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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속의 작은 중국, '니하오!'인천차이나타운 탐방기
정소영 기자  |  smpjsy71@s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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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7.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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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억을 웃도는 인구, 남한 크기의 96배가 넘는 면적, 3,000여 년 동안 이어져 온 역사……. 이토록 큰 중국을 축소해 놓은 곳이 있다. 인천 선린ㆍ북성동 일대에 자리 잡은 차이나타운이 바로 그곳이다.


차이나타운은 1884년, 인천이 청국의 치외법권지역으로 지정된 후 화교들이 모이며 형성됐다. 이후 영사와 학교 등의 기관이 설치되고, 정기적으로 배가 지나다니며 화교의 숫자는 더욱 늘어났다. 인천에 정착한 화교들은 중국에서 갖고 온 소금이나 식료품 등을 팔고 사금이나 조선토속품 등을 수출하면서 상권을 장악했다. 그러나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면서 청관의 상권이 마비됐다. 이후 화교들은 대만, 미국, 동남아시아 등지로 뿔뿔이 흩어지고 한국 정부의 차별 대우를 받으면서 쇠퇴의 길을 걷는다.

허물어져가던 차이나타운이 부활한 것은 최근이다. 2001년 문화관광부에서 이곳을 관광특구로 지정했고, 현재 화교 2ㆍ3세 170여 가구 500여 명이 살고 있다. 여기서 나타나듯 인천차이나타운은 역사의 흐름을 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 특징이다. 한중문화관에서 근무하는 유재규씨는 “한국의 차이나타운이 특별한 점은 규모는 작지만 다른 나라처럼 도시계획화 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라고 말한다.

   
 
   
 
인천역 출구를 나오자마자 눈에 띄는 것은 4개의 붉은 기둥으로 만들어진 웅장한 ‘제1패루’이다. 패루는 차이나타운을 상징하는 문으로 중국 산둥성 위해시가 직접 제작한 3개의 패루를 이곳에 무상 기증했다. 중국 정부가 패루를 다른 나라에 기증한 것은 이곳이 처음이라고 하니 차이나타운에 대한 중국의 관심을 느낄 수 있다. 이색적인 분위기의 패루를 지나치니 비로소 차이나타운에 온 것 같다.

   
 
   
 
   
 
   
 
제1패루를 지나 언덕을 올랐다. 건물과 가로등, 벽화의 세세한 부분에서도 중국의 느낌이 물씬 난다. 거리에는 중화요리집과 기념품 가게들이 줄지어 서있다. 가던 길을 멈추고 아기자기한 중국 소품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인천 중구거리를 걷는 것 자체가 문화유산을 체험하는 것.”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길을 걷다 보면 한국 최초의 서구식 공원인 자유공원이 나타난다. 이곳에는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탑, 맥아더 장군 동상, 인천에 거주한 외국인들의 사교장이었던 중구문화원 등이 있어 색다른 구경거리를 준다. 자유공원으로 이어지는 제3패루 계단에는 만리장성, 경극, 판다 등 중국 문화를 소개하는 벽화가 그려져 있다.

제3패루 계단에서 다시 차이나타운 쪽으로 내려와 골목을 누비다보면 신기한 볼거리들이 많다. 자유공원 쪽에 서서 차이나타운을 바라보고 있는 공자상을 지나면 삼국지 벽화거리가 나타난다. 삼국지를 읽은 사람들이라면 특히 눈여겨볼만한 이곳은, 130m 길이의 거리에 도원결의, 적벽대전과 같은 삼국지의 주요사건 77장면이 그림으로 펼쳐져 있다. 책의 장면을 떠올리며 거리를 내려가다 보면 어느새 거리의 끝에 이른다.

   
 
   
 
길을 계속 내려와 한중문화관에 들렀다. 이곳에서는 중국의 유물도 감상하고 중국문화도 체험해볼 수 있다. 문화관을 나와 조금 더 내려가니 최초의 자장면 집이라는 ‘공화춘’이 눈에 띤다. 공화춘은 1905년에 개업해 성황을 이뤘지만 1984년 경영난으로 문을 닫아 지금은 건물만이 쓸쓸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현재 이 건물은 화교의 소유로, 인천 중구청은 이곳에 자장면 박물관을 건립할 계획이라고 한다. 자장면 원조의 맛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아쉬움을 뒤로한 채 입구에서 봤던 새로 생긴 공화춘으로 식사를 해결하러 갔다. “이 집은 자장면이 맛있어요.” 어눌한 발음으로 손님을 끄는 중화요리집 사람들의 호객행위가 정감 있다.

차이나타운에서 먹는 자장면과 짬뽕맛이 어쩐지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은 주방장의 솜씨와 창밖으로 펼쳐진 이국적인 광경 때문일 것이다. 집으로 가기 위해 다시 제1패루로 내려오니 멀게만 느껴졌던 중국이 한층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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