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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성, 꿈을 이루며 사는 삶을 말하다
박민지 기자  |  smppmj90@s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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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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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윤나영 기자>

여군 장교, 전투기 조종사, 교수, 웃음치료사. 얼핏 보면 서로 관련성이 전혀 없어 보이는 이 직업들을 모두 경험해 본 한 명의 여성이 있다. 언제나 열정적인 태도로 모든 것에 도전해보는 김효성(여·37) 씨다.

군대에 있을 당시 여군 최초로 공격 헬기 조종사 역할을 했던 김 씨는 12년간 여군으로 생활한 뒤 전역해 올해 7월 1일(금)부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됐다. 여군 장교로 복무하던 시절 그녀는 KBS 다큐멘터리 ‘인간극장’에 출연해 공격 헬기 ‘코브라’를 조종하는 여군 장교의 모습을 가감없이 보여주기도 했다. 당시 김 씨가 보여준 여군 장교로서의 진솔하고 인간적인 면모는 시청자들의 눈시울을 붉어지게 만들었다.

전역 후 민간인 신분이 된 김 씨는 현재 U1대학교 아산캠퍼스에서 예비군 중대 중대장 겸 교양 영역의 강의를 맡고 있다. 많은 분야에서 성공을 거둔 김 씨는 대학에서 핵심교양 과목 중 하나인 ‘성공으로 가는 스토리텔링’ 과목을 강의하며 학생들에게 또 하나의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김 씨는 이에 그치지 않고 자격증을 취득해 웃음치료사로 활동하고 있다. 마음에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을 따뜻하게 보듬어주기 위함이다. 이처럼 강인함과 유쾌함 두 가지 모습을 모두 갖고 있는 김 씨, 밝고 긍정적인 매력을 지닌 그녀의 다채로운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여군으로서의 삶을 살다
12년이라는 시간동안 여군의 신분으로 지낸 김 씨는 오랜 군 생활을 마친 후 대위로 전역해 현재는 예비역 소령 신분이 됐다. 긴 시간을 군부대 안에서 보낸 김 씨가 군인의 길을 택한 데에는 그녀 특유의 모험적인 성격이 크게 작용했다. 낯선 경험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과 도전정신이 그녀를 군인의 길로 이끈 것이다. 김 씨는 “남성만의 영역이라는 선입견이 있는 군인이라는 직업에 왠지 관심이 갔다”며 “그 때문에 우연히 접하게 된 여군 모집공고를 보자마자 원서를 넣게 됐다”고 말했다. 이렇게 여군 장교가 된 김 씨의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된 것은 그녀의 취임식에서였다. “나는 간절한 기도로 여기에 왔다” 김 씨의 이 한 마디는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김 씨는 “취임사에서 했던 간절하다는 말의 의미는 그 순간을 항상 머릿속으로 그리고 있었다는 뜻이다”며 “꿈꿔왔던 모습 그대로 군복을 입고 병사들을 지휘하는 나 자신을 보고 그런 말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자신만만하게 입대를 결정한 그녀였지만 실제 군대의 모습은 그녀가 상상했던 것과 다소 거리가 멀었다. 그녀는 “씻는 문제나 옷을 갈아입는 것과 같은 사소한 문제부터 사람들과의 불화와 같은 큰 문제까지 조금씩 불편한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다”며 “특히 군대 내에서의 인간관계로 인해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말했다. 군 생활을 하던 시절, 주변 사람들로부터 받는 정신적인 고통은 김 씨를 하루하루 옥죄어 갔다. 동료들과 상급 군인들이 그녀가 하는 모든 일에 대해 일일이 트집을 잡아 지적했기 때문이다. 김 씨는 “그럴 때마다 숨이 턱턱 막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며 “여군이 보편화된 지금과 달리 당시에는 동료 군인들이 여성인 나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서 더욱 그랬던 것 같다”고 말했다.

남초 사회인 군대에서 소수의 입장인 여성으로 근무하다 보니 성차별 문제 또한 적지 않게 일어났다. 그녀는 “상사로부터 성폭행을 당할뻔한 적도 있었다”며 “군 생활을 하는 동안 그보다 더한 일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 여성으로서 큰 충격을 받는 일이 많았다”고 밝혔다. 이처럼 녹록치 않은 군 생활 탓에 때때로 김 씨는 군인이 된 것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기도 했다. 김 씨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든 일이 계속해서 일어나는 바람에 수도 없는 후회가 밀려들었고 군 생활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았다”고 말했다.

김 씨가 힘든 군 생활을 오랜 시간 동안 견딜 수 있었던 힘은 바로 가족에 있었다. 9살에 아버지를 여읜 김 씨에게 남은 가족인 할머니와 어머니는 그녀의 전부였다. 다른 사람들을 향해 자신을 자랑하는 할머니와 어머니의 모습을 볼 때면 군 생활의 스트레스와 힘든 점들을 견뎌낼 수 있는 힘이 솟아나곤 했다. 김 씨는 “그들이 없었다면 군대를 금방 그만두고 말았을 것이다”며 “12년간 그 힘으로 군 생활을 버텨낼 수 있었다”고 털어놨다.

