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4월 개봉한 <실비아Sylvia>란 한 편의 영화가 있다. 영화 속 그녀의 삶과 너무나 흡사했던 실비아의 시편들, 기네스 펠트로란 배우의 뛰어난 연기 등이 기억에 남는 매우 슬픈 영화다. 이 영화는 32세의 젊은 나이에 가스오븐에 머리를 박고 자살한 페미니스트 실비아 플라스(Sylvia Plath, 1932-1963)라는 시인의 삶의 여정을 감성적이면서도 설득력 있게 그리고 있다. 그녀의 열정적이고 고독했던 삶의 체험은 시공간을 초월해 우리들 보편적 정서에 충격과 혼란을 가중시키지도 하지만, 분명 어떠한 공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가슴 속에 꿈틀대는 무언가를 느끼기에 충분한 마음의 울림과 전율을 가져다준다.

 
서구 가부장적 사회 구조의 문화 전통 속에서 ‘무의미한 타자’로 억압받았던 여성의 정체성을 재조명하고 ‘여성적’ 가치를 근본적으로 재확립하려는 시도들이 이차대전 후부터 활발하게 진행돼 왔다. 실비아의 죽음은 이러한 페미니즘을 더욱 촉발해, 남성들의 오만과 편견 속에서 죽어가야만 했던 가여운 그녀를 당시 여성들을 대변하는 하나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실비아의 재기 발랄함과 육체적인 아름다움, 지적인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한 인간의 끊임없는 노력, 남편인 테드 휴즈(Ted Hughes, 1930-1998)와의 격정적인 로맨스, 사회적 출세를 위한 야망과 좌절 등 수많은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이제 페미니스트 비평, 여성중심비평, 성별 연구 등도 우리 인문학의 화두로 쉽게 접할 수 있는 용어가 됐다. 우리에게 이러한 용어들이 낯설지 않은 까닭은 실비아를 비롯한 바다 건너 수많은 여성들의 분투와 희생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들보다 더 처절했고 결연했던 우리네 여성들의 삶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페미니즘의 인식 말고도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삶의 진정성을 찾아가는 한 인간의 역정을 너무나도 진솔하게 표현했다는 점일 것이다. 때로는 기쁨과 사색으로, 때로는 가슴 충만한 흥분과 격정으로, 때로는 자기 파괴적일 정도의 충동과 마조히즘적 욕망으로 영화는 그것을 표현했다. 그러나 그건 분명 삶의 진정성에 대한 한 인간의 외로운 몸부림이요 절망적인 외침이었다.

 
요새 우리 사회는 ‘학력 위조’로 인한 사회적 몸살을 앓고 있다. 모 아무개가 신문과 뉴스의 이야깃거리를 제공하더니만, 이제는 누구누구라고 말하는 것조차 화제의 신선도가 떨어질 만큼 수많은 유명 인사들이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고 있다. 어쩌다가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 이것도 하나의 동양적인 신비주의란 말인가? 어떤 이들은 학벌을 지나치게 따지는 우리 사회에서 그 원인을 찾고 있다. 그러나 이건 결국 이들에게 면죄부를 주자는 얘기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반세기 전 삶의 진정성에 온몸을 맡기고 몸부림쳤던, 그리고 결국은 자신의 감정을 속일 수 없기에 죽음을 선택했던 불쌍한 실비아가 있었던 반면 오늘날 우리에겐 허상과 물욕에 눈이 어두워 거짓으로 온몸을 감싸고 야망만을 좇는 ‘우리’가 있는 것은 아닐까. 검찰이 수사를 맡아 대학ㆍ학원ㆍ기업ㆍ종교단체 등 웬만한 공동체에서도 다시 한번 경력 조회를 한단다. 두고 볼 일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는 학벌에 관계없이 묵묵히 자기 일을 하는 사람들도 다수 존재한다.


*영화 ‘실비아’는 우리대학 도서관 2층 DICA Plaza에서 DVD로 빌려 볼 수 있습니다. 등록번호: 868427, 청구기호: VE 791.43 J47sk v1입니다.

 

인문학부 중어중문학 전공 정우광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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