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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에겐 한계란 없다
황다솔 기자  |  smphds86@s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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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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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어요.”

지난 8일(일), ‘세계 여성의 날’이었다. 이날을 앞두고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OECD 회원국 28개 국가의 ‘유리천장지수(The glass-ceiling index)’를 발표했다. 그 중 우리나라는 평균 60점에 25.6점으로 꼴찌를 기록했다. 최근 여성의 사회진출이 눈에 띄게 증가했지만 현실은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막힌 셈이다. 유리천장은 고사하고 여성이 일을 한다는 것이 당연하지 않았을 시절, 한국 여성과학자의 문을 열었던 이가 있다. 바로 여성최초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원장이었던 정희선(약 78졸) 원장이다. 본지는 지난달 25일(수)에 충남대 분석과학기술 대학원장실에서 정 원장을 만났다.

여전히 바쁜 나날
2015년 설날을 맞아 모두가 설을 즐기고 있을 때 그녀는 미국 플로리다에 있었다. 그곳에서 개최된 ‘국제법과학회’에 참석했다고 한다. 학회에 참석하기 위해 외국을 방문하는 것은 그녀에게 이젠 특별한 일이 아니다. “1월엔 두바이, 2월엔 플로리다에 다녀왔어요. 학회를 위해 올해 벌써 2번이나 해외를 방문한거죠” 그녀가 현재 활동하고 있는 국제 학회는 두 개다. ‘국제법과학회’와 ‘국제법독성학회’에 활동 중이며 국제법독성학회에서 현재 회장을 역임하고 있다. 60년의 역사를 가진 학회에서 최초 여성 학회장으로 선출됐다고 한다. 현재 충남대 분석과학기술 대학원장 일과 학회장 일을 함께 병행하면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일주일에 하루는 학회 일에 투자해야 돼요. 주말에 항상 각 나라에 있는 학회 사람들에게 이메일을 보내죠. 그렇게 노력을 하지 않으면 학회 일이 잘 연결되지 않거든요” 힘들다고 말하지만 그녀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녀는 최근 학회보다 더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에 있는 3명의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어요. 자주 보고 지도를 해줘야 하는데 바쁘게 지내니까 얼굴 볼 시간도 없어서 학생들에게 미안하죠” 정 원장은 국내외를 오가며 하는 일이 많아도 즐겁다고 말한다.

   
▲ 국제법과학회와 국제법독성학회에서 임원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보며 설명하고 있는 모습이다. <사진=이혜민 기자>

운명적인 만남 그리고 사건
정 원장의 삶 대부분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과 함께였다. 국과수에 처음 발을 들여 놓기 전, 그녀 또한 본교 약학대학에서 공부하던 평범한 학생이었다. 우연치 않게 본교에서 열렸던 국과수 소장의 강연이 그녀의 마음을 울렸다. “강연의 내용이 정말 감동적이었죠. 어떤 사건을 해결하는데 과학의 힘으로 풀 수 있다는 것이 정말 흥미롭고 재밌어 보였어요. 그 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려요” 대학교 3, 4학년 당시 공부를 하는 동안에도 국과수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녀에게 우연은 또 한 번 찾아왔다. 본교서 학사 졸업을 앞두고 있을 당시 국과수에서 일을 할 수 있는 자리가 생겼다. 그녀는 주저 없이 국과수에 입사하기로 결정했다. “그때는 국과수에 자리가 많았었죠. 지금처럼 취업난 이라는 것이 없었을 때니까. 입사하고 나니 공부를 더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국과수에서 일을 하면 할수록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간절해졌다. 그래서 본교서 석사, 박사과정을 밟았다고 한다. 학교에 와선 이론 공부를 하고 그 이론들을 토대로 국과수에 와서 바로 실험에 적용했다. 그녀에게 국과수는 배움의 연장선이었다. “이론에서 배운 것을 실험에 적용해 보면 맞지 않은 부분이 상당히 많은데, 실험을 계속 하다보면 이론의 원리를 깨닫게 돼요. 실제로 경험하면서 느끼는 지식들을 기반으로 그 이론들을 활용하는 법을 생각하게 됐죠” 학사를 마치고 곧바로 국과수에 입사해 일을 하면서 배움을 이어나간 것이 어쩌면 더 잘 된 일이었다고 말한다. “이론을 배우고 바로 적용해 가며 원리를 이해하는 과정이 없었다면 국과수의 매력을 크게 못 느꼈을 거예요”

