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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지 못한 꽃, 봄은 오는가
박민지  |  smppmj90@s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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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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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윤나영 기자>

일본군‘위안부’, 그 흔적을 따라서

잊어서는 안 될 우리 민족의 뼈아픈 역사를 몸과 마음 속에 가지고 있는 역사의 산증인,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제2차 세계전쟁 당시 일본군 위안소에 연행돼 성노예 생활을 강요당했다. 이들 대부분은 강제징용되거나 인신매매범에 의해 납치됐으며, 간호부 근무원을 모집한다는 말에 속아 일본군의 뒤를 따라갔다. 이런 식으로 동원된 일본군‘위안부’ 여성들은 일본군의 엄격한 감시 하에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타지에서 매일같이 군인들을 상대하며 피눈물을 흘려야 했다.

아래 지도에 표시된 곳은 위안부 피해자가 있던 국가들이다. 당시 아시아 태평양 부근 국가의 대부분은 일본군의 점령지였다. 숨을 옥죄는 억압이 팽배하던 그 시대의 소녀들은 여전히 차가운 현실에 산다. 일본군‘위안부’ 소녀들에게 봄은 올 수 있을까.

 

   
1. 위안부 수용소가 분포해 있던 국가들이다.
<그래픽=윤나영 기자>

◆ 일본군‘위안부’, 어떻게 불려야 하나
종종 사람들은 ‘위안부’라는 명칭과 ‘정신대’라는 명칭을 혼용한다. 하지만 여기엔 구분이 필요하다. ‘정신대’는 ‘일본 국가를 위해 솔선해서 몸을 바치는 부대’라는 뜻이다. 이는 군수공장에 동원돼 강제 노동을 했던 여자근로정신대를 이르는 말로, 일본군 성(性)동원의 대상자였던 일본군‘위안부’와는 다르다. 하지만 정신대로 전쟁터에 간 조선 여성들이 대부분 일본군 위안소로 끌려감에 따라 정신대라는 말은 자연스럽게 일본군‘위안부’를 지칭하는 용어로 받아들여졌다. 박정애 동국대학교 대외교류원 연구교수는 “‘정신대’와 ‘위안부’의 용어를 둘러싼 혼동은 공장에 일하러 간 여성들에게 위안부 생활을 강제한 일본의 ‘위안부’ 동원 성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현재 한국 관계법령에서 일본군에 의해 위안소에 동원된 여성들을 지칭하는 공식명칭은 ‘위안부’다. 하지만 공식명칭으로 명명됐다고 해서 그 용어가 적절한 것은 아니다. ‘위로해 마음을 편하게 함. 또는 그렇게 하여 주는 대상’이라는 뜻을 가진 ‘위안’이라는 단어가 위안소 안에서 벌어졌던 강제와 폭력적 관계를 은폐시키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7년 4월 28일(토), 피해생존자 이용수 할머니는 하버드 케네디 스쿨 벨퍼센터에서 “저는 위안부라는 말이 싫습니다. 위안부는 아주 더럽고 치사하고 아니꼬운 이름입니다. 제가 왜 위안부 입니까? 위안부에 강제를 붙여 주십시오”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최근 유엔인권위원회에서는 ‘위안부’라는 용어 대신 ‘일본군 성노예’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일본군의 조직적이고도 강제적 동원 사실을 그 명칭에서 드러내기 위함이다. 하지만 박 연구교수는 “성노예라는 말이 피해 여성들이 경험한 실체에 좀 더 근접해 보이기는 하지만 그 고통의 기억을 생생하게 되살린다는 점에서 피해 여성과 더불어 쓰기에는 적절하지 못하다”고 말했다.

명칭에 대한 여러 논란 속, 현재 공식문서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표현은 일본군‘위안부’다. 일본군‘위안부’도 완벽한 용어는 아니지만 일본군이라는 범죄의 주체를 보여주며, 이 용어가 당시 공문서에서 사용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또한 따옴표를 둘러 일본군‘위안부’라고 표기하는 것은 당시 위안부라고 불렀지만 그 의미에는 동의하지 않음을 나타낸다.

