ‘위안부’ 인신매매를 묘사하고 있다는 학설이 제기돼 교육부가 조사에 착수한 일이 있었다.

‘우리 집에 왜 왔니’는 송 대표에게도 익숙한 놀이였다. 그는 어릴 적 많이 한 놀이가 ‘위안부’ 문제와 연관됐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듣고 섬뜩함을 느꼈다. 이를 계기로 송 대표는 ‘위안부’ 피해자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창작소리극 ‘꽃 찾으러 왔단다’를 연출하게 됐다. 지난해 8월 1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에 맞춰 막을 올린 ‘꽃 찾으러 왔단다’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관하는 ‘2021년도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 레퍼토리’ 사업에 선정돼 올해 서울에서 재공연 될 예정이다.

‘꽃 찾으러 왔단다’라는 극 제목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위안부’ 할머니들의 아름다운 일상이 무너지는 모습을 전하고자 하는 의도를 담고 있어요. 사람들은 나쁜 상황이 닥쳤을 때도 슬픔을 느끼지만, 기쁜 상황을 박탈당했을 때도 슬픔을 느끼곤 하잖아요. ‘위안소’ 내부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일들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기보단 ‘위안소’로 가기 전의 삶이 무너져가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슬픔을 전하고 싶었어요. 

연출에 있어서도 최대한 자극적인 부분을 배제하려고 노력했어요. ‘위안부’ 할머니께서 객석에 앉아계신다면 그런 장면을 보고 싶어 하지 않으실 것 같았거든요. 제가 하는 연출이 실제 사건과 연관된 누군가의 예민한 기억을 자극할 수 있음을 인지하고, 상처받는 분이 없도록 세심하게 연출하고자 했어요.

이전에 동학농민운동을 주제로 한 <빈쇠전>이나 ‘삼포 세대’를 주제로 한 소리극 <삼포가>를 통해 호평을 받으셨어요. ‘위안부’ 문제를 비롯해 역사적·사회적 문제를 소재로 작품을 많이 만드셨는데, 평소에도 이러한 분야에 관심이 많으신가요?
그보다는 제 마음을 움직인 소재들로 작품을 만드는 쪽에 더 가까워요. 동학농민운동은 전주 근처를 배경으로 한 역사적 사실이었고, ‘꽃 찾으러 왔단다’도 지인과 이야기하다가 나온 주제였어요. <삼포가> 또한 대학을 다니며 저보다 훨씬 더 부유한 환경에 있는 다른 친구들을 보고 제가 기득권이 아니라는 현실을 깨달은 데서 기획하게 됐죠.

모두가 공감하는 판소리를 만들고 싶었어요. 일반적인 전통 판소리의 주제들은 제 마음에 잘 와닿지 않았거든요. 저는 배를 곯을 정도로 가난한 세대가 아니니까 <흥부가>의 ‘가난 타령’ 같은 곡에 공감할 수 없었죠. <수궁가>, <적벽가>는 더욱 다른 세상의 이야기 같았어요. 지금 우리가 사는 이야기를 판소리를 활용해 전달하면 현대의 사람들도 재미있어 할 것 같아 작품을 만들게 됐어요.

전통 판소리는 <춘향전>이나 <심청전>에서 강조하는 ‘열녀’와 같이 현대의 시대상과 맞지 않는 가치관으로 인해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해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전통적인 시대상이 현대의 것과 맞지 않다 보니 전통 판소리의 등장인물에 공감하기 어렵죠. 그러나 인물의 해석은 지극히 개인적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 역시 지난해까지만 해도 <춘향전>을 부르면서 누가 춘향이처럼 순종적으로 사느냐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젠 <춘향전> 안에서 춘향이라는 개인의 특성을 살려 이야기로 재미있게 뽑아내는 게 소리꾼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춘향이라는 개인의 이야기에도 작품성이 있을 수 있으니까요. 

 

“나의 국악이 새로운 전통이 되기까지”
송 대표는 특정한 장르나 직업적 위상과 같이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길을 그대로 따라가지 않는다. 자신만의 영역을 찾고 싶다는 그는 예술을 대할 때도 일관된 태도로 임한다. 한편 사회에선 지방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예술인은 인정받기 힘들다는 인식이 보편적이다. 문화의 중심인 서울을 벗어난 곳에서, 비주류 음악에 속하는 판소리를 하는 송 대표의 예술은 어느 곳으로 향하고 있을까.

