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칼럼]

지난 20일(월) 본교 장애학생동아리 ‘이루다안’은 특별한 캠페인을 열었다. 이루다안은 행정관 카페를 장애학우와 비장애학우 모두에게 열린 카페로 각색한 것이다. 이곳의 메뉴판엔 수화 손 모양이 그려져 있었다. 카페 안에서 학우들은 수화로 대화하기도 했고 보청기와 확대경을 대여할 수 있었다. 

캠페인이 진행 중인 카페에 걸린 ‘우리들의 시간은 천천히 흐른다’는 슬로건을 보고 많은 생각을 했다. 장애학우들의 시간은 천천히 흐른다 했지만, 우리 사회는 오히려 주변을 돌아보지 않은 채 더욱 빠르게 시간을 당기며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됐다. 빠르게 시간을 당길 뿐만 아니라, 느린 사람들에게 빨리 쫓아오라고 재촉했던 것은 아닐까.

캠페인을 통해 이런 메시지를 전한 ‘이루다안’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또한, 느린 자들이 영위하고 있는 ‘느린 시간’이 보장되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바로 복지다. 복지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체제 속에서 탄생했다. 전쟁 이후 자유주의 국가에서는 양극화와 같은 자본주의의 폐해가 나타나면서 국민들의 불만이 고조돼 있는 상태였다. 공산주의 체제로 전환하는 국가들도 생겨났다. 유럽의 국가들은 공산주의 체제를 택하는 대신, 양극화 문제 해소를 위한 복지 정책들을 마련했다. 즉 복지는 양극화의 해소를 골자로 하는 것이다.

양극화 해소라는 복지의 근본적 의미를 살펴볼 때, 복지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교육적·사회적 차별을 해결할 수 있는 장치며 핵심이다. 최근 정부는 ‘81만 공공일자리’를 통해 OECD 평균의 사회보장 서비스를 확충하고자 하고 있다. 보건의료, 교육, 문화서비스 등의 복지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의미다. 그러나 아직 복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부족하고 약자를 위한 봉사정신도 성숙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현재 우리는 복지사회로 가는 길목에 서 있다. 주변의 약자들에게 관심을 두는 것부터가 복지의 시작이다. 우리는 강의실에서 수업을 같이 듣는 장애학우를 위한 배려에서부터 포항의 이재민들을 위한 봉사와 후원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다. ‘우리들의 시간은 천천히 흐른다’는 고백이 ‘우리들의 시간은 같이 흐른다’까지 말할 수 있는 차별 없는 사회와 학교가 되길 바란다.

김윤주 (법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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