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4일(토) 광화문 광장에서 ‘제4차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 시위(이하 광화문 시위)’가 오후 4시부터 7시까지 진행됐다. 지난 5월 19일(토) 혜화역에서 시작된 1차 시위 이후, 석 달이 채 지나지 않아 본 시위는 4회 차를 맞이했다. 늘어난 참여 인원을 수용하기 위해 혜화역에서 열렸던 지난 시위들과는 달리 4차 시위는 광화문 광장에서 진행됐다. 광화문 광장에는 섭씨 36℃의 폭염에도 불구하고 주최 측 추산 약 7만여 명의 참가자와 250여 명의 스텝이 모였다. 시위 참가자 중에는 젊은 여성들뿐만 아니라 유모차에 어린아이를 태워 나온 어머니부터 60대 노인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들이 보였다. 이들은 화상, 탈수, 열사 등의 증상이 일어날 것을 감안하고도 뙤약볕에 앉아 여성의 인권에 대해 외쳤다. 무엇이 이들을 광화문 광장으로 나오게 했을까.

편파수사 논란, 커져가는 목소리
시위의 시발점은 지난 5월 발생한 이른바 ‘홍대 누드모델 불법촬영 사건(이하 홍대불법 촬영 사건)’에 대한 편파수사 논란이었다. 여성이 유포자였던 해당 사건은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오르고 각종 언론매체에 보도되며 큰 주목을 받았다. 홍대 불법촬영 사건의 가해자에게 구속영장이 발부되는 등 적극적인 수사가 이뤄지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가해자의 성별이 남성인 여러 불법촬영 범죄와는 달리 홍대 불법촬영 사건의 수사가 편파적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이러한 의견과 함께 “다음 카페(Daum cafe)” ‘불편한 용기’에 의해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가 진행됐다.
시위 주최 측인 ‘불편한 용기’는 시위의 목적에 대해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는 불법촬영 범죄를 근절하고, 피해자나 가해자의 성별에 따른 편파수사를 사회에서 뿌리 뽑기 위해 시위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이어 “시위를 통해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가 여성들의 요구를 들을 것을 촉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가톨릭대학교 윤지선 철학과 교수는 “해당 시위는 여성들의 일상을 포박하는 불법촬영 범죄에 대한 편향적이고 축소된 수사 및 처벌 의지를 지닌 경찰과 검찰에 대한 비판이다”며 “범죄에 해당하는 불법촬영물을 문화로 소비해 온 남성들에 대한 폭로와 비판을 전면화하려는 움직임이다”고 평가했다.
시위에 대한 여성들의 관심은 점차 증가하고 있다. 지난 5월부터 진행된 1, 2, 3차 시위에는 주최 측 추산 약 1만 5천 명, 4만 5천 명, 6만 명이 참가했고, 4차 광화문 시위에는 약 7만 명의 여성이 모여 목소리를 냈다. 윤 교수는 이에 대해 “해당 시위는 여성 관련 단일 의제로 열린 시위 중 세계적으로도 규모가 가장 큰 시위다”고 언급했다. 시위 주최 측은 “각 시위의 날짜 간격이 한 달이 되지 않는 짧은 기간에도 불구하고 수만 명의 여성이 거리에 나왔다”며 “이는 그동안 여성들이 사회에 분노해왔고, 그 분노를 표출할 곳이 없음을 보여주는 증거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청한 한 학우는 “이번 시위를 통해 분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며 “여성이 처한 상황이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닌 모두가 겪을 수 있는 심각한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어 “홀로 고통 받던 피해자에게 함께 공유하고 소리 낼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며 “이처럼 여성의 연대를 통해 사회에 문제를 제기하고 바꿔나가는 것이 시위의 본질적인 목적이라고 생각한다”고 이야기했다.

