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정을 거닐다 보면 종종 만나게 되는 익숙한 고양이들이 있다. 어떤 날엔 호수 근처에서, 또 어떤 날엔 후문 앞에서 보이는 고양이들은 마치 학생처럼 교정을 오간다. 최근 대학사회엔 대학교 안에서 서식하는 고양이(이하 대학냥이)를 적극적으로 보호하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대학냥이에게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도움을 제공하기 위해 교내 길고양이 돌봄 동아리(이하 대학냥이 동아리)도 개설된다. 대학냥이는 이제 대학의 어엿한 일원으로서 대학생들에게 친숙한 존재로 다가오고 있다.


“나는 대학냥이로소이다”
대학에서 거주하는 고양이가 생겨난 배경엔 길고양이의 개체 수 증가가 있다. 현재 각 지자체는 강한 번식력을 가진 길고양이의 개체 수를 조절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월 10일(월) 이로운넷이 보도한 서울시 TNR(포획-중성화 수술-방사, Trap-Neuter-Return) 현황에 따르면 서울시가 실시한 길고양이 중성화 수술 비율은 약 20%다. 이는 서울시가 길고양이 개체 수 감소를 위해 필요하다고 제시한 중성화 수술 비율인 70%와 세 배 이상 차이 나는 수치다.

유기묘 수의 증가 또한 대학에서 길고양이가 서식하게 된 원인이다. 지난해 구조된 유기 동물은 전년 대비 12% 증가한 13만5791마리로 그중에서 고양이의 비중이 23.5%(3만1910마리)를 차지했다. 길고양이 중성화 수술이 원활하게 시행되지 않고 있는 데다 버려지는 고양이까지 늘어나면서 대학에서도 길고양이가 자주 보이게 된 것이다.

대학냥이를 보호하려는 문화는 대학 내 길고양이 복지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발전했다. 본교 대학냥이 동아리 ‘숙묘지교’ 회장 강은서(생명시스템 19) 학우는 “길고양이 개체 수 증가율에 비해 길고양이를 위한 도움의 손길은 턱없이 부족하다”며 “교내 길고양이만이라도 보호하자는 취지에서 일부 대학생이 모여 대학냥이 동아리를 설립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대학냥이의 생존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분위기는 대학가를 중심으로 길고양이에 관한 부정적 인식이 사라지면서 형성됐다. 예전엔 길고양이가 도둑고양이라 불렸을 만큼 길고양이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좋지 않았다. 최근엔 SNS(소셜 네트워킹 서비스, Social Networking Service)를 통해 대학냥이의 소식이 활발하게 공유되기 시작하면서 대학냥이에 애정을 느끼는 대학생이 많아졌다. 김잔디(성악 19졸) 동문은 “현세대의 대학생들은 SNS의 영향력을 많이 받아 길고양이와의 공존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학냥이 동아리 지침서
대학냥이 동아리는 고양이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진행한다. 급식소 운영과 TNR 지원이 대학냥이 동아리의 주요 업무다. 고양이가 영역 싸움이나 교통사고 등으로 부상을 당할 경우 치료를 돕는 것도 대학냥이 동아리의 몫이다. 또한 고양이가 전염병에 걸리는 것을 막기 위해 백신을 투여하고 위생을 관리한다. 익명을 요구한 타 대학 대학냥이 동아리 관계자는 “여름에 길고양이들이 자주 걸리는 심장 사상충을 예방하기 위해 고양이에게 정기적으로 약을 발라준다”며 “사람의 손길에 거부감이 없는 고양이들은 귀 청소와 양치를 해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대학냥이 동아리 부원들은 계절에 따라 고양이를 보호하기 위해 여러 활동을 펼친다. 급격한 기온 변화는 고양이의 생존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일부 대학냥이 동아리들은 여름철엔 얼음을 띄운 물을 고양이에게 배급하고, 겨울철엔 식수가 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핫팩 부착이 가능한 물그릇을 배치하고 있다. 겨울에 고양이가 지낼 따뜻한 거처를 직접 제작하기도 한다. 익명을 요구한 타 대학 대학냥이 동아리 관계자는 “집 내부에 이중 보온이 되는 *숨숨집을 넣어 고양이들이 체온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한다”며 “**단프라(Danpla)에 스티로폼을 채워 제작한 쉼터를 학내 곳곳에 설치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숙묘지교가 교내에서 핫팩을 판매하고 있다. 수익금으로 다시 핫팩을 구매해 고양이 물 그릇에 부착한다.

대학냥이의 분양과 임시 보호를 함께 주관하는 동아리도 있다. 임시 보호나 분양은 더는 길거리 생활을 하기 어려울 만큼 다친 고양이를 대상으로 진행된다. 대학냥이 동아리는 주로 SNS를 활용해 고양이를 데려갈 주인을 모집한다. 김 동문은 고려대 대학냥이 동아리 ‘고고쉼’을 통해 고양이를 입양한 경험이 있다. 고양이 입양 계기에 관해 김 동문은 “고고쉼 부원인 친구를 통해 대학냥이의 사진이나 일화를 자주 접하곤 했다”며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고양이의 모습을 보니 자연스럽게 마음이 쓰여 데려오게 됐다”고 얘기했다.

▲숙묘지교에서 본교 대학냥이의 모습을 본 떠 제작한 금속 배지다.