그러던 중 국과수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그녀가 세상에 이름을 알리게 된 사건이 일어났다. 1995년, 가수 ‘듀스’로 유명했던 김성재 씨가 갑작스럽게 사망한 채 국과수로 왔다. 세간의 관심은 온통 그의 죽음뿐이었다. 당시 마약전문가였던 그녀에게 김 씨의 사인을 알아내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김 씨의 팔뚝에는 수십 개의 바늘자국이 선명하게 나있었다. “보통 마약을 하는 사람은 주사바늘 상처가 다 다른데 이 사람은 이상하게 모두 같은 날에 난 자국이었어요. 방법은 단 하나였죠. 마약의 성분을 알아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어요” 의뢰를 받은 날부터 꼬박 밤을 새가며 3만 여 종의 화학물과 비교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 “집에서 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그 일이 꿈에 나타나서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다음 날 우리 직원한테 그 얘기를 했더니 자기 꿈에 내가 나와서 잠을 못 잤다고 말할 정도였죠” 그녀가 사건에 지쳐갈 때쯤 어떤 화학물이 눈에 띄었다. 바로 동물 마취제로 쓰였던 ‘졸레틸’이었다. 이전까지 김 씨의 사인은 마약중독으로 추측됐으나 정 원장이 밝혀낸 사실로 수사방향은 타살로 전환됐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녀는 과학으로 진실을 밝혀낸다는 것에 짜릿함을 느꼈다. “사건 하나하나가 모두 드라마 같은데 보통 사람들은 뒤안길을 알지 못하죠. 수많은 사건 중 김성재 사건은 제가 국과수에 오랫동안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힘이에요”

커피잔 70도의 가르침
34년간 국과수에서 근무했던 그녀가 입사할 당시 여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 때문에 힘들었다고 한다. “여성이 직장을 다니면 1, 2년 사이 박한 직장생활을 견디다 못해 그만두거나 결혼을 할 때 직장을 관두는 것이 관례처럼 여겨졌어요” 여성에겐 결혼과 직장생활을 모두 누릴 여건이 갖춰져 있지 않았다. 그러한 사회적 인식 중에서 정 원장이 가장 싫었던 것은 ‘미스 정’이라는 호칭이었다. “여성 직원을 부를 땐 앞에다 ‘미스’를 붙이는 것이 당연한 듯이 여겼죠. 특히 여성 직원은 할 일이 하나 더 있었는데 바로 커피를 타야 했었어요. 저는 커피를 타는 것이 너무 싫었어요” 입사 후 실험 기구들을 정리하고 깨끗이 닦는 일을 하는 것은 참을만 했지만 커피를 타는 것만은 참을 수 없었다고 한다. 배울 만큼 배우고 들어왔는데 커피 타는 일을 해야 하나라는 생각에 항상 불만이었다. 그렇다고 안 할 수도 없는 상황에, 매일 성의 없이 커피를 타다 어느 날 상사에게 크게 야단을 맞았다.

“그때는 처음으로 혼이 난 것이 충격이었어요. 그러나 뒤 돌아서 생각해보니 어떤 일을 하든지 성의 없이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렇게 정 원장은 커피를 잘 타기 위해 여러 사람에게 물어보고 답을 구했다. ‘어떻게 타야 커피가 맛있을 수 있는지’는 그녀에게 난제였다. 그녀는 여러 질문 끝에 커피 잔을 70도로 가열하고 커피를 타면 커피가 맛있어진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정말 전문가가 되려면 커피를 타는 것과 같이 작은 일에도 성의를 보이지 않으면 안돼요.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정 원장은 지금까지도 그때 그 일을 떠올리며 삶에 있어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되뇐다.

숙명인들에게
정 원장은 직업은 운명처럼 다가오는 것이라고 말한다. “입사 후에 몇 년이 지나서 그 당시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을 만났어요. 국과수 소장님이 강연했을 때 기억나지 않냐고 물었더니 아무도 기억을 하지 못하는 거예요. ‘국과수에 들어갈 사람과 그렇지 않을 사람은 다른가 보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자신의 인생을 크게 바꿨던 강의가 다른 사람에겐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인연이 닿아 있으면 어떤 일이든지 할 수 있어요. 직업에 대해 걱정할 필요 없어요”

직업에 대해 걱정하지 말라는 정 원장은 자신의 일에 대한 열정을 갖는 것을 강조했다. 지금까지 그녀를 움직이게 한 것은 ‘여성 최초’라는 명성이 아닌 ‘좋아함’이었다. 자신의 일을 좋아하고 자부심을 가지면 더 나은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일을 할 때 단번에 그 일을 좋아할 수 없다. 이에 정 원장은 3년이라는 시간을 가지라고 말한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뭐든 자신과 맞지 않으면 금방 포기해요. 어떤 일이든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에요. 처음엔 나무만 보이다가 점차 숲이 보이죠. 숲이 보이면 가야할 길을 알 수 있어요” 3년 동안 경험을 하고 더 나아갈지 혹은 나아가지 않을지 결정해도 늦지 않는다.

여성의 가능성은 무한하다. 과거 남성이 주를 이뤘던 과학 분야에서도 여성들은 활약을 펼치고 있다. 정 원장은 4년의 대학교 시간을 소중히 보내라고 당부했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대학생활 동안 끊임없이 공부하고 자신을 갈고 닦은 정 원장은 지금도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과학자에게 필요한 끈기와 집념은 비단 그들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어떤 일을 하든지 끈기를 가지고 노력하면 어려운 일도 결국엔 이뤄진다. 현재 정 원장이 가장 이루고 싶은 목표는 청소년들을 위한 과학수사 박물관을 만드는 것이다.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목표를 세우고 거침없이 걸어가고 있다. 그녀의 활약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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