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칼럼]

지난 3월 8일(수)은 미국의 여성 섬유노동자들이 권리 쟁취를 시위를 벌인 날을 기념하는 ‘세계여성의 날’이었다. 세계 여성의 지위 향상을 위해 지정된 이 기념일을 맞아 우리나라에서도 곳곳에서 양성평등 캠페인이나 페미니즘 포럼 등이 활발하게 열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요즘 들어 국내에서 여성인권을 향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덕분이었을 것이다.

겨울방학 동안 미국으로 잠시 여행을 떠났던 필자는 보스턴에서 우연히 여성인권을 신장시키기 위한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현장을 마주쳤다. 시위 현장을 가만히 지켜보던 필자의 머릿속을 스치는 것은 그저 ‘부럽다’는 생각뿐이었다. 여성인권이 가장 잘 보호받고 있는 나라 중 하나로 꼽히는 미국에서 여전히 이와 같은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가장 그랬다. 진보한 여성인권을 얘기할 때면 항상 미국의 사례가 언급되기 때문이다.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부족한 점을 지적하며 개선해나가고자 하는 강렬한 의지에 질투가 나기까지 했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시위에 부러움을 느낀 또 다른 이유는 시위자들의 태도에 있었다. 여성인권 시위였음에도 불구하고 시위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인종과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다양했다. 할아버지부터 어린 소녀까지 모두가 한 데 뒤섞여 있는 그 광경은 필자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국내에서는 팻말을 든 여성들이 가득한 여성 시위만 접해본 탓이다. 게다가 시위 현장은 마치 축제의 그것과도 같았는데, 그들은 다들 각자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은 채 춤을 추며 웃고 즐기고 있었다. ‘자유롭다’는 말의 의미가 피부로 확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행복해 보이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덩달아 들뜨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한 마음이 교차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여성의 인권을 신장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굉장히 많이 늘어났고, 그에 따라 사람들의 의식 또한 천천히 변화했다. 하지만 아직도 일부에서는 직장과 학교 등 생활 속에서 은연중에 느껴지는 차별에 상처받는 여성들이 있다. 본인도 모르는 사이 편견을 갖고 여성을 바라보는 이들 또한 적지 않다. 여성의 고위직 승진을 방해하는 보이지 않는 장벽이라는 뜻의 ‘유리천장’이라는 말은 어느샌가 귀에 박혀 이골이 났을 정도다.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한 명의 여성으로서 필자는 오늘도 생각한다.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에 설움을 느끼는 이가 사라지는 그 날에 대해 말이다. 성별의 경계 없이 모든 사람이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를 응시할 수 있는 사회가 되는 때를 꿈꾸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여성 시위에서 여성들만이 아닌 사회 구성원 모두가 참여하는 모습을 그려본다. 그때가 되면, 아마도 필자는 미국에서 만난 시위자들처럼 입가에 환한 미소를 띄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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