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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정’ 미운정 다 바친 목소리인생 53년
김예람 기자  |  smpkyr72@s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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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7.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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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루에도 몇 번 씩 엄앵란이었다가, 패티김이었다가, 윤정희였지.” 한 사람이 여러 명의 톱스타였다? 도통 불가능해 보이는 이 일을 목소리로 이뤄내는 사람이 있다. 지금과는 달리 옛날 무성영화 시절에는 성우가 배우의 연기에 맞춰 목소리 녹음을 했었다. 스타들의 목소리를 자유자재로 연기하는 이가 있으니, KBS 성우 공채1기 고은정 동문이다. 53년의 활동기간 동안 그가 맡은 배역만 1000여 명. 성우 고은정 동문의 목소리 인생을 들어보자.

두 학교와 방송국을 오가며 보낸 대학시절
“사실 나는 졸업장 없는 동문이야.” 고 동문이 우리 학교에 다녔던 당시에는 등록증(재학증명서)을 책상위에 올려놓고 시험을 봤다고 한다. “입학원서를 사기 위해 병원에서 피를 빼던 시절이었어.” 당시 생활 여건이 열악했던 고 동문은 3학년 때 등록을 하지 못한 채로 학교에 다니다가 시험장에서 자존심이 상해 나와 버린 것이 마지막이었다. “인연은 짧지만, 나는 한 번도 숙명여대를 나와 관계없는 곳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어.”


학창시절 고 동문은 연극회에서 연기 활동을 하며 방송국경연대회에서 대상을 받기도 하는 등 알찬 시절을 보냈다. 또 우리 학교뿐만 아니라 지금은 중앙대로 통합된 서라벌예술대학에서 연극영화를 공부하기도 했다. 일학년이 끝나갈 즈음 연극회 선배의 권유로 아르바이트 삼아 성우에 도전한 것이 지금까지 그를 이 길로 걷게 했다. “낮에는 두 학교와 방송국을 오가고 밤에는 영화녹음을 하느라 잠을 제대로 못자서 눈이 늘 토끼눈 처럼 빨갰지.”


이불 속에서 만들어진 ‘천의 목소리’
연습도 없이 아르바이트 삼아 도전한 성우 시험에 덜컥 합격해 버린 그는 타고난 목소리를 가진 것일까. 그러나 고 동문에 의하면 ‘천의 목소리’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었다. “녹음을 할 때 ‘고은정’이라는 사람은 아무데도 없는 거야. 어떻게 하면 저 화면에, 저 모습에 꼭 맞는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이것만을 생각하지.” 고 동문은 밤마다 이불 밑에서 모든 역할을 연습하면서 귀가 뚫리는 것을 경험 했다고 한다. “그때의 노력으로 내 목소리를 정확히 알게 된 것이 나를 지금까지 버티게 한 힘인지도 몰라.” 그가 당대 최고 스타들의 목소리를 도맡을 수 있던 비결은 이 같은 노력에 있었다. “‘별들의 고향’의 윤정희는 맑고 청아한 목소리로, ‘속 이별’의 패티김은 낮은 톤으로 연기하느라 녹음을 끝내고 나면 목이 붓기도 했어.”

최고의 성우가 되기까지 크고 작은 실수도 많았다. 그의 첫 방송은 1955년 3.1절 특집방송의 시 낭송이었다. “삼천만이 내 목소리를 듣는다는 생각에 너무 흥분해서 정신없이 큰 소리로 낭독했지, 옛날 마이크에는 납이 두 장 들어있는데 목소리가 너무 커서 납이 붙어버렸지 뭐야.” 첫 방송에서 대형 방송사고를 내고 국장님에게 크게 혼난 기억이 난다며 웃는다.


쉬지않고 나아가는 방송계의 금자탑
우리에게는 성우로 알려진 고 동문은 사실 작가이기도 하다. 77년 드라마 ‘대니할머니’ 방송극본이 올케의 이름으로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작가활동을 시작했다. 작품을 실명으로 출품하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 “고은정이라는 이름을 걸면 심사과정에서 선입견이 작용할 것을 우려했지.” 최종 심사가 끝나고 평소 친분이 있던 심사위원 부장은 그에게 “최고의 성우면 됐지, 이제는 작가까지 탐내는 욕심쟁이”라며 그를 일컬어 ‘방송계의 금자탑’이라 했다. 이 같은 칭찬에도 고 동문은 이렇게 말한다. “금자탑은 서있지만 나는 사람이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야하는 것 아니겠어?” 이처럼 그의 53년 방송생활은 늘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움을 찾아 도전하는 삶이었다.

암세포도 굴복해버린 무서운 열정
일생을 숨 가쁘게 달려오기만 한 그에게 지난 2000년은 악몽같은 시간이었다. 급작스러운 유방암 판정은 그를 병원에 묶어두었지만, 암세포도 그녀의 열정을 제지할 수는 없었다. 이틀 뒤에 수술 날짜를 받아놓은 그에게 불현듯 스치는 일이 생각났다. 크리스마스특집 방송의 원고 마감을 아직 못한 것이었다. “담당 PD를 난처하게 하고 싶지 않아 병원 식탁에서 이틀 밤을 꼴딱 새며 원고 120매를 썼어.” 수술 시간까지 미뤄가며 극적으로 끝맺은 원고는 무사히 PD에게 전해졌다. 책임을 다 한 그는 그대로 기절했고 눈을 떠 보니 수술은 끝나 있었다고 한다. “수술 후 1년여의 투병 생활 동안 계단 하나 올라가는 것조차 너무 힘들었지만 방송위원회 회의에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지.” 너무나 힘들어서 차라리 죽고 싶었다던 고 동문.

수술대에 눕기 직전까지도, 죽고 싶을 만큼 괴로운 투병 생활을 견뎌내면서도, 미련하다 싶을 만큼 맡은 일에 책임을 다 하도록 한 그의 열정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고 동문은 “스스로 앞가림을 완벽하게 해내겠다는 생각에 밤, 낮으로 시간을 꽉꽉 채우다보니 그것이 속도가 붙어 여기까지 왔어.”라고 답한다. 20대 때의 패턴이 칠팔십까지 가기 때문에 지금의 청년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한다. “‘이번 일만 잘 되면 성실해지겠다, 이것만 잘 되면 열심히 하겠다’와 같은 생각을 한다면 이미 늦어. 중요한 것은 지금, 현재에 얼마나 최선을 다하고 있느냐지.”


고 동문은 우리 학교에서 명예졸업장 제의를 받은 적도 있었지만 이를 거절했다. “나중에 정말 공부를 다 마치고 졸업장을 받겠다고 한 것이 너무 바빠서 미루고 미루다 보니 여기까지 왔네.” 칠순이 넘은 나이에도 식지 않는 열정으로 꾸준히 방송과 작가활동을 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고 동문. “그동안 이경숙 총장을 지켜보며 ‘한 사람의 힘이 일파만파로 전체의 분위기를 바꿔놓을 수 있구나’ 생각했지. 지금의 상승된 캠퍼스가 지속되려면 한 사람 한 사람이 달라져야해. ‘나 아니면 숙대 쓰러져!’ 하는 각오로 명예롭게 졸업하길 바라는 마음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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