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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의 한 페이지, 노량진 고시촌
신윤영·이지은·한연지  |  smpsyy86@s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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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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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 홍대가 젊음의 거리라면 노량진은 ‘또 다른 젊음의 거리’다. 10여 년 전부터 노량진에는 공무원 학원들이 우후죽순 들어서면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임용고시부터 경찰·소방공무원까지 그 종류도 다양하다. 본지는 노량진 고시촌에 직접 찾아가 이틀에 걸쳐 노량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1. 한 고시생이 한 손에 프린트물을 든 채 세속의 다리를 건너고 있다 2. 저녁시간, 컵밥을 먹는 고시생이 사장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3. 저녁시간임에도 많은 학생 들이 자리를 지킨 채 공부에 몰두하고 있다

 

◆ 노량진의 저녁 풍경
노량진역에 도착했을 때는 저녁 6시 쯤. 노량진역에서 나오자 커다란 육교가 보였다. 지하철역과 노량진 고시촌을 잇는 육교는 세속과 고시생들을 구분 짓는다는 의미에서 ‘세속의 다리’로 불린다. 육교를 건너니 수많은 학원들이 늘어서 있고 거리는 저녁을 먹으러 나온 고시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하루에 3시간 반밖에 못자요. 잠이 부족한 게 제일 힘들어요” 포장마차에서 만난 김지은(여.21)씨는 노량진에서 8개월 째 9급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집이 경기도 안양인 지은 씨는 새벽 4시 반에 일어나야 노량진에 있는 학원으로 올 수 있다. 밤 11시까지 공부하다 집에 들어가면 새벽 1시다. 대학에서 정보통신을 전공했지만 휴학계를 내고 노량진을 택했다. “어차피 힘들게 취업해도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데 시간이 좀 더 들더라도 안정적인 직장을 얻고 싶어요”

주머니 사정이 어렵고 배고픈 고시생들을 위해 길거리에는 저렴한 가격에 다양한 먹거리를 팔고 있었다. 꼬치부터 컵밥까지. 노량진에서 7년 째 컵밥 장사를 하고 있다는 한 사장은 밥이 가득 든 가마솥을 가리키며 “이 솥이 벌써 7년이나 됐어요. 그동안 물가가 오르면서 컵밥 가격도 조금씩 올랐죠. 하지만 이젠 우리 학생들 생각하면 지금 가격으로 끝까지 가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저녁시간이 끝나가자 학생들은 하나 둘 학원으로 다시 발길을 돌렸다. 학원 앞에서 책을 든 채 이야기를 나누던 두 명의 남녀 학생에게 인터뷰를 요청하자 바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혼자서 급하게 저녁을 먹던 다른 남학생은 식사 후 음료수를 내밀며 다가간 기자에게 손 사레를 치며 자리를 떠났다. 이들이 인터뷰를 거절하면서 바삐 걸음을 돌리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들의 발걸음을 따라 도착한 곳은 바로 노량진 곳곳에 위치한 학원이다.

   
▲ 노량진의 상징이 된 컵밥의 견본

◆ 노량진에서 만난 사람들
박문각 임용고시 학원의 신민석 대리는 “최근 임용시험이 객관식에서 서술형으로 바뀌면서 초등, 중등 임용고시에 대한 관심이 예전보다 높아졌어요”라고 말했다. 학원생들 중 대학생은 20~30%정도로, 방학 때는 더 늘어난다. 올해 유·초등 임용고시일은 11월 22일, 중등 임용고시일은 12월 6일이다. 이 때문인지 저녁에 찾은 학원임에도 학생들이 아주 많았다. “원생들은 보통 아침 8시에 와서 밤 10시까지 공부해요. 다들 얼마 남지 않은 시험에 매우 예민하고 조급해해요. 개인적으로 안타까울 때가 많아요”

노량진에서 시험을 준비하는 이들은 멀리 있지 않다. 본교 대학원에 재학 중인 A씨는 본교 작곡과를 졸업하고 현재 음악 치료 공부와 임용고시 준비를 병행하고 있다. 그녀는 시험을 준비하면서 생각보다 더 완벽하고 상세히 공부해야 한다는 점이 힘들다고 했다. “음악에 대한 총체적 지식을 요구하기 때문에 국악의 경우 가야금, 대금의 연주법까지 알아야 돼요”

경찰공무원 학원에 들어서자 여학생들이 많던 임용고시학원과 달리 건장한 체격에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학생들이 가득했다. 학원 안에는 학생들의 동기부여를 위해 경찰복이 걸려있었다. 아모르 이그잼 경찰공무원 학원의 구익현 과장은 “학원생 수는 2500명 정도예요. 현재도 매달 300명가량 새로운 학생이 들어오고 있어요. 예전에는 경찰이란 직업에 대해 기피하는 추세였을지 몰라도 지금은 공무원 중에서도 보수가 높고 퇴직 후 연금이 나오기 때문에 많이 선호하는 편이에요”라고 설명했다. “학원생들은 보통 20~22살로 어린 편에 속해요. 고등학생 때부터 경찰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상담을 받기도 해요.” 경찰공무원 시험은 남녀 모집 비율이 8:2로 남자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경찰행정 특채의 경우 남녀 구별 없이 뽑기 때문에 최근 여학생의 응시도 늘어나고 있다.

