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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창원'에서 '공원'까지, 효창공원의 수난시대
정소영 기자  |  smpjsy71@s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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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7.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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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인이라면 명신신관에서 수업을 듣다가 문득 창문을 바라봤을 때, 창밖의 푸른 나무들과 눈을 마주치고 마음의 안도를 느꼈던 경험이 한 번 쯤은 있을 것이다. 평화롭게만 보이는 효창공원, 그러나 그 곳은 긴 역사의 상처와 분쟁을 안고 있다.

 

민족역사의 상징, 효창공원

효창공원은 본래 ‘효창원’으로 조선시대 정조의 첫째아들 문효세자의 묘원이었다. 문효세자의 생모인 의빈 성씨, 순조의 후궁인 숙의 박씨, 그의 딸인 영온옹주의 묘 역시 함께 자리했었고, 해방 전후에 묘들은 서오릉으로 이장됐다. 광복 후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역인 백범 김구와 임시정부 요인 이동녕, 차이석, 조성환. 삼의사였던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의 유해가 이곳에 안장됐다. 또, 안중근 의사의 허묘(墟墓, 시신이 없는 묘)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묘 석축에는 백범 김구가 쓴 ‘遺芳百世(유방백세)’가 새겨져있다. 독립의사들이 끼친 뜻이 영원하다는 말이다.

이처럼 효창공원은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이지만 정작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날마다 효창공원을 찾는다는 주부 김영화씨는 “가볍게 운동을 하기 좋아 저녁마다 이곳에 오죠.”라고 했다. 이곳에 독립투사들의 묘가 있다는 것을 아는지 묻자 “묘가 몇 개 있는 걸 보긴 봤는데, 김구 선생님이랑…또 누구누구 있는지는 구체적으로 모르겠네.”라고 말했다. 효창공원에서 만난 10여명의 주민들은 모두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용산구청 공원녹지과 조광호 팀장은 “효창공원 팜플렛을 만들고 프로그램을 준비하기도 하지만 정작 주민들이나 학생들이 관심조차 없는 경우가 많다. 가끔 학교에서 현장학습을 올 때나 독립투사들의 존재를 알고 가는 것이 현실”이라고 답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가보훈처는 20 05년 3월 ‘효창공원을 역사적 의미가 복원되도록 추진하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효창공원을 민족공원으로 조성해 성역화하기로 결정했다. 성역화는 2009년까지 746억 원을 투자해 효창공원을 민족정기가 서린 대표적 독립공원으로 새롭게 조성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효창공원 성역화’를 둘러싼 갈등은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시설물 철거 놓고 갈등 지속

효창공원은 1894년 청일전쟁에 대비한 일본군 3천여 명이 야영하며 숲을 파헤친 것을 시작으로 민족사의 희생양이 돼왔다. 일제시대 ‘효창원’이 ‘효창공원’으로 변한데 이어 이승만 대통령이 집권하며 효창공원 탄압은 시작됐다. 경찰은 묘소참배를 가는 시민들의 길목을 막았고, 이에 따라 통금이 풀리는 새벽에 즉시 참배하고 줄행랑치는 ‘도둑참배’가 벌어지기도 했다. 1956년에는 불도저로 묘역의 연못과 나무를 없애기에 이르렀다. 이에 독립운동가 심산 김창숙은 ‘효창공원을 통곡함’이라는 시를 통해 비통한 심정을 표현하기도 했다. 1960년에는 효창운동장이 준공되며 효창공원보다 효창운동장을 더 익숙히 여기게 됐고, 독립투사들이 안장돼 있다는 사실은 점점 잊혀져 갔다.

이승만에 이어 박정희 정권 역시 선열묘소에 골프장을 건설하려다 저지당하고 효창원묘역 정수리에 해당하는 북쪽 35m 거리에 북한반공투사위령탑(이하 반공위령탑)을 세웠다. 뿐만 아니라 1969년 임시정부 요인 묘 근처에 어린이 놀이터와 원효대사 동상을 짓고, 1972년 김구 주석 묘 근처에 노인회서울시연합회와 대한노인회중앙회를 건설했다. 또 삼의사묘 근처에는 30여 가지의 운동시설을 설치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부가 발표한 ‘효창공원 성역화’ 계획에는 문제가 된 시설물 철거가 명시돼 있지 않다. ‘효창공원은 김구 선생을 비롯한 삼의사와 임정요인 등 7인 애국선열 묘역이 안장돼 있으나 효창운동장 등 이질적 시설물들과 혼재돼 독립공원 성역화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됐다.’를 성역화의 원인으로 제시한 것과는 맞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철거를 결정한 8,000평 규모의 효창운동장은 단지 관중석을 허물고 ‘백범광장’으로 조성해 새 단장을 한다고 보는 편이 더 타당하다는 의견도 있다.

 반공위령탑에 대한 논란도 일고 있다. 임시정부 국무위원 차이석 선생의 아들이자 효창원을 사랑하는 모임(이하 효사모)의 회원인 차영조씨는 “효창원 묘역은 대한민국을 지켜 낸 일곱 분의 영혼이 잠든 곳인데, 박정희 정권이 효창공원의 머리 위에 반공탑을 세운 것은 임시정부를 발아래 두겠다는 의도”라고 말했다. 효사모와 백범기념사업회 등 보훈단체들은 효창원의 묘역을 업신여기고 탄압했던 건축ㆍ시설물을 모두 철거하여 당초의 공간으로 되돌리는 것이 최고의 성역화라고 주장한다. 대한노인회 2개 건물과 원효대사 동상, 반공위령탑, 효창운동장을 포함한 시설물을 모두 철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차영조씨는 이어 “성역화를 지금의 정부 사업계획서 대로 시행한다면 현재 상태보다 나아질 것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성역화 작업의 시기가 늦어 관련 이해단체들과의 마찰이 끊이지 않고 있다. 서울시와 대한축구협회는 서울 시내 효창운동장의 대체 부지를 찾는 일이 쉽지 않아 난항을 겪고 있다. 유소년 축구 대회 등 국내 축구 행사를 소화해 낼 수 있는 서울 시내 구장이 효창운동장외에는 마땅히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효창운동장의 리모델링을 고려했지만, ‘완전철거’를 주장하고 있는 보훈 단체들의 목소리에 부딪혀 리모델링 역시 힘들다. 대한불교원효종의 김세웅 사무차장 역시 “원효대사 동상을 옮길 수 있는 장소를 만들어주지도 않고 임의로 철거해버리면 틀림없이 종교적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며 “함부로 동상을 철거하겠다는 발상자체가 잘못됐고 만약 임의로 철거하면 법정소송까지 불사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효창공원에서 만난 한 할머니는 “성역화도 좋지만 효창동 주민들의 좋은 휴식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도 된다.”고 표했다.

과거의 아픔으로 상처받은 효창공원이 무계획적인 정부의 방침과 현실적 어려움에 다시 한 번 눈물 흘리고 있다. ‘성역화’를 둘러싼 갈등 속에서 효창공원과 독립투사들의 수난시대는 오늘도 계속된다.

   
 
  밤이되면 불빛을 밝히는 효창공원의 벌꿀모형  
 
   
 
  백정기, 윤봉길, 이봉창 삼의사의 묘  
 
   
 
  논란이 되고 있는 북한반공투사위령탑  
 
   
 
  백범기념관에 위치한 백범김구의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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