광화문을 붉게 물들이다.
시위의 현장은 활기찼다.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참가자들은 드레스코드(Dress-Code)에 따라 붉은 옷을 맞춰 입고 서로에게 인사를 건넸다. 모자와 마스크 등으로 얼굴을 가린 채 불법촬영 근절과 편파수사 금지를 주장하는 ‘My Life Is Not Your Porn (나의 일상은 너의 포르노가 아니다)’ ‘뷔페 수사 선택 수사 차별 수사’ 등 각양각색의 피켓을 들고 있었다. 이들은 관계자의 지휘에 따라 30~50명씩 줄을 지어 입장하며 광화문 북쪽부터 광화문 광장 입구까지 약 500m를 가득 메웠다.
해당 시위는 생물학적 여성에게만 참가 자격이 주어졌다. 따라서 현장에는 여성 취재진만 출입할 수 있었고 시위대 근처엔 여성 경찰들이 주둔하고 있었다. 남성 경찰과 남성 취재진은 모두 폴리스라인(Police-Line) 바깥에서만 활동할 수 있었다. 참가자를 비롯해 경찰과 취재진까지 여성으로 제한한 이유에 대해 주최 측은 “불법촬영 근절을 위해 모인 시위에서조차 불법 촬영을 하고자 하는 남성들이 존재한다”며 “이러한 상황 속에서 시위 참가자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함이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1차 시위 계획이 발표된 후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시위 참가자들에게 ‘염산 테러’를 하겠다는 글이 올라와 파문이 일기도 했다.
이러한 시위 조건에 대해 윤 교수는 “해당 시위는 여성의 신체와 삶을 억압하는 디지털(Digital) 성범죄, 나아가 남성 중심 사회에 반발하는 목적이다”며 “이에 항거하는 계층인 여성들만 시위에 참여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이어 “광화문 시위 참가대상이 여성으로 제한된 것에 대한 의문보다 왜 여성들이 분노의 목소리를 내는 사회가 됐는지를 생각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시위의 목적은 불법촬영과 불법촬영물의 유출, 유통 등 불법촬영 범죄 전반에 대한 적극적인 해결책 마련을 요구하는 것이다. 또한 수사의 총 책임자인 남성 경찰청장과 남성 검찰총장을 파면하고 여성 경찰청장과 여성 검찰총장을 선출할 것을 촉구한다. 나아가 여성과 남성의 성비가 1:9인 경찰의 성비를 9:1로 바꿀 것을 주장한다. 이를 부정적으로 보는 일부 시선에 대해 주최 측은 “그들은 여성 경찰과 남성 경찰의 성비가 1:9인 현재 경찰 성 비율에 대해서는 결코 불합리하다거나 비현실적이라고 말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이어 주최 측은 “현재 여성 경찰 채용 비율이 지난 2012년에 비해 더 낮아졌다”며 “사회가 퇴보했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지표에도 불구하고 비현실적이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왜곡이고 편파적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경찰의 성비를 여성과 남성 9:1로 개혁하면 그만큼 경찰들이 사건 피해자의 입장에 공감하며 사건을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다”며 “이는 꼭 이뤄져야 할 사회적 변화이다”라고 덧붙였다.

시위의 본질을 가리는 불편한 시선
4차까지 이어져 온 시위의 규모가 점차 확대되며 시위 방식에 대한 여러 의견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시위의 방식이나 시위에서 사용하는 단어, 문구가 지나치게 부정적이거나 자극적이라며 비판하는 목소리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사회의 변화를 요구하는 시위의 목적이 자극적인 방식으로 인해 많은 사람에게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거부감을 불러일으킨다며 우려를 표하는 의견도 나타났다. 익명의 학우는 “이러한 논란이 우리의 목표를 이루는 것의 지름길이 될지, 벽과 산이 될지 확신할 수 없다”며 “해결하고자 하는 목표를 위해 나아갈 방향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시위 주최 측은 이러한 논란에 대해 “더 많은 사회적 공감에 대한 내부적인 논의도 이뤄졌다”며 “효과적으로 우리의 목소리를 전달할 방법에 대해 꾸준히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3차 시위에서 한차례 논란을 겪으며 주최 측은 시위의 본질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자극적인 문구를 사용했다는 이유만으로 시위의 목적을 폄훼하는 의견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주최 측은 “시위에 대해서 과격하다는 의견에게 되묻고 싶다”며 “정말로 과격하고, 심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말했다. 이어 “여성들이 일상 속에서 겪는 불법촬영 범죄, 연인과의 데이트폭력 등 여성이 매일 느끼는 것에는 공감하지 않으면서 시위의 구호와 방식을 과격하다고 평가하는 것은 받아들이기가 힘들다”고 덧붙였다.
윤 교수는 시위의 방식에 대해 “특정한 의제를 요구하고 사회적 변혁을 결단하는 목적의 시위인 만큼 모두가 만족스러운 방식으로 진행되기는 어렵다”며 “문제의 핵심은 시위의 방식이 아닌, 수많은 여성이 거리로 나온 이유다”고 말했다. 시위의 방식보다 시위가 결성되기까지의 사회적 배경, 시위의 목적에 더욱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익명의 학우는 “초반에는 자극적인 용어에 거부감을 느끼기도 했다”면서도 “여성들의 피해와 분노의 목소리를 마음대로 평가하는 행위들이 오히려 여성의 목소리를 억압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전했다.
사회는 언제나 보편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목소리를 요구한다. ‘너희의 목소리를 보편적이지 않고 편파적이다’고 말하는 의견에 시위에 모인 수많은 여성은 되묻곤 한다. “여성의 목소리는 어째서 보편이 될 수 없는 것인가?” “어째서 우리의 분노는 공감이 될 수 없는가?”

주최 측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치지 않고 계속 가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며 “우리가 지치면 누가 가장 좋아할지에 대해서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목표를 향해 꾸준히 나아갈 수 있도록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여성이 각자의 위치에서 더 높은 자리를 쟁취해가는 노력, 사회가 만들어놓은 틀 안에 갇히지 않고 깨어나는 것이다”고 덧붙였다. 잘못된 사회를 향한 ‘불편한 용기’를 갖는 것이 시위를 통해 만들어갈 수 있는 좋은 모습의 사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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