대표님께 전주는 특별한 곳처럼 보이는데, 이유가 있으신가요?
전주는 국악의 고장인 만큼 국악 시장이 잘 형성돼 있는 곳이에요. 이곳에서만큼은 국악이 주류, 실용음악이 비주류가 될 수 있죠. 서울이 음악 시장의 중심이긴 하지만 모두가 꼭 중심에서 활동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저는 이곳에서 국악으로 성공한다면 어디서든 당당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지금 있는 곳에도 빛날 기회가 충분히 많은데, 다른 곳에 가서 지금까지 빛난 경험들을 잊고 다시 처음부터 전력으로 시작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해외에선 반응이 어떤가요?
저와 두 명의 해외 아티스트로 구성된 다국적 그룹 ‘앙상블 셀레네’가 재작년 일본에서 공연을 했어요. 공연 당시는 한일 관계가 가장 안 좋았던 시기였는데, 공연의 총감독께서 현지에선 앨범이 잘 팔리지 않으니 앨범을 조금만 가져오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런데 공연 후 각 아티스트들이 앨범을 판매할 때 세 명 중에서 제 앨범만 매진됐어요. 더 사고 싶은 분들이 계셔서 모자랄 정도였죠. 숱한 해외 공연 중 가장 뭉클했던 순간이에요.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많이 공연해요. 사람들은 이국에서 온 예술가가 전통적인 정체성과 철학을 지닌 음악을 보여주길 원해요. 제가 실용 음악을 했다면 해외에 갈 기회가 더 적었을 거예요. 명성 있는 실용 음악가들은 이미 해외에도 많으니까요. 저는 한국에 뿌리를 내린 음악을 하기 때문에 귀중한 경험을 많이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판소리라는 음악의 독자성 덕분에 해외에서 차별점을 가질 수 있었던 거죠.

최근 전주에서 열린 청년독립예술주간 전시 ‘선’에 참가하셨어요. 무대를 만들거나 공연을 하는 것 외에도 다양한 활동에 도전하시나요?
저와 다른 장르의 예술가들을 만나면 색다른 예술적 영감을 얻게 돼요. 마치 국악이라는 우물 안에 살고 있다가 또 다른 우물을 만나는 기분이에요. 동일한 주제를 다룬 다른 사람의 작품을 보고 새로운 접근 방식을 발견하기도 하고, 저와 뜻이 맞지 않는다면 저만의 색깔을 더 강하게 주장할 수도 있죠. 이런 과정을 통해 예술은 더 다양해지고 세분화될 수 있어요. 하나의 뚜렷한 색깔이 두드러진 것보다 다양한 층위와 계층이 나타나는 중구난방의 상태야말로 건강한 예술 생태계라고 할 수 있죠.

지금의 국악이 전통 유산이란 가치를 넘어 대중화를 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대중화란 어떤 대상이 사람들의 관심이나 집중을 받아서 생명력을 갖는 일이에요. 생명력이 없는 음악은 전통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우리에겐 전통의 사명감을 지키는 분들도 필요하죠. 그러나 젊은 사람들이라면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다양함을 시도해 볼 수도 있어야 해요. 예술의 형태가 바뀐다고 해서 그 기원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작금의 전통을 넘어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야 해요. 기존의 국악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시장을 넓혀간다면 국악인들이 설 수 있는 무대가 늘어나 건강한 예술 생태계가 만들어질 거예요.


송봉금 대표는 여전히 자신만의 ‘판’을 찾는 중이다. 예술가란 자신만의 무대를 꾸밀 줄 알아야 한다고 믿는 송 대표는 누군가의 부름이 있어야만 행동하는 사람이 아니다. 자신을 허투루 둘 수 없다는 그는 스스로 무대를 만들어 꿈을 좇는다.

“인생에는 공부할 때, 결혼할 때, 돈 벌 때가 있다고 해요. 그렇다면 저만의 ‘때’는 제가 만들고 싶어요.”

자신의 때에 맞춰 차근차근 삶을 살아가는 그는 오늘도 굳은 믿음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노래하고 무대에 올린다. 앞으로도 송 대표의 ‘판’ 위에선 각양각색의 소리가 멈추지 않고 울려 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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