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예술고등학교 오수진

달력

 

 엄마는 요즘 부쩍 달력 앞에 앉아 있는 날이 많았다. 나는 그런 엄마를 두고 연말이라서 약속이 많이 잡혔나 보다, 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데 새로운 달력으로 바꾸기 일주일 전부터 엄마는 평소와 다르게 사소한 것에도 예민하게 반응했다. 급기야 아빠가 출근 전 엄마에게 와이셔츠가 어디에 있는 지 묻자 엄마는 눈물을 흘리며 안방 문을 굳게 걷어 잠그기에 이르렀다. 그제야 나와 아빠는 엄마에게 뭔가 문제가 생긴 것을 알았다. 하지만 지난 일상을 돌이켜 보아도 특별히 문제 될 만한 일은 없었다. 그때, 거실 탁상에 놓인 달력이 보였다.

 <12월>엔 여느 달과 마찬가지로 나의 스케줄과 제사가 쓰여 있었다. 그런데 18일엔 빨간색 동그라미가 그려졌다가 가위표시가 되어있었다. 나는 불현듯 세달 동안 줄지 않았던 생리대가 떠올라서 달력을 전장으로 넘겨 보았다. <11월> 그리고 <10월>도 <12월>과 마찬가지로 18일에 붉은색 가위표시가 쳐져 있었다. 엄마는 이제 ‘폐경’인 것이었다.

 

 내가 초경을 한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수학여행에서였다. 학교 성교육 시간 때, 월경에 대해 익히 듣긴 했지만 낯선 갈색 분비물에 난 적잖이 당황했다. 그래서 집에 돌아오자마자 세탁기 깊숙이 속옷을 집어 넣었다. 그날 밤, 빨래를 하던 중에 나의 속옷을 본 엄마는 나를 꼭 끌어 안으며 말했다.

 “우리 딸, 진정한 여자가 된 걸 축하해.”

 엄마는 내 속옷에 묻어 나온 것이 생리임을 알려주었다. 나는 알 수 없는 기분에 휩싸여 가슴이 두근거렸다. 퇴근길에 나의 소식을 전해들은 아빠는 새하얀 생크림 케이크와 장미꽃까지 사들고오셨다. 얼떨떨한 채로 케이크 앞에 앉아 있는데 엄마는 단 한 개의 초를 꽂으며 내게 달력과 생리대를 내밀었다.

“이제 엄마처럼 아기도 낳을 수 있는 소중한 새로운 몸이 된 거니까 초는 한 개만 꽂는 거야. 그리고 앞으로는 달력도 늘 꼼꼼히 봐야 돼. 음…… 오늘이 15일이니까 15일에 동그라미를 그려 봐. 아마도 매달 15일 정도면 오늘처럼 월경을 하게 될 거야. 그러니까 잘 표시를 해둬야 해. 그날이 되면 피가 옷에 묻을 수도 있고, 어쩌면 배가 많이 아플 수도 있거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15일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엄마의 말대로 달력이 한 장씩 넘어갈 때마다 동그라미가 그려진 날이 되면 허리를 집어삼킬 듯한 고통이 찾아오곤 했다. 시험 날 생리라도 할 때면 너무 아파서 문제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럴 땐 정말이지 아이를 낳지 않아도 좋으니 더 이상 생리를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까지 들기도 했다.

 그런데 엄마는 내 바람처럼 더 이상 생리를 하지 않게 된 것이다 쉽게 믿어지지가 않았다. 앞으로도 계속 언제까지고 서로의 가방 뒷주머니에 생리대를 넣어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탓일까.

 

나는 인터넷에 ‘폐경’ 이라고 검색해보았다. 그곳엔 동시에 갱년기가 뜨면서 얼굴이 쉽게 붉어지고 우울해지고 예민할 수 있으니 주변 가족의 따듯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되어 있었다.

그날 밤, 학교에서 야자를 끝마친 뒤 나는 집으로 가기 전에 아빠와 만나 나의 초경 때와 마찬가지로 흰색 생크림 케이크와 장미 그리고 2014년 달력을 샀다. 집에 들어서자 엄마는 아침에 갑자기 운 것이 마음에 걸렸는지 미안하다고 했다. 이에 아빠는 괜찮다며 잘 신경 써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엄마를 끌어 안았다. 나도 엄마에게 팔을 둘렀다. 나의 초경 때 엄마가 날 포근하게 감싸주었듯이, 그러고 난 다음엔 엄마가 그랬듯이 나도 단 한 개의 초를 케이크에 꽂았다. 그리고 새로운 달력의 <1월> 18일엔 파란색 동그라미를 그렸다.

 ‘자유가 된 날. 그 동안 동그라미를 그렸다. 마음 편히 매달을 자유로이 보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존재가 되신 걸 축하 드려요!’ 라는 메모와 함께 엄마에게 달력을 건넸다. 비록 엄마의 월경은 끝났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자로써의 삶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열두 장의 달력을 넘기면 한 해의 달력은 끝나지만 늘 다음 해의 새로운 달력이 있듯이.

 엄마는 케이크에 꽂힌 촛불 하나를 훅 불었다. 엄마의 새로운 달력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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