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여자고등학교 문효은

깃발

나는 달리기 만년 꼴등이었다. 꼴지의 가장 큰 설움이 무엇인지 아는가? 꼴지를 기다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운동장 모래 바닥 위 그려진 하얀 선을 따라 달리면 꼭 그만큼 하얀 깃발이 박혀 있었다. 하나, 둘, 셋, 넷. 사람은 다섯인데 깃발은 네 개다. 도장을 들고 깃발 옆 서있는 선생님도 하나, 둘, 셋, 넷. 난 언제나 다섯 번 째 아이였는데 도장도 네 개 뿐이었다. 선생님들은 일등으로 도착한 아이는 1번 깃발, 이등으로 도착한 아이는 2번 깃발에 일렬로 줄 세운 뒤 모든 달리기 경주가 끝나면 아이들의 손등에 쾅쾅, 도장을 내리찍는 것이었다. 물론 내 달리기는 경주라기보다 대기 시간에 가까웠다. 네 번째 아이가 마지막 지점을 통과하고 나면 선생님들은 다음 아이들의 달리기를 준비시키러 일제히 사라지는 것이다. 아, 아, 대기시간은 세월아 네월아 입니다. 하루 종일 소요될 예정이니 학생 여러분은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 주시길 바랍니다.

다행인 것은 그러한 설움이 평생 이어지지는 않았던 것이다. 믿기지 않게도 중고등학생이 되면서 부터는 내 뒤에서 달리는 아이들이 생겼고 때때로는 내가 모든 아이들을 앞질러 가기도 했던 것이다. 물론 고등학교에는 아이들을 줄 세우는 깃발이나 손등에 쾅쾅 찍어주는 도장 따위는 없었지만 말이다.

아무튼 지금은 꽤나 능숙하게 달리는 내가 초등학교 시절 만년 꼴지였던 이유는 발이 작아서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궤변이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아기들의 발을 한 번 보도록 하자. 이 발로 걸을 수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작지 않나? 바로 그것이다. 실제로 아기들은 일정 수준 이상으로 발이 커지기 전까지 걷지 못한다. 윗몸의 무게를 단단히 버티고 땅을 딛고 일어설 정도로 발이 커져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초등학교 시절 또래 아이들보다 발이 작았다. 혹시 그래서 내가 잘 뛰지 못한 것은 아닐까?

얼마 전 나는 조카가 생겼다. 그런데 왜, 우리는 아이가 태어나면 재미있는 일을 하지 않는가. 바로 아기 발 도장을 종이 따위에 찍어 내는 것이다. 그것을 보며 나는 아폴로 호의 달 착륙을 생각했다. 우리는 모두 그 사진을 안다. 달에 깃발을 꽂고 자랑스레 웃는 남자의 사진을. 아이가 태어나 남기는 그 자그마한 발도장이 마치 내가 도착했노라고, 지구에 꽂는 깃발 같아 보였다.

그런 의미에서 깃발의 ‘발’이라는 글자가 내가 생각하는 ‘그 발’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깃발은 사람들의 진짜 발을 대신해 남아주는 발이었던 것이다. 아무도 기다려주지 않는 달리기 경주에서 다섯 번째 아이가 끝까지 뛰었던 이유는 그 끝에서 네 개의 깃발이 묵묵히 자리를 지키었기 때문이다. 그간의 설움이 풀리었다. 네 개의 발과, 내 작은 발만큼이나 작아 보이지 않았던 다섯 번째 깃발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목표지점을 깃발에 비유하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는 때때로 그 깃발이 보이지 않는 어둠, 그 속에서의 막막함을 경험하기도 한다.

잠 못 이루는 밤, 불 꺼진 방에서 깃발이 보이지 않을 때면 나는 나의 작은 발을 생각했다. 깃발은 그 곳에서 펄럭이고 있었다.

저작권자 © 숙대신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