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황
이이
굳이 보려고 하지 않아도 볼 수밖에 없는 한국의 철학자가 있다. 바로 천 원과 오천 원권 속에 있는 퇴계 이황(1501~1570)과 율곡 이이(1536~1584)이다. 화폐 속 인물이라는 점 외에도 이황과 이이는 조선시대 중반에 활동했다는 점과 성리학을 연구했다는 점에서 닮았다. 그러나 이들의 철학에는 큰 차이점이 있다.


일단 이황과 이이의 사상을 알기 전에 이(理)와 기(氣)의 개념부터 확실히 해둘 필요가 있다. 쉽게 말해 ‘이’는 변하지 않는 근본 원리를 뜻하고 ‘기’는 만물을 구성하는 재료를 뜻한다. 물이 들어있는 그릇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 때 물 자체는 ‘이’에 해당하고 물을 담고 있는 그릇은 ‘기’에 해당한다. 물이 어느 그릇에 담아도 변하지 않는 근본적인 물질이라면 그릇은 그 모양과 넓이에 따라 달라지는 피상적인 물질이라 할 수 있다.


이황과 이이 사상의 차이는 ‘이’와 ‘기’를 대하는 태도에서 드러난다. 이황은 ‘이는 귀하고 기는 천하다'는 이귀기천(理貴氣賤) 사상을 갖고 있었다. 때문에 도덕적 원리와 인식에 뜻을 두고 본성을 중시했다. 이황이 정의하는 ‘이’에는 양반, 상민, 천민과 같은 계급도 포함됐다. 그는 신분을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는 근본적인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신분제를 옹호하는 정책을 폈다. 특히 ‘이가 발하면 기가 이를 따른다’는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은 ‘이’를 우선시하는 이황의 핵심사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반면 이이는 ‘이는 통하고 기는 국한된다’는 이통기국론(理通氣局論)을 펼치며 ‘이’와 ‘기’가 서로 의존ㆍ보완 관계를 유지해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했다. 또한 이황과 달리 ‘기’를 중시해 사물의 본성인 ‘이’가 ‘기’를 통해 변할 수 있다는 입장을 취했다. 이이는 밖으로 보이는 인간의 행동이 ‘기’에 해당한다고 생각했고, 이 행동이 이념과 생각을 발현한다고 주장했다. 이이의 이러한 주장에 따르면 ‘이’에 해당하는 신분도 ‘기’로 바꿀 수 있다. 때문에 이러한 이론은 후에 신분제 철폐를 주장하는 학파에게 사상적 근거를 제공했다. 이처럼 이이의 사상은 이황의 사상에 비해 유연하고 현실적인 면이 많았다.


이황과 이이가 살던 시대는 조선의 전ㆍ후기를 나누는 격변의 시대였다. 이렇기에 변화하는 사회를 안정시킬 지도적 사상이 필요했고 이황과 이이는 이러한 사상의 두 축을 담당했다. 후에 이황의 사상은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과 위정척사운동으로 이어지며, 이이의 사상은 실학을 넘어 개화주의로 이어진다. 이처럼 이황과 이이는 우리나라 사상의 흐름에 중요한 두 갈래를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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