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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트 부문 청송상안양예술고등학교 김혜은
숙대신보  |  shinbosa@s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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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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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틀

저는 보이지 않는 존재 입니다. 이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생글생글 방금 피어난 아네모네와 같이 웃고 있는 소녀 속에 있습니다. 이 곳은 무척이나 따스한 물로 채워져 있는 중력을 잊어버린 공간입니다. 배 언저리에는 나를 증명하는 붉은 끈이 달려 있답니다. 가끔씩 이 끝을 꼬여버릴 때가 있습니다. 쿵쿵, 문을 두드리는 소리. 이건 어서 나오라는 소리가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이 꿈이기를, 거짓말이기를 바라는 엄마의 조그마한 주먹이 다녀가는 소리입니다. 그래도 두어 번치고 맙니다. 우리 엄마의 두 눈에서 이 곳의 것과 닮은 물이 뚝뚝 떨어집니다. 이 곳은 엄마가 품은 우주, 엄마의 눈물은 종착지를 모르는 유성. 곧, 충돌이 일어나 우주가 팽창해버릴 것입니다. 그 전에 저는 사라져야 합니다. 저는 엄마 몰래 자살이라는 걸 시도하곤 합니다. 엄마가 슬퍼하지 않도록 옅은 숨을 참아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렇게 쉽게 죽지 않습니다. 너무나 작디 작은 여른 몸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저의 심장은 무척이나 강하게 뛰고 있습니다. 엄마가 처음 저의 존재를 알았을 때 엄마에게는 거대한 벽이 생겨났습니다. 지워라, 없애라 그러한 말들을 엄마는 강하게 튕겨냈습니다.

"내 아기가 여기 있는데 어떻게 없애?" 배를 부여잡은 엄마의 손은 너무나 따뜻해 한시라도 빨리 그 품에 안기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엄마의 벽은 엄마마저 나갈 수 없는 틀이 되었습니다. 제가 다 들었습니다. 보았습니다. 같이 수업을 듣고, 급식을 먹던 친구들은 흉을 보고, 엄마는 교복을 벗어야 했으며 동네 마트도 쉬이 갈 수 없었습니다. 엄마는 귤과 오렌지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왜 둘은 서로 다른 이름을 가졌는지와 같은 쓸데없는 생각들을 망치 삼아 벽을 부수었습니다. 엄마가 알 수 없는 감기약을 먹은 것도 그때 쯤이었습니다. 희미하게 남아있는 최초의 기억을 더듬어 봅니다. 엄마의 미움이 가득 담긴, 뚜렷하지 않은 아빠의 얼굴입니다. 아빠는 엄마보다 한 살 많은 대학생이었습니다. 나중에 같은 대학을 다니자고 엄마의 귓가에 속삭이기도 했습니다. 여름방학에 엄마는 아빠와 여행을 갔습니다. 같은 반 친구들과 간다는 거짓말이 함께 한 여행이었습니다. 또다른 거짓말이 뒤따라 갔습니다. 아빠는 사랑하는 사람이 모두 하는 일이라며 엄마의 옷을 한꺼풀씩 벗겼습니다. 엄마는 순간적으로 기말고사에 나온 수학공식을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후에 저의 존재를 알게 된 아빠는 다니던 대학도 그만두고 어딘가로 사라져버렸습니다.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이 저와 닮았습니다. 엄마는 자꾸만 배를 쳐대고, 할머니는 병원을 찾고, 할아버지는 아빠를 찾습니다. 어느 날 아빠는 엄마에게 아기를 지울 돈이라며 이백만 원을 보냈습니다. 다들 저를 죽이지 못해 안달이 났습니다. 저에게는 그렇게 보였습니다.

좁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괜히 끈을 만지작거리거나 푹신한 벽에 머리를 부딪혀 보기도 합니다. 세상에 이런 안전한 곳이 또 있을까요. 손가락 다섯 개, 발가락 다섯 개. 엄마를 닮아가기 시작했고, 엄마의 마음 속을 더 잘 읽게 되었습니다. 엄마가 보는 텔레비전을 저 역시 봅니다. 문어가 새끼문어들이 헤엄쳐나가기 시작합니다. 어미는 산소를 내뿜어 새끼들을 멀리멀리 보내고 기력을 잃어 영원한 잠에 빠집니다. 그 어미를 다른 물고기들이 야금야금 씹어먹습니다. 뒤이어 엄마는 생각했습니다. '나는 저럴 자신 없어......' 저는 그 방송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나는 바다가 아닌 엄마에게로 가야겠다. 그 뒤로 자살하기를 그만두고 엄마에게 저를 알렸습니다. 엄마가 아닌 내가 먼저 발로 배를 두드리고, 뽀글뽀글 무어라 중얼거리기도 했습니다. 엄마는 그걸 알아차렸는지 스스로의 의지로 병원 침대에 누웠습니다. 저는 힘껏, 새싹이 돋아나듯, 머리를 내밀었습니다. 우주를 팽창시킬 차례였습니다. 거대한 틀에서 벗어난 순간, 빛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 밝은 빛에 크게 입 벌려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저의 울음소리는 엄마와 저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였습니다. 엄마와 저, 모두가 틀에서 벗어나야 했습니다. 제 차례는 끝났습니다. 엄마의 틀은 저의 두움을 받아 견고해져 안전한 울타리가 될 것이고, 또한 아늑해져 모두에게 사랑 받을 오두막이 될 것입니다.

"예쁜 공주님이네요." 이 태초의 기억은 우주 속으로 사라질 테지만 언제나 존재하고 있을 겁니다. 이것 보세요. 엄마가 웃으면서 울고 있습니다. 이건 눈물이 아니라 양수의 추억입니다.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것일 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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