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_도연재(정화여자고등학교)

화단 옆에 구멍이 있다. 볼펜으로 콕 찍은 듯한 구멍 속에서 손가락 반마디만한 개미 한마리가 기어나온다. 곧이어 다른 개미가 그 뒤를 따른다. 또 그 뒤에 그들과 똑 닮은 새까만 개미가 따라 붙는다. 개미는 끊임없이 구멍에서 나온다. 개미들의 행렬이 담을 오른다. 일렬로 S자를 그리며 벽돌로 된 담을 다 오른 개미들은 이제 아파트를 오른다. 새하얀 아파트의 벽면에 얇은 줄 하나가 생긴다. 가장 꼭대기 층에 도달한 개미들은 우리 집 베란다로 들어온다. 엄마가 누워있는 거실을 지나 자신들의 구멍과 닮은 내 방으로 들어온다. 굳게 닫힌 문 옆에 난 홈으로 들어온 개미들은 내 침대를 오른다. 누워있는 나의 발꿈치를 지나 엄지발가락에서 발목까지 시원하게 미끄럼틀을 탄다. 실오라기 같이 얇은 다리로 내 종아리를 밟고 지나간다. 계속해서 걷는 개미들은 내 목의 힘줄을 타고 턱에 안착한다. 그들은 도톰한 입술을 지나 끝내 나의 입술 사이로…

아! 외마디 소리와 함께 나는 눈을 떴다. 여전히 어두운 방 속에서 눈만 껌벅였다. 식은 땀이 흘러 축축했다. 나는 굳은 몸을 움직이며 천천히 일어났다. 등허리가 서늘하다. 개미가 지나갔던 자리들을 손으로 더듬는다. 아직까지도 개미가 내 살을 밟고 있는 것 같아 소름이 돋는다. 나는 가까스로 일어나 벽을 짚는다. 달칵. 명랑한 소리와 함께 방이 밝아졌다. 나는 숨을 참았다. 위잉거리는 환풍기 소리가 울려퍼졌다.

숨을 뱉었다. 침대에 걸터 앉았다. 혀로 입 안을 쓸었다. 혹시나 싶은 마음이 계속 들었다. 없는 개미를 찾아내기라도 할건지. 소용없는 일인 것을 깨닫고 핥아내기를 그만뒀다. 발로 컴퓨터 전원 버튼을 누르고 의자에 앉았다. 오늘따라 느린 부팅 속도에 괜히 키보드를 타닥였다. 그때, 서늘한 바람이 내 목덜미를 훑었다. 오싹했다. 나는 고개를 내려 손을 봤다. 커다란 개미 한 마리가 길을 잃었는지 중지 위에서 우왕좌와하고 있었다.

“엄마!”

나는 개미가 기어다니는 내 손을 높이 들고 방문 손잡이를 잡았다. 손잡이를 돌리려던 순간 더 이상 집 안에 엄마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팅하는 허무한 소리와 함께 나는 간질거리는 오른손을 뻣뻣하게 들고 다시 의자에 앉았다. 개미는 어느새 내 손등 위를 유유자적 거닐고 있었다. 나는 어지러운 책상 위에 놓인 텅 빈 연필꽂이를 들었다. 내 손 옆에 연필꽂이를 두니 개미는 어둠을 찾아 연필꽂이 안으로 쏙 들어갔다. 그대로 책상 위에 연필꽂이는 엎어두었다, 살아있는 개미가 그 안에 있다. 그래도 어두우니까 자기 집같지 않을까.

초등학생 때, 선생님은 모래가 가득 든 상자를 가져왔다. 모래 속에는 개미들이 열심히 집을 짓고 있었다. 조그마한 구멍 안에 있는 거대한 공동체. 징그럽게 파낸 통로와 그 안에서 꿈틀거리는 애벌레. 뒤집어진 나무같이 가지 친 그들의 땅 속 전원주택. 무섭다며 울고 소리지르는 아이들 틈에서 나는 개미가 만든 구멍 속 안락한 집에 마음 속으로 작은 함성을 질렀다.

그 날, 집에 돌아오는 길에 화단 옆에 뚫린 작은 구멍을 발견했다. 나는 신기한 마음에 길 위에 무릎을 꿇고 열심히 기어나오는 개미를 보았다. 저 멀리서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났다. 우리 반 남자애들이었다. 아이들은 구멍을 보더니 그 안에 먹다 남은 음료수를 갖다 부었다. 갖은 웃음소리를 내며 발로 구멍을 짓밟았다. 기어다니는 개미를 시체로 만들었다. 땅 속 전원주택이 순식간에 함몰됐다. 나는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집으로 갔다. 짓이겨진 개미 사체가 아른거렸다. 구멍 속에서 나오지 못하고 팔딱이는 애벌레들이 보이는 것 같았다. 엄마는 집에 도착한 나에게 어디가 안 좋냐고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컴퓨터는 켜지지 않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잘 됐는데. 껐다 켜도 로딩 창을 벗어날 수 없었다. 엄마는 아직 팔팔한 컴퓨터를 왜 버리냐고 했다. 엄마의 절약정신이 싫었지만 거스를 수 없었다. 저 구질한 절약정신이 나를 먹여 살렸다. 나를 혼자 키운 엄마는 뭐든지 아꼈다. 하다못해 속옷까지도. 내가 다 입은 속옷은 낡아 바스라질 때까지 엄마가 입었다. 더 이상 못 옵는 속옷이 되면 걸레로 썼다. 결국 엄마는 절약정신 때문에 세상을 떠났다. 할인 마트의 특가 시간을 맞추기 위해 무단횡단을 하다가 트럭과 부딪혔다. 엄마의 사고 소식을 들은 나는 장례식 이후로 이 방을 나설 수 없었다.

배달 음식을 먹으며 컴퓨터만 했다. 배달원들에게 비밀번호를 알려주고 다먹은 접시나 쓰레기는 방문 앞에 놓았다. ‘걍희지씨 어서오세요.’라고 외치는 컴퓨터만이 유일하게 우리 엄마를 알고 있었다. 끝없이 짓밟혀도 다시 일어났던 우리 엄마. 밤낮 가리지 않고 다리가 붓도록 택시 짐을 옮기면서도 나에게는 아낌없이 주었다. 나는 엄마가 만든 구멍 안에서 엄마가 주는 것들을 받아 먹었다.

컴퓨터는 결국 아픈 소리를 내며 꺼졌다. 엎어진 연필꽂이를 살짝 들어보았다. 있어야 할 개미가 없다. 나는 연필꽂이 안을 살펴보았다. 어두운 구멍 속에서 개미 한 마리가 연필꽂이 벽면을 타고 올라왔다. 굳어버린 내 손을 지나 문 옆에 난 작은 홈으로 나가버렸다. 나는 개미가 지나간 길을 바라보았다. 홈에서 옅은 빛이 새어 나왔다. 나는 문 손잡이를 잡았다. 땅 속에서 빛을 보고 구멍에서 나오는 개미들. 살기 위해 꿈틀거린 애벌레. 개미들은 살기 위해 구멍 속에서 살았던 것일까? 온 몸에 개미가 기어다니는 것만 같았다. 나는 문 손잡이를 돌렸다.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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