익명을 요청한 B씨는 어느덧 경찰공무원 시험을 준비한지 3년이 됐다. 현재 그는 그동안 아르바이트로 모아둔 자금으로 생활을 하고 있다. 학원비와 교재비를 아끼기 위해 학원 보조일을 하며 지낸다고 한다. 힘들었던 순간을 묻자 “타 지역에 지원했으면 합격했을 점수였는데 제가 지원한 지역에서는 불합격을 했을 때와 준비기간이 짧은 지원자가 합격했을 때가 가장 힘들었어요” 현재 B씨는 필기시험에 합격한 상태다. B씨에게 지금의 시간은 어떤 의미일까. “그동안 너무 힘들었지만 스스로를 단단하게 만든 시간이었어요. 훗날 저의 성공에 좋은 밑거름이 될 거라 확신해요”

한편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늘어날수록 노량진은 어떻게 달라지고 있을까. 노량진에서 부동산을 운영하고 있는 한 공인중개사는 “노량진 상권 쪽은 공급보다 수요가 많아요. 가게 간판이 자주 바뀌면서 전반적인 변화가 많은 곳이에요” 처음 노량진이 발달하게 된 것은 지금의 고시학원이 아닌 전기, 기술직 자격증 학원이 생성된 20년 전이라고 한다. 그 이후에 재수학원이 생기고 약 10년 전부터 공무원 학원이 생겼다고. 이를 토대로 숙박 시설(원룸, 고시텔, 공부방 등)과 편의 시설도 들어서게 됐다. “노량진은 우선 교통이 좋아요. 또 대형 강의실과 같이 학원 건물로 사용될 수 있는 곳이 제한적이다 보니 노량진에 몰리게 된 것도 있죠” 고시촌의 방을 계약하는 이들의 대부분은 99%가 수험생으로, 남녀 비율은 비슷하다고 했다. “원룸-공부방-고시텔-고시원 순으로 가격이 비싸요. 원룸은 여유있는 학생들 말고는 살기 어렵죠”

   
▲ 고시촌 골목길에 늘어선 고시원들

◆ 노량진 고시촌의 모습
다음 날 상권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고시촌을 다시 찾았다. 상권구역을 제외한 노량진동의 대부분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노량진 고시촌이다. 오후 3시, 대부분의 학생들이 학원에 있을 시간이라 그런지 고시촌은 한적했다. 검은 비닐봉투에 라면과 물을 사가는 고시생들과 동네 주민들만이 골목을 걸어 다니고 있었다. 거리의 가로등은 몇 개 없어 밤이 되면 골목을 다 비추기에 부족해 보였다. 고시촌의 모습은 본교 주변 골목길 속 자취, 하숙하는 집들과 무척이나 비슷했다.

황신원(약학 12) 학우는 올해 2월부터 노량진 고시촌에서 공무원 준비를 하는 친오빠와 함께 살고 있다. “고시촌의 아침은 다른 곳보다 빨리 시작돼요. 카페도 일찍 문을 열고 24시간 카페도 많아요” 하지만 노량진의 밤은 낮의 모습과 전혀 다르다고 했다. “학원가 주변에 술집이 많아 밤에는 시끄러워요. 수업을 마치고 거리로 나온 고시생들이 유혹에 흔들릴 것 같아 걱정스럽기도 해요”

◆ 노량진, 그 이면에 담긴 의미
“공무원 시험에 대한 높은 선호 현상은 딜레마예요” 현재 본교에서 명화랑(5급 공무원 준비반)과 7급 공무원 준비반을 지도하는 행정학과 남승하 교수는 “똑똑하고 열정적인 젊은이들이 공무원시험을 통해 공직에 들어간다면 이 사회가 긍정적으로 변하겠죠. 하지만 너무 많은 학생들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건 국가적 낭비예요”라고 말했다.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공무원은 지금만큼 인기 있는 직업이 아니었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 IMF를 겪으면서 ‘안정성’이 직업 선택의 중요한 기준이 됐다. 남 교수는 “경제가 발전하던 시절,사람들은 성장하는 사기업에서 자신도 함께 성장하길 원했어요. 요즘 안정적인 공무원을 선호하는 모습은 우리나라가 성장하지 못하고 활력을 잃어간다는 맥락으로 볼 수 있죠”라고 지적했다.

“요즘은 많은 학생들이 단순히 안정성 때문에, 당장 취업이 안돼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요. 하지만 그 이면에는 그럴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현실이 있어요. 국가의 인력양성 정책이나 경제구조가 바뀌어야 할 문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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