대학냥이 동아리가 고양이 보호 및 홍보 활동을 펼치며 대학냥이의 상징성이 커지고 있다. 대학냥이 동아리 임원들은 고양이를 향한 관심이 높아진 사실을 체감한다. 강 학우는 “SNS를 통해 대학냥이를 알게 됐다는 학우들의 경험담을 종종 전해 듣는다”며 “대학냥이가 유명해질 뿐만 아니라 대학을 대표하게 된 건 대학냥이를 알리는 집단이 존재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대학가에선 보호 활동뿐만 아니라 대학냥이 관련 콘텐츠를 창작해 고양이를 홍보하기도 한다. 순천향대 대학냥이 동아리 ‘순애묘’ 홍보부장 오예슬 씨는 “교내 온라인 홍보대사와 협업해 고양이의 일상을 담은 유튜브 영상을 촬영했다”고 말했다. 대학냥이의 이름과 생김새를 소재로 한 굿즈(Goods)를 제작하는 대학냥이 동아리도 있다. 김 동문은 “SNS 계정을 통해 본교를 비롯한 다양한 대학의 고양이 굿즈를 자주 구매한다”며 “디자인에서부터 고양이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대학냥이와의 안전거리를 헤아리다
이름 및 특징과 거처 장소가 알려진 대학냥이는 동물 학대 범죄 대상이 되기 쉽다. 지난해 4월엔 국민대에서 서식했던 고양이가 살해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고양이의 부검을 진행한 농림축산검역본부는 국민대 고양이가 사망한 원인이 폭행으로 인한 골절과 출혈이라고 밝혔다. 강 학우는 “대학냥이는 활동 영역이 공개된 만큼 일반 길고양이보다 사람들과의 교류가 더 잦아 범죄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학가에선 사람과 대학냥이의 교류에 관한 두 가지 입장이 상반되고 있다. 고양이의 구체적인 활동 구역이나 급식소 위치를 공개하는 대학이 있는 반면, 동아리 차원에서 고양이와 사람의 직접적인 교류를 최대한 금하는 대학도 있다. 방향은 다르지만 양측 처사 모두 고양이의 안전을 고려한 결과다.

대학냥이의 활동 영역을 공개할 경우 동물 학대 범죄 발생 시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익명을 요구한 타 대학 동물냥이 동아리 관계자는 “고양이가 활동하는 영역을 공개하고 사람들의 왕래를 증폭 시켜 범죄가 가능한 시간을 줄이고자 했다”며 “범죄가 발생한 후 학우들이 바로 신고해 신속한 조치를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편으론 숙묘지교나 순애묘와 같이 고양이 대상 범죄 발생을 우려해 고양이의 서식 공간을 동아리 외부에 알리지 않는 곳도 있다. 숙묘지교의 부원 또한 고양이를 만지지 않아야 한다는 회칙을 엄격하게 지킨다. 강 학우는 “고양이와 가깝게 지내고 싶은 사람의 마음이 고양이의 생명 보다 우선시돼선 안 된다”고 말했다. 순애묘의 부원들은 대학냥이를 대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을 목격한 적도 있다. 순천향대 학내 커뮤니티엔 고양이에게 치명적인 진통제를 배식통에 숨겨놓겠다는 협박성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오예슬 씨는 “사람들이 대학냥이를 위협하는 사건이 이어지다 보니 고양이의 활동 영역 노출이나 검증되지 않은 사료 지급을 금지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숙묘지교와 순애묘가 대학냥이의 거주 공간을 숨기는 이유는 각 대학의 지리적 특성 때문이기도 하다. 본교는 용산구 번화가 중심에 위치해 고양이와 외부인의 접근이 쉽고, 순천향대는 학교 건물이 큰 도로로 둘러싸인 구조여서 고양이가 교통사고를 당할 가능성이 높다. 이 같은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숙묘지교와 순애묘는 고양이와 사람과의 교류를 최대한 자제하고 있다.

대학냥이의 활동 구역을 공개할 수밖에 없는 대학도 있다. 고양이가 대학에 상주한 후 뒤늦게 보호 동아리가 결성된 대학이 이에 해당한다. 이미 학내에 고양이의 거주 공간이 널리 알려져 있는 것이다.

대학냥이 대상 범죄 예방을 위해선 정부, 학교, 학우의 협조가 필요하다. 강 학우는 “근본적인 해결책은 동물보호법을 강화하고 관련 법을 제정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대학 차원에서 대학냥이 동아리를 적극적으로 지원해 달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 동문은 “대학냥이 동아리 대부분이 학내에서 중앙 동아리에 속하지 않아 예산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본교에서 모형 CCTV라도 설치해 고양이를 해치려는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줬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고양이를 대하는 학우들의 태도도 중요하다. 강 학우는 “학우들이 고양이와 불필요한 접촉을 자제해야 고양이가 야생성을 유지해 스스로 보호할 수 있다”고 당부했다.


동물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다른 길고양이들과 달리, 대학생들의 보호 아래 생활하는 대학냥이는 비교적 운이 좋다고 생각될 수 있다. 그러나 대학냥이는 사람의 도움을 받는 대신 사람의 혐오도 정면으로 마주한다. 대학냥이를 비롯한 모든 길고양이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사람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먼저 대학냥이와 대학냥이를 위해 애쓰는 사람들을 따뜻한 마음으로 지지해주는 건 어떨까. 그것만으로도 대학냥이의 안녕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도넛 모양의 고양이 집으로, 어둡고 밀폐된 공간을 좋아하는 고양이의 특성을 고려해 고안됨
**작업을 위한 부표(Dan)와 플라스틱(Plastic)의 합성어로, 내약품성·탄력성·단열·차음이 우수한 플라스틱판을 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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