◆ 세계 각지에서 그들은

   
2. 전쟁이 끝난 후 버려진 위안부들의 모습이다.


현재 한국인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는 중국, 일본, 북한 등지에 거주하고 있다. 지금은 세상을 떠났지만 캄보디아, 태국 등지에서 거주했던 피해자도 있다.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에는 한국인만 있는 것이 아니다. 피해자의 국적은 중국, 대만, 일본, 필리핀, 인도네시아, 동티모르, 네덜란드 등으로 광범위하다. 전쟁 당시 아시아 태평양의 모든 국가가 일본군의 점령지였기 때문이다.

당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는 최소 8만 명에서 최대 2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식민지 시기에 조선 출신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로 인정된 이는 정부등록자 238명, 북한거주자 40명, 정부미등록자 15명으로 총 293명이었다. 현재는 그 중 국내 40명, 국외 4명으로 44명만이 남아있다. 44명의 피해 생존자는 각기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일본군이 강제로 저지른 만행을 알리기 위해 힘쓰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 이름이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아 개별적으로 정부와 지역 시민단체의 지원을 받으며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현재 생존해 있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평균 연령은 89.4세로, 대부분이 정신적, 육체적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일본군‘위안부’ 할머니의 88.2%가 극심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 시달리고 있다. 70여 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그때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것이다.

◆ 아쉬운 합의, 계속해서 노력해야
2015년 12월 28일(월), 한일 외교장관 회담에서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일 협상이 이뤄졌다. 본 협상에서 일본 정부는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책임을 언급하며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당시 군의 관여 하에 다수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라는 점에서 일본 정부는 책임을 통감한다”고 말했다. 또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지원을 위한 재단 설립에 10억 엔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영국 BBC는 본 협상을 ‘역사적 합의’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본 협상에 대한 여러 가지 문제점이 제기됐다. 가장 핵심적인 것은 협상의 당사자인 피해자 할머니들의 의견을 전혀 반영하지 않은 일방적인 합의라는 것이다.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책임 소재가 명확하지 않으며, 피해자들이 원하는 진정한 사과가 아닌 형식적 사과와 금전적 배상만이 이뤄졌다는 것 또한 지적됐다.

일본군‘위안부’ 관련 한일 협상이 이뤄지며 일본이 자국의 잘못을 시인한 것처럼 비춰졌지만, 그 후 일본 측의 동향은 그와 반대되는 모습이었다. 한국 정부에 일본군‘위안부’ 소녀상을 철거해야  10억 엔을 지급하겠다고 요구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게다가 한일 일본군‘위안부’ 협상이 이뤄진 지 석 달이 됐지만 일본이 기약한 10억 엔은 아직 지원되지 않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달 16일(화) 열린 ‘63차 유엔여성차별철폐위원회 석상’에서 일본 대표는 “일본 정부가 발견한 자료 안에는 군과 관헌에 의한 강제연행을 확인할 수 없었기에 성노예라는 표현도 사실에 반하는 것이다”며 일본군이 강제로 여성들을 동원한 사실을 부정했다. 또한 지난 18일(금), 일본 문부과학성의 검정을 통과한 시미즈(淸水)서원의 일본사A 교재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일본군에 연행돼’를 ‘식민지에서 모집된 여성들’로, 도쿄서적 교과서에서는 ‘위안부로 끌려갔다’를 ‘위안부로 전지(戰地)에 보내졌다’로 바꿨다. 여성들을 누가 어떻게 모집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어 일본군‘위안부’ 제도의 강제성이 교과서에 드러나지 않게 된 것이다. 일본군‘위안부’ 피해자가 심각한 인권 침해를 당했다는 사실도 누락됐다.

이러한 일본군‘위안부’ 협상 과정의 문제에 대해 박 연구교수는 “문제의 본질을 배제한 부정의한 ‘합의’에 불가역적이고 최종적인 것은 없다”며 “역사학자로서 2015년 12월 28일의 ‘해결’이 부메랑이 돼 과거를 닮은 비극으로 우리 삶에, 우리 미래 세대에 되돌아올 일이 두렵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때문에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해 나아갈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내다보며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근본적으로 마무리지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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