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칼럼]

대학에 진학해 원하는 전공의 학부생이 됐지만 필자는 행복하지 않았다. 입시를 준비하던 고등학생 시절에 대학을 가면 행복한 날들만 있을 것이라 무의식중에 생각했었다. 슬럼프는 대학교 1학년 2학기부터 2학년 1학기까지 지속됐다. 열심히 살기 위해 기를 썼지만 결국 한 것이라곤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보거나 음식을 먹는 일, 그리고 잠을 자는 것뿐이었다. 이게 지난 4월 중순까지 필자의 모습이다.

그러던 중 4월 21일(토) 저녁에 필자는 문득 ‘내가 하고 싶지 않은 것들만 고려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곧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다. 필자는 새벽 1시까지 한참을 고민했다. 고민을 하다 며칠 전에 설치한 팟캐스트(Pod Cast) 어플이 떠올랐다. 어플을 실행해 정혜윤 PD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그녀는 자신이 여행하는 이유가 ‘여행하고 입국할 때 새로운 나, 더 나은 나를 만나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녀는 모두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음을 믿는다고 했다. 필자는 그녀의 낮고 떨리는 목소리를 들으면서 희망을 다시 느꼈다. 그것은 새로운 ‘내’가 될 수 있다는 희망. 한 사람이 동시에 다양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이었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조르바가 말한 것처럼 ‘나 더하기 친구 더하기 점심 더하기 또 더하고 더하고..’ 이렇게 매 순간은 한 사람을 더 고양시키고 새로워질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하지만 우리는 살면서 시험을 잘 봐야한다는 압박, 졸업하고 취직을 빨리 해야 한다는 압박이나 두려움들을 너무나도 자주 마주친다. 이런 압박과 두려움들은 한 사람의 새로운 탄생과 도전을 막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이를 마치 사회를 굴리는 원동력인 것처럼 표현한다. 그러나 필자는 우리 모두가 이러한 압박과 두려움에서 자유로울 권리가 있다고 본다. 더 나아가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은 각자 그 자체로서 존재하기에 충분하다는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무엇을 해야 하는 나’ 가 아니라 ‘무엇을 하는 나’로서 우리는 존재하고, 살아있음을 느낀다. 우리가 했던 것들, 하고 있는 것들이 모여 각기 다른 우리를 만들기 때문이다.

필자는 깨달음을 얻은 것을 자축하기 위해 새벽 2시에 편의점에 가서 사온 맥주 한 캔을 홀짝였다. 그러면서 필자는 일기장에 이렇게 휘갈겼다. ‘매 순간 다시 태어나는 나를 보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릴 때처럼 새로워질 스스로를 기다리는 것이 설렌다.

                                                                                    홍성연(한국어문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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