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지난 10월 6일(화) 법무부가 모자보건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해당 개정안에 따르면 기존의 낙태죄는 그대로 유지하되, 임신 초기인 14주 이내에 의사에 의해 의학적으로 인정된 방법으로 이뤄진 임신중절은 처벌 대상에 속하지 않는다. 임신 중기인 15주부터 24주 이내에는 특정한 사유가 있을 때만 임신중절이 허용된다. 이때 특정한 사유란 부모의 유전학적 질환이나 강간 및 근친으로 인한 임신, 임부 건강 등을 말한다.

이번 개정안에선 임신중절 수술 방법이 구체화됐고, 기존의 배우자 동의 요건도 삭제됐다.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24주 이후의 임신중절이 불법 행위에 속한다는 점이다. 또한 14주 이내에 임신중절을 하더라도 의사에 의해 의학적으로 인정된 임신중절이 아닐 경우 처벌 대상이 된다. 결국, 여전히 합법적으로 임신중절을 하기 위해서는 원치 않는 임신으로 인해 불안해진 상황에서도 모자보건법이 요구하는 여러 조건을 충족해야만 한다. 모자보건법 개정은 사실상 기존의 낙태죄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조건부 인권이 없듯이 여성의 자기 결정권에도 조건이 붙어서는 안 된다. 원치 않는 임신과 출산은 여성의 삶 전반에 지대한 피해를 미친다. 일각에선 낙태죄가 전면 폐지된다면 임신중절이 남용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그러나 임신중절 수술을 간단하게 결정하는 여성은 없다. 임신중절 수술은 산모에게 치명적인 후유증과 부작용을 동반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산모와 태아의 인생에 대해서는 다른 누구보다도 산모 자신이 가장 많이 고민할 것이다. 출산이 산모와 태아를 불행하게 만들 상황에서도 법을 준수하기 위해 아기를 낳았고, 그 결과 산모와 태아 모두가 불행해졌다면 국가는 그들의 삶을 전적으로 책임질 수 있는가. 낙태죄로 처벌받지 않기 위해서 불가피하게 원치 않는 출산을 택해야만 했던 그들의 절망을 대신 감당해 줄 수 있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임신과 출산에 있어서 모든 결정권은 오롯이 산모에게 주어져야 한다.

법의 사각지대에서 은밀하게 이뤄지는 불법 임신중절 수술은 산모의 건강권을 보장해 주지 못한다. 세계보건기구와 앰네스티는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도 각국이 유지해야 할 필수 보건의료 서비스에 임신중절을 포함한 바 있다. 안전한 임신중절은 국민의 건강권 보장을 위해 필수적인 조건 중 하나이며 반드시 합법적으로 보장될 필요가 있다. 더는 대한민국에서 불법 수술이나 약물, 또는 원치 않는 출산으로 인해 피해받는 여성이 늘어나지 않도록 낙태죄는 전면 폐지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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