자유로운 삶을 즐기다
군인으로 지낸 삶이 김 씨의 첫 번째 삶이었다면, 현재 김 씨는 새로운 마음으로 두 번째 삶을 살고 있다. 민간인이 돼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시도해보며 제약 없는 삶을 즐기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자유로운 삶을 만끽하고 있는 김 씨는 민간인과 군인의 가장 큰 차이점이 삶의 질과 유동적인 시간관리에 있다고 말한다. 시간에 얽매이지 않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 꿈만 같다는 그녀는 “마치 초가삼간에 있다가 주상복합아파트에서 생활하게 된 느낌이다”며 “군인과 민간인의 생활이 그만큼 질적으로 차이가 많이 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삶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세 가지가 라틴댄스, 독서, 여행이라는 김 씨. 그 중에서도 그녀가 가장 우위에 두는 것은 다름 아닌 라틴댄스다. 라틴 댄스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만큼 군 생활을 하던 시절에도 그녀는 살사, 플라맹고 등의 라틴 댄스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다. 김 씨는 “라틴 댄스를 출 때면 몸속에 갇혀있던 열정이 깨어나는 듯한 느낌이 든다”며 “라틴 댄스의 가장 큰 매력은 나 자신이 순수하고 부드러운 모습이 된다는 점에 있다”고 말했다. 평소 명령을 내리는 것에만 익숙한 그녀가 라틴 댄스를 출 때는 누군가와 호흡을 맞추며 차분해지는 모습으로 변하게 된다는 것이다.

라틴 댄스와 더불어 평소 독서를 즐긴다는 김 씨는 리처드 J. 라이더와 데이비드 A. 샤피로의 책「마음이 가리키는 곳으로 가라」를 읽은 후 오랜 기간 몸담고 있었던 군대를 전역하기로 마음먹게 됐다. 당시 여러 가지 스트레스로 인해 군 생활에 회의를 느끼던 그녀는 서점에 들렀다가 우연한 기회로 이 책을 만났다. 책을 읽고 여군으로서의 생활이 가슴 뛰는 삶은 아닌 것 같다고 판단한 김 씨는 자신의 가슴이 가리키는 곳이 어디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다. 고민 끝에 그녀는 자신의 가슴이 가리키는 것이 뜻밖에도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김 씨는 “금오공과대학교에서 ROTC 교관으로 활동하면서 누군가를 가르치고 강단에 서서 여러 사람들을 향해 말하는 것이 적성에 맞는다는 것을 서서히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그 후 과감히 전역 지원서를 내고 민간인이 된 그녀는 현재 대학교에서 예비군을 관리하는 중대장이 돼 교양 과목을 가르치게 됐다.

민간인의 신분이 된 그녀는 마음껏 여행을 다니며 일상을 즐기고 있다. 군인 신분이었던 때에는 여행을 가는 것이 결코 간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 씨가 군대에 있을 당시에는 조직의 특성 상 여행을 가고 싶어도 허가를 받는 절차가 까다롭고 그 기간 또한 지나치게 오래 걸렸다. 하지만 이제 김 씨는 틈이 날 때마다 원하는 곳으로 자유롭게 여행을 갈 수 있게 됐다. 김 씨는 “자유를 누리며 계속해서 새로운 자극을 찾아 나설 예정이다”며 “군대에 있을 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우리 속에 갇혀있던 새가 날아가는 듯한 느낌이다”고 말했다.

그녀의 도전은 계속된다
이제는 군인의 신분을 벗어나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며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김 씨. 최근에 웃음치료사 자격증을 취득한 그녀는 새로운 것을 배우고 그것을 익히는 것에서 만족감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김 씨는 “웃음치료사 자격증을 딴 후 요양병원에 봉사활동을 자주 가게 됐다”며 “함께 일하는 웃음치료사들이 전부 밝고 유쾌해 그 직업에 애정이 많이 생긴다”고 말했다. 성취욕이 많아 전역 후 웃음치료사 자격증을 비롯해 인명구조사, 대형버스 운전사 등의 자격증까지 하나씩 취득하고 있다는 김 씨는 “인생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경험을 해볼 것이다”며 밝은 미소를 보였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기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것에 도전하며 살아가고 있는 김 씨는 20대 청춘들에게 “주변 눈치 보지 말고 자기 자신이 돼라”고 말한다. 김 씨가 군대에서 생활하던 20대 당시, 주변의 압박을 이기지 못해 자기 자신의 모습을 잃어가면서까지 방황하는 시기를 보냈기 때문이다. 김 씨는 “만약 군 생활 당시 내가 본연의 모습을 유지하며 생활했다면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며 “자신의 신념을 놓게 되면 자신만이 갖고 있는 매력을 절대 깨닫지 못하게 되고 만다”고 말했다. 다시 군 생활로 돌아가게 된다면 자신만의 모습을 굳건히 간직한 채 생활할 것이라는 김 씨, 그녀는 자기 자신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소중하게 지켜내는 것이 인생을 사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어떤 일에 도전하든지 자신만의 색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는 김 씨는 “앞으로도 쭉 새로운 모험을 하며 살아갈 예정이다”며 “언제나 머릿속에 인생의 설계도를 그려 이뤄갈 것이다”고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그런 김 씨의 좌우명은 ‘1분 전의 나는 내가 아니다’는 것이다. “과거의 나보다 나아진 나를 만들고 싶다”고 말하며 멈추지 않고 색다른 영역에 도전하는 김 씨, 지금도 김 씨는 그녀만의 또 다른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달려가고 있다.

   
▲여군 최초의 공격헬기 조종사